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산청 이택당 물산영당
2021 안내문안 초안 작성 지원 사업
기존 국문
조선 후기의 학자 성재(性齋) 허전(許傳)선생의 영정(影幀)을 모신 건물이다. 허전 (1797~1886)은 황덕길(黃德吉)의 문인으로 성호(星湖) 이익(李瀷)의 학맥을 이은 기호남인(畿湖南人) 학자로 당대 유림(儒林)의 종장(宗匠)이었다. 선생의 영정은 생전에 이미 왕명으로 그리게 하여 본가에 보존하고 있었다.
1891년(고종 28)에 문집(文集) 본판이 완성되고, 이어 이택당(麗澤堂)과 장판각(藏板閣)이 세워졌다. 1916년에 영당(影堂)을 지어 영정을 이곳으로 옮겨 모시게 되었고, 매년 3월 3일 사우(祠宇)에서 석채례(釋采禮)를 봉행한다.
수정 국문
초고
이곳은 조선 후기의 학자 허전(許傳, 1797~1886)의 영정을 모시기 위해 세운 곳이다. 허전은 조선후기 실학(實學)의 비조(鼻祖)라 불리는 이익(李瀷, 1681~1763)의 학통을 계승하였다. 1835년(헌종 1)에 문과에 급제하여 관로로 진출하였고, 임금의 학문적 수양을 위해 열리는 경연(經筵)에 나아가 실(實)의 정신을 강조하며 시대적 현실에 적합한 개혁안을 제시하였다. 저술로는 이상적 군주상을 그린 『종요록(宗堯綠)』과 『철명편(哲命編)』 및 선비의 예법에 대해 논한 『사의(士儀)』 등이 있다.
허전은 생전에 어명(御命)에 의해 영정(影幀)이 그려지게 되었는데, 본가인 안산(安山) 불권당(不倦堂)에 보관하다가 1891년 허전의 문집을 판각한 산청 이택당 내에 1916년 영당을 짓고 옮겨 봉안하였다. 현재는 2008년 경기도박물관에 기증되었다.
이택당은 『주역(周易)』의 ‘麗澤兌, 君子以朋友講習’이라는 구절에서 따온 것으로 ‘붙어 있는 택(澤)이 태(兌)이니, 군자(君子)가 보고서 붕우(朋友)들과 강습(講習)한다.’는 뜻이다. 역(易)에서 괘는 3줄의 소괘 8개를 상하로 중첩하여 6줄의 대괘 64개를 만든다. 태괘(兌卦)는 소괘인 택괘[☱]가 중첩[麗]되어 대괘인 태괘[䷹]가 되는데 택괘가 중첩된 형상을 군자가 붕우와 강습하는 모습으로 풀이하였다.
이택이라는 이름은 본래 허전의 사조(師祖)이자 성호의 고제(高弟)인 안정복(安鼎福, 1712~1791)이 지은 이택재(麗澤齋)에서 따온 것이다. 당시 안정복은 성호의 다른 제자인 신후담(愼後聃, 1702~1761), 윤동규(尹東奎, 1695~1773), 이병휴(李秉休, 1710~1776) 등과 동문(同門)으로 절차탁마(切磋琢磨)하는 사이였기에 이택이라는 두 글자를 취했던 것이다.
- 麗澤齋者。順庵安先生所建也。在廣州府之西南二十里許。德谷先生十二世先塋之下。宗族聚居之地也。春秋祀饗。行事于斯。燕父兄耆老於斯。旅酬逮賤於斯。修其孝弟忠信。然後以其無事之時。聚學子。設學約講小學。行鄕射鄕飮儀。無非所以講習之義。故名之曰麗澤。嗚呼。先生星湖夫子之嫡傳。而愼河濱尹邵南李貞山。皆同門道義之友也。平日相與之切磋琢磨。必有所自得者。故特取麗澤二字表以揭之。
허전의 사후 허전의 제자들 또한 허전을 마치 이익과 같은 큰 스승으로 여기고 안정복의 예를 따라서 이택을 따와 당호(堂號)를 짓고 허전의 학문을 이어나갔다.
1차 수정
물산영당은 조선시대의 학자 성재 허전(性齋 許傳, 1797~1886)의 영정을 모시기 위해 1916년에 지은 건물이다.
허전은 조선 후기 대표적인 실학자인 이익(李瀷, 1681~1763)의 학통을 계승하였다. 헌종 1년(1835)에 과거에 급제하여 관로로 진출하였고, 임금의 학문적 수양을 위해 열리는 경연 자리에서 ‘실(實)’의 정신을 강조하며 시대적 현실에 적합한 개혁안을 제시하였다. 저술로는 이상적 군주상을 그린 『종요록(宗堯綠)』과 『철명편(哲命編)』 및 선비의 예법에 대해 논한 『사의(士儀)』 등이 있다.
