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심통원 선생 묘 및 신도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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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국문

초고

조선 중기의 권신, 척신인 심통원(1499~1572) 선생의 묘 및 신도비이다. 선생은 본관은 청송이고 어렸을 때부터 신동 소리를 들었고 좌의정까지 올랐다. 그 뒤 기로소에 들어갔지만 이듬해 왕의 외척으로 윤원형 등과 함께 권력을 남용했다는 탄핵을 받아 사직하였고, 1567년에는 김안로(1481~1537)에게 아부했다는 죄목으로 율곡 이이(1536~1584) 등의 탄핵을 받아 관직을 삭탈 당하였다. 묘는 부인인 완산 이씨와 합장되어 있다. 묘소 우측에는 새로 건립한 신도비가 있고, 원래의 신도비는 그로부터 100미터 떨어진 도로변에 있다. 신도비는 찬자가 심진, 전액은 심방, 글씨는 손자인 심극명이 썼다.

수정

조선 중기의 문신 심통원(沈通源, 1499~1572)과 부인 완산이씨의 합장묘 및 신도비이다. 신도비란 임금이나 벼슬이 높은 사람의 일생과 업적을 새긴 비석을 말한다.

심통원은 세종(1418~1450 재위)의 장인 심온(沈溫, 1375~1418)의 4대손이다. 어렸을 때부터 신동 소리를 들었고, 중종 32년(1537) 과거시험에 장원급제하였다. 이후 여러 관직을 거쳐 우의정·좌의정에 이르렀다. 왕의 외가 친척으로 권세를 누리다가 윤원형 등과 함께 권력을 남용했다는 탄핵을 받아 관직이 강등되기도 하였다. 또 김안로(金安老, 1481~1537)에게 아부했다는 죄목으로 율곡 이이(李珥, 1536~1584) 등의 탄핵을 받아 관직을 빼앗기기도 하였다.

봉분 앞에는 향로석·망주석·문인석 등이 갖추어져 있고, 오른쪽에는 신도비문을 의역한 비석이 있다. 선조 8년(1575)에 건립한 신도비는 남쪽으로 100여 미터 떨어진 도로변에 있다. 아들 심진(沈鎭)이 글을 짓고, 아들 심방(沈鈁)이 전액을 썼으며, 글씨는 손자 심극명(沈克明, 1556~?)이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