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서산 개심사 대웅전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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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국문
개심사 사적기에 의하면 신라 진덕여왕 5년, 백제 의자왕 14년에 혜감국사가 창건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다만 진덕여왕 5년은 651년에 해당하고, 의자왕 14년은 654년에 해당하는데 어느 것이 맞는가는 확인할 수 없다. 1941년 대웅전 수리공사 때 발견된 묵서명에 의하면 1484년(성종 15년)에 다시 세웠음을 알 수 있다.
대웅전은 석가모니불을 모셔놓은 건물을 말한다. 네모반듯한 평면 기단 위에 정면 3칸, 측면 3칸을 이룬 단순한 직사각형 평면이다. 맞배지붕의 다포계 형식을 갖추고 있으나 내부는 주심포계 형식의 특징인 결구 모습이 그대로 보이는 연등천장을 하고 있어 일종의 절충형식을 띠고 있다.
조선시대 초기 다포계 목조건물로서 귀중한 자료이다.
수정 국문
초고
개심사는 서산시 운산면 신창리 상왕산 기슭에 있는 사찰이다. 절의 사적기에 따르면 백제 의자왕 14년(654)에 혜감국사가 처음 절을 지어 개원사(開元寺)라 하였고, 고려 충정왕 2년(1350)에 처능대사가 절을 다시 세우며 이름을 개심사로 바꾸었다고 한다. 산불로 절의 건물들이 불에 탄 것을 1484년에 다시 세웠다. 그 뒤 조선 시대에 폐사된 뒤에 다시 세워지기도 하였고, 근현대에 몇 차례의 보수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대웅보전은 개심사의 중심 건물이다. 대웅전이나 대웅보전은 법화경에서 석가모니를 위대한 영웅 즉 대웅이라고 부른 데서 이름 붙여진 것으로, 석가모니를 모시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개심사 대웅보전에는 아미타삼존불(아미타불과 관세음보살·지장보살)이 모셔져있다. 가운데 있는 아미타여래좌상은 나무로 조각한 고려 후기의 불상인데, 조각적으로 매우 완성도가 높아 보물 제 1619호로 지정되었다. 석가모니불이 설법하는 장면을 그린 보물 제 1264호의 <개심사 영산회상 괘불탱> 역시 중요한 유물이다. 이밖에도 왼쪽 벽면에는 북극성과 해와 달, 북두칠성을 신격화해서 그린 <칠성탱>이 있다.
건축적으로는 옆면에서 볼 때 ㅅ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이면서도, 공포(栱包)*가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짜여 있는 다포양식을 적용한 것이 특징이다. 맞배지붕은 주로 기둥 위에만 장식을 올린 주심포 양식을 채택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조선 초기 건물에서 이러한 절충적 형태가 발견된다. 이 건물은 이러한 조선 전기의 목조 건물 양식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귀중한 문화유산이다.
- 공포(栱包): 처마의 무게를 받치기 위해 기둥머리에 짜 맞추어 댄 부재.
- 제목은 대웅전이지만, 실제 사찰 현판은 대웅보전이라고 되어있으므로 개심사 대웅보전이라고 바꾸는 것이 좋을 듯하다.
문맥요소
요소 | 관계 | 설명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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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상왕산(象王山) | 소재지 |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신창리에 있는 산 |
2 | 조계종(曹溪宗) | 소속 | 불교의 한 종파로 한국 불교 27개 종단 가운데 최대의 종단이다. |
3 | 수덕사(修德寺) | 본사 |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덕숭산에 있는 절 |
4 | 백제(百濟) | 건립 시기 | 한국 고대 삼국 중 하나의 나라. |
5 | 혜감국사(慧鑑國師) | 설립자 | 백제 시대의 승려. 생몰년 미상. |
6 | 처능대사(處能大師) | 설립자 | 고려 시대의 승려. 생몰년 미상. |
7 | 개원사(開元寺) | 다른 이름 | 개심사의 처음 이름 |
8 | 개심사 대웅보전 관경변상도 | 내부 유물 | 도난당한 유물 |
9 | 개심사 대웅보전 칠성탱화 | 내부 유물 |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신창리 개심사 대웅보전에 있는 칠성도. |
10 | 개심사 대웅전 목조아미타여래좌상 | 내부 유물 |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신창리 개심사(開心寺)에 있는 고려 후기 목조 아미타여래 좌상. 보물 제 1619호 |
11 | 개심사 영산회상 괘불탱 | 소장 유물 | 개심사 대웅보전에 소장되어 있는 괘불도. 보물 제 1264호 |
1차 수정
이곳은 개심사의 중심 건물이다.
대웅전은 ‘세상을 밝히는 영웅을 모시는 전각’이라는 뜻이며, 현판에 쓰인 ‘대웅보전’은 대웅전의 격을 높여 부르는 이름이다. 일반적으로 대웅전에는 석가모니불을 모시지만, 개심사의 대웅전에는 아미타불(보물 제1619호)을 중심으로 관음보살과 지장보살이 함께 모셔져 있다.
1484년에 처음 지은 이후 여러 차례 고쳐 지었다. 지붕의 무게를 안전하게 지탱하기 위해 기둥 위에 짜 맞춰놓은 부재들을 공포(栱包)라고 하는데, 이러한 공포가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설치되어 있다. 이러한 다포(多包) 양식은 조선 후기 목조건축의 대표적인 양식이다.
자문 의견
- 불교문화재 위원1
- 명칭에 부합, 객관적
- ‘대웅보전은 대웅전의 격을 높여 부르는 이름’에서 ‘격’이라는 말은 전문적이다. ‘격’을 빼고 ‘대웅보전은 대웅전을 높여 부르는 이름’이라 하는 게 타당해 보인다.
- 명칭, 인명 등의 표기가 정확하다
- ‘다포계 맞배집’이라는 특성이 서술되지 못하였다.
- 불교문화재 위원2
- ‘이러한 다포(多包) 양식은 조선 후기 목조건축의 대표적인 양식이다.’→ 오류: 다포 건축은 고려말부터 도입되어 조선초기에도 광범위하게 사용됨.
- 미흡: 조선초 다포의 특징과 의미 부각 필요
2차 수정
이곳은 7세기 중반에 혜감국사가 창건한 개심사의 중심 건물이다.
대웅전은 ‘세상을 밝히는 위대한 영웅을 모시는 전각’이라는 뜻이며, 현판에 쓰인 ‘대웅보전’은 대웅전의 격을 더 높여 부르는 이름이다. 일반적으로 대웅전에는 석가모니불을 모시지만, 개심사의 대웅전에는 아미타불(보물 제1619호)을 중심으로 관음보살과 지장보살이 함께 모셔져 있다.
1484년에 처음 지은 이후 여러 차례 고쳐 다시 지었다. 지붕의 무게를 지탱하기 위해 기둥 위에 짜 맞춰 댄 부재들을 공포(栱包)라고 하는데, 이러한 공포가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설치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