허전의 영정은 허전 생전에 어명에 의해 그려졌다. 원래 본가인 안산 불권당에 보관하다가 1916년 물산영당을 짓고 옮겨 모셨으며, 2008년 경기도박물관에 기증되었다.
자문의견
- 분야별 자문위원 1
- 영정이 보물이라는 사실을 밝힐 필요가 있다.
- 물산영당은 조선시대의 학자 성재 허전(性齋 許傳, 1797~1886)의 영정을 모시기 위해 1916년에 지은 건물이다.
허전은 조선 후기 대표적인 실학자인 이익(李瀷, 1681~1763)의 학통을 계승하였다. 헌종 1년(1835)에 과거에 급제하여 관료로 진출하였고, 임금의 학문적 수양을 위해 열리는 경연 자리에서 ‘실(實)’의 정신을 강조하며 시대적 현실에 적합한 개혁안을 제시하였다. 저술로는 이상적 군주상을 그린 『종요록(宗堯綠)』과 『철명편(哲命編)』 및 선비의 예법에 대해 논한 『사의(士儀)』 등이 있다.
허전의 영정은 보물 제1728호로 지정되었으며, 그의 생전에 어명으로 그려졌다. 원래 본가인 안산 불권당에 보관하다가 1916년 물산영당을 짓고 옮겨 모셨으며, 2008년 경기도박물관에 기증되었다.
- 분야별 자문위원 2
- “대표적인 실학자인 이익”→“근기 남인 계열의 대표적인 실학자인 이익”으로 서술을 추가하는 것이 좋겠다.
- “관로로 진출하였고”→안내문에 과거 급제 후의 다양한 관직 활동이 들어 있으므로, 삭제하는 것이 좋겠다.
- “임금의 학문적 수양을 위해 열리는 경연 자리에서 ‘실(實)’의 정신을 강조하며 시대적 현실에 적합한 개혁안을 제시하였다.”→경연 참가는 관직 생활 중 일부이고 “실의 정신”이나, “시대적 현실에 적합한 개혁안”은 내용이 모호하고, 관직의 경력과 연계되지 않은 서술이므로, “경연에서 국왕에게 유학을 해설하였고, 고위 관리가 되어 전국적으로 발생하는 민란의 해결책을 제시하였다.” 정도가 좋을 듯하다.
- 읽기 쉬운 문안 자문위원
- 물산영당은 조선시대의 학자 성재 허전(性齋 許傳, 1797~1886)의 영정을 모시기 위해 1916년에 지은 건물이다.
허전은 조선 후기 대표적인 실학자인 이익(李瀷, 1681~1763)의 학통을 계승하였다. 헌종 1년(1835)에 과거에 급제하여 관로로 진출하였고, 임금의 학문적 수양을 위해 열리는 경연 자리에서 ‘실(實)’의 정신을 강조하며 시대적 현실에 적합한 개혁안을 제시하였다. 저술로는 이상적 군주상을 그린 『종요록(宗堯綠)』과 『철명편(哲命編)』 및 선비의 예법에 대해 논한 『사의(士儀)』 등이 있다.
허전의 영정은 그의 생전에 어명에 의해 그려졌다. 원래 본가인 안산 불권당에 보관하다가 1916년 물산영당을 짓고 옮겨 모셨으며, 2008년 경기도박물관에 기증되었다.
- 물산영당은 조선시대의 학자 성재 허전(性齋 許傳, 1797~1886)의 영정을 모시기 위해 1916년에 지은 건물이다.
2차 수정
물산영당은 조선시대의 학자 성재 허전(性齋 許傳, 1797~1886)의 영정을 모시기 위해 1916년에 지은 건물이다.
허전은 조선 후기 대표적인 실학자인 이익(李瀷, 1681~1763)의 학통을 계승하였으며, 헌종 1년(1835)에 과거에 급제하였다. 임금의 학문적 수양을 위해 열리는 경연에서 임금에게 유학을 해설하였고, 고위 관리가 되어 전국적으로 발생하는 민란의 해결책을 제시하였다. 저술로는 이상적 군주상을 그린 『종요록(宗堯綠)』과 『철명편(哲命編)』 및 선비의 예법에 대해 논한 『사의(士儀)』 등이 있다.
허전의 영정(보물 제1728호)은 그의 생전에 임금의 명령에 따라 그려졌다. 원래 본가인 안산 불권당에 보관하다가 1916년 물산영당을 짓고 옮겨 모셨으며, 2008년 경기도박물관에 기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