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안동 서부동 송곡고택
2021년 국문집필
2016 국문
19세기 중엽에 건립된 평산신씨(平山申氏) 송곡파(松谷派)의 종택이다. 전통적인 상류계층의 가옥구조를 갖춘 ‘口’자형 건물이다.
책방을 사랑방과 마루방 중간에 둔 것은 학문을 중시한 배치방법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고방과 책방, 사랑을 나란히 배열한 이유는 손님을 맞는 공간과 독서와 시문(詩文)을 짓는 공간을 함께 갖추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별당은 정면 3칸, 측면 1칸 반이다. 원래 이 집은 예안면 서부리 165번지에 있었으나, 안동댐 건설로 인하여 1975년 현 위치로 이건하였다.
- 실제 고택이 위치한 곳의 지명이 ‘서부리’이므로, 문화재의 국문 명칭을 재검토할 필요가 있음.
2021 국문
초고
이 집은 평산신씨(平山申氏) 송곡파(松谷波)의 종택으로, 19세기 중엽에 지어졌다고 알려져 있다. 종택이란 한 문중에서 맏이로 이어 온 가족이 대대로 사용해온 집을 말한다.
집은‘口’자형 정침(正寢)과, 동측 행랑채, 서측 별당(別堂)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전통적인 상류계층의 가옥구조를 갖추었다.
안채는 중앙의 대청을 중심으로 좌우에 온돌방을 배치했으며, 왼쪽 날개채[翼舍]에는 부엌이 있고 오른쪽 날개채에는 고방과 책방이 있다.
정침 정면은 좌우가 살짝 돌출되어 있으며, 중앙의 문을 기준으로 왼쪽에는 안사랑방이 있고, 오른쪽 공간은 사랑채로 쓰인다. 사랑채 공간은 사랑방과 마루방이 있고, 두 방 사이에 다시 책방(冊房)을 두었다. 이러한 배치는 손님을 맞는 공간과 독서와 시문(詩文)을 짓는 공간을 함께 두고자 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부엌과 고방 위에는 다락이 마련되어 있고, 건물 곳곳에 동선의 편의를 위한 쪽마루가 설치되어 있어 공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고자 했음을 엿볼 수 있다.
원래 예안면 서부리에 있었으나, 안동댐 건설로 인해 1975년 지금의 위치로 옮겨 지었다.
- 별당 건물은 송곡 신응인(松谷 申應仁, 1887∼1969)이 지었다고 한다. ‘송모재’라는 편액이 2개 걸려 있는데 이 중 파란색 현판은 서예가인 회산 박기돈(晦山 朴基敦 1873~1948)의 글씨이다. ; 신응인은 집의 뒷산에 자리한 용암정과도 관련되어 있는 인물임. 이 집의 이름도 신응인의 호를 딴 것으로 보이나 개인적 추정이므로 언급하지 않음.
- 사랑채에는 ‘금백서당(今白書堂)’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이 현판의 글씨는 백범 김구(白凡 金九, 1876~1949)의 친필이라고 전한다. / 서당 관련 정보 확인할 수 없어 언급하지 않음.
1차 수정
송곡고택은 평산신씨 송곡파의 종택으로, 19세기 중엽에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종택이란 한 문중에서 맏이로 이어 온 가족이 대대로 사용해온 집을 말한다. 원래 예안면 서부리에 있었으나, 안동댐이 건설되면서 1975년 지금의 위치로 옮겨 지었다.
집은 안채와 날개채로 이루어진 ‘口’자형 정침(正寢), 행랑채, 별당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전통적인 상류계층의 가옥 구조를 갖추었다.
정침 정면은 좌우가 살짝 돌출되어 있으며, 중앙의 문을 기준으로 왼쪽에는 안사랑방이 있고 오른쪽 공간은 사랑채로 쓰인다. 사랑채 공간은 사랑방, 책방, 마루방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러한 배치는 손님을 맞이하는 공간과 집주인이 책을 읽고 시문(詩文)을 짓는 책방을 나란히 두려 한 의도인 것으로 보인다.
안채는 대청을 중심으로 좌우에 온돌방을 배치했으며, 왼쪽 날개채에는 부엌이 있고 오른쪽 날개채에는 고방과 책방이 있다. 부엌과 고방 위에는 다락이 마련되어 있고, 건물 곳곳에 동선의 편의를 위한 쪽마루가 설치되어 있어 공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고자 했음을 엿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