토론:안동 안기동 석조여래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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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한중연 안내문안 작성

기존 국문

이 불상은 불상 뒤의 원광인 광배(光背)나 불상 받침은 말할 것도 없이 머리까지 없어진 채로 발견되었으나, 근래에 복원하여 그 자리에 약사전(藥師殿)을 짓고 모셨다.

불상은 신체가 비교적 온전한 형태로 남아 있어 조각양식을 살피는데 큰 도움을 주고 있다. 비교적 굵게 표현된 목에는 삼도(三道)의 흔적이 남아 있으며, 신체는 움츠린 듯한 좁은 어깨에 가슴을 다소 평평하게 처리하여 왜소하고 섬약해지는 통일신라 말기의 불상 양식이 나타나고 있다. 오른쪽 가슴, 오른 손, 무릎 등이 깨어져 있으나 어깨로 내려오는 유려한 선 등 새겨진 문양은 생명이 넘치고 발랄함을 지니고 있다.

불상의 결가부좌(結跏趺坐)한 앉음새와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 등을 보면 이름 있는 석공이 만든 우수한 작품임을 알 수 있다.

수정 국문

초고

석조여래는 돌로 만든 부처라는 의미이다. 이 불상은 통일신라 후반기 작품으로 추정된다. 오른손을 무릎 위에 올리고 손끝은 땅을 향하였는데, 이는 악귀를 물리친다는 의미를 담은 항마촉지인이다. 항마촉지인으로 보아 이 불상은 불교를 창시한 석가모니불이다.

발견 당시 머리가 없이 몸체만 남아 있었으나 최근에 머리를 만들어 시멘트로 붙였다. 불상을 올려두려고 설치한 대좌도 새롭게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머리를 새롭게 붙이는 과정에서 몸체에 비해 과도한 크기로 만들어 붙여서 균형을 잃었다. 머리와 몸체에 하얀 가루를 바르고 얼굴에 채색을 입혀 원래의 모습이 많이 사라졌고 어색한 느낌이 강하다.

그러나 본래 불상 자체가 상당히 우수하고 안정된 자세를 지니고 있다. 어깨는 작고 둥글며 불상의 옷은 유려하게 묘사되었다. 머리를 빼면 전체적으로 몸체의 균형이 돋보이고 어깨와 가슴, 옷주름까지 모두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는 우수한 작품이다.

이 불상은 주변에 민가가 오랫동안 조성되어 있어 어느 절에 속한 좌상인지 알 수 없다. 다만 옛 문헌에 따르면 안기동 삼층석탑과 함께 이 주변에 있던 부천사(富泉寺)의 불상으로 추정된다.

1차 수정

통일신라시대 후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불상이다. 여래(如來)는 ‘진리로부터 진리를 따라서 온 사람’이라는 뜻으로 부처의 덕성을 표현하는 열 가지 이름 중 하나이다.

옛 문헌에 따르면 안기동 삼층석탑(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18호)과 함께 인근에 있던 운안사(雲安寺)라는 절에 모셔졌던 불상으로 추정된다.

머리가 없이 몸체만 남아 있었으나, 머리를 새로 만들어 시멘트로 붙였다. 머리와 몸체를 하얗게 칠하고 입술에 색을 입혀 원래의 모습이 많이 사라졌다. 오른손은 땅을 향하고 있고 왼손은 무릎 위에 있는데, 이는 부처가 모든 악마를 항복시키고 깨달음을 얻은 순간을 상징한다. 몸에 비해 큰 머리를 제외하고, 전체적으로 균형이 돋보이고 사실적인 묘사가 돋보이는 우수한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