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서산 동문동성당 상홍리공소
목차
2020 안내문안 초안 작성 지원 사업
기존 국문
1919년 건축된 상홍리 공소는 전통 한옥에 서양의 바실리카 종교건축 양식을 구현한 한양절충식 건물이다. 상홍리 공소는 1919년에 본당이 설립되었다가 1937년 본당을 서산 동문동으로 이전하면서 공소가 되었다. 내부는 중앙부 신랑(身廊)과 좌우 측랑(側廊)으로 구분된 3랑식이며 신랑 천장은 좌우 측랑보다 높여 공간의 위계를 두고, 상부에 고측창(高測窓)을 배치하여 채광과 환기를 해결하고 있다.
현 제단부는 옛 형태를 그대로 보존하고 있어 천주교의 전통적인 전례요소를 확인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며 배면부 제의실은 각각 1923년, 1969년에 증축하였다. 전면의 종탑은 성당과 분리되어 있으며, 3개의 공간으로 구성된다. 종탑은 1986년 원형복원 되었다. 건물 내부구성 및 종탑부와 건물 좌우측 회랑 등 서양 종교건축의 구성요소가 매우 풍부한 귀중한 문화유산이다.
수정 국문
초고
상홍리에 있는 천주교 공소(公所)이다. 공소는 신부가 상주하지 않기 때문에 본당신부를 대리하는 공소회장을 중심으로 성찬의 전례가 빠진 미사형식의 공소예절이 행해지는 곳이다. 1886년(고종 23) 병인박해 당시 상홍리는 교우촌으로서 100명이 넘는 교우들이 있었다고 한다. 이러한 교세를 바탕으로 신부 폴리(Polly)가 1919년 새 성당을 신축하고 이듬해 4월 30일 서산시 팔봉면 금학리에 있던 서산성당을 이곳으로 이전하였다. 이로써 이곳은 서산지역 천주교의 중심이 되었다가 다시 동문동 성당으로 이전하면서 공소가 되었다. 건물은 전통 한옥과 유럽의 바실리카 양식이 절충된 독특한 형태를 띠고 있다. 본당과 종탑, 배면부의 제의실로 구성되어 있다. 제단부는 옛 형태를 그대로 보존하고 있으며, 양쪽 외부는 회랑으로 이루어져 있다. 배면부의 제의실은 1923·1969년에 증축하였으며, 고해소로도 이용된다. 종탑은 1986년 원형 복원된 것으로 기와 3칸 형태이며, 성당 입구 역할을 하고 있다. 신부가 상주하던 사제관이 부속되어 있다. 한옥과 서양식 건축이 독특한 조화미를 이룬 근대 건축의 귀중한 유산으로 인정받고 있다.
문맥요소
- 공소 – 기능 - 신부가 상주하지 않기 때문에 본당신부를 대리하는 공소회장을 중심으로 성찬의 전례가 빠진 미사형식의 공소예절이 행해지는 곳이다.
- 병인박해 – 사건 - 1866년(고종 3)부터 1871년까지 계속되었던 우리나라 최대 규모의 천주교 박해
- 제의실 – 기능 - 전례에 쓰이는 제구와 제의를 보관하거나, 성직자가 제의를 갈아입는 방
1차 수정
상홍리 공소는 전통 한옥에 서양의 종교건축 양식을 결합한 한양절충식 건물로 1919년에 지어졌다. 공소란 주임 신부 없이 신자들에 의해 운영되는 작은 규모의 천주교 예배소이다.
상홍리는 1886년(고종 23) 병인박해 당시에 100명이 넘는 천주교도들이 살았던 곳이다. 이러한 교세를 바탕으로 신부 폴리(Polly)가 1919년 새 성당을 신축하고 이듬해 서산시 팔봉면 금학리에 있던 서산성당을 이곳으로 이전하였다. 이로써 이곳은 서산 지역 천주교의 중심이 되었다가 1337년에 성당이 동문동으로 이전하면서 공소가 되었다.
이 건물은 본당을 중심으로 본당 앞의 종탑, 본당의 뒷부분에 덧지은 제의실로 구성되어 있다. 본당 내부의 제단부는 옛 형태를 그대로 보존하고 있어 천주교의 전통적인 전례요소를 확인할 수 있게 한다. 제의실은 1923년과 1969년에 증축한 것이다. 본당 전면부의 종탑은 서양식 교회의 3랑 구조를 3칸의 한옥 기와 건조물로 구현한 독특한 형태이다. 현재의 종탑은 1986년에 원형대로 복원한 것이다.
상홍리공소는 한옥과 서양식 건축이 조화미를 이룬 근대 건축의 귀중한 유산으로 인정받고 있다.
자문의견
- 건축, 근대 위원1
- 적절함.
- 건축, 근대 위원2
- 문화재 명칭이 맞고, 사실관계가 객관적임
- 전문적이고 정확한 의미전달이 필요한 한자어에는 ( )안에 한자를 기입할 필요가 있음.
- 전례의 의미가 ‘사례’나 ‘의식’의 의미가 있어 한자어와 함께 표시될 필요가 있고, 이에 따라서 전례요소가 전례공간으로 변경될 수 있음
- ‘신부 폴리...’→ ‘2대 주임 폴리(D. Polly) 신부’로 표기에 대한 확인 및 검토
- 1337년 → 1937년 확인요망
- 문화재 가치 및 의미 서술이 적절함.
- 읽기쉬운문안 자문위원
- 첫단락은 이렇게 고쳐보면 어떨까요? → 공소는 주임신부 없이 신자들에 의해 운영되는 닥은 규모의 천주교 예배소다. 상흥리 공소는 1919년 전통 한옥에 서양의 종교건축 양식을 결합한 독특한 건축물이다.
- 두 번째 단락에서 건축물의 특징을 소개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듯 합니다.
- “한양절충식”이라는 말은 굳이 쓸 필요가 없을 듯합니다.
- “1886년(고종23)” 여기에만 괄호속에 왕의 연호를 넣은건 특별한 뜻이 있는지?
- “천주교의 전통적인 전례요소”라는 단어는 어렵게 느껴집니다. 풀어주는 게 좋을 듯 합니다. “본당 전면부의 종탑은”은 그냥 ‘종탑은’이라고 해도 무방합니다. “서양식 구조의 3랑 구조”는 그 형태가 무엇인지 알수 없어서 오히려 전달력이 떨어집니다.
2차 수정
상홍리 공소는 전통 한옥에 서양의 종교건축 양식을 결합한 건물로 1919년에 지어졌다. 공소란 주임 신부 없이 신자들에 의해 운영되는 작은 규모의 천주교 예배소이다.
상홍리는 1886년 병인박해 당시에 100명이 넘는 천주교도들이 살았던 곳이다. 이러한 교세를 바탕으로 신부 폴리(Desideratus Polly, 1884~1950)가 1919년 새 성당을 신축하고 이듬해 서산시 팔봉면 금학리에 있던 서산성당을 이곳으로 이전하였다. 이로써 이곳은 서산 지역 천주교의 중심이 되었다가 1937년에 성당이 동문동으로 이전하면서 공소가 되었다.
이 건물은 본당을 중심으로 본당 앞의 종탑, 본당의 뒷부분에 덧지은 제의실로 구성되어 있다. 본당 내부의 제단부는 옛 형태를 그대로 보존하고 있어 천주교의 전통적인 의식 공간을 확인할 수 있다. 제의실은 1923년과 1969년에 증축한 것이다. 종탑은 중앙 회랑인 신랑(身廊)과 양옆의 측랑(側廊)으로 이루어진 서양식 교회의 3랑 구조를 3칸의 한옥 기와 건조물로 구현한 독특한 형태이다. 현재의 종탑은 1986년에 원형대로 복원한 것이다.
상홍리공소는 한옥과 서양식 건축이 조화미를 이룬 근대 건축의 귀중한 유산으로 인정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