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동북치성(창원 진해 웅천읍성)
2021 안내문안 초안 작성 지원 사업
기존 국문
웅천읍성의 치성(雉城)은 총 6개로 이곳의 치성은 동문을 보호하기 위해 축조된 적대이다. 치성은 체성부에 덧대어져 축조된 것으로 길이 8.4m 너비 5.5m 정도의 규모이다. 축조수법은 체성에 비해 조잡하고 특히 상단부의 약 2.3m 부분은 후대에 개축한 것으로 보인다. 치성의 축조수법은 체성부와 동일하며, 축조시점은 절대년대를 확인할 수는 없지만 문종실록에서는 확인되지 않은 것으로 보아 문종조에는 필축된 상태가 아닌 것으로 판단된다. 이후 단종 1년에 웅천읍성에 대한 증축이 이루어지는 것을 볼 때 이때를 전후한 시점에 축조된 것으로 판단된다. 고노들의 전언에 따르면 조선시대 웅천현감이 이곳에서 동쪽의 사대(射臺)를 향해 활을 쏘았다고 전해지며 치성의 정상부와 주변에서 당시 건물에 사용했던 암·수 기와편이 주변에 산재되어 있어 누각과 같은 건물이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 된다.
수정 국문
초고
치성(雉城)은 성곽의 요소에 성벽으로부터 돌출시켜 전방과 좌우 방향에서 접근하는 적과 성벽에 붙은 적을 방어하기 위한 시설로 성가퀴라고도 한다. ‘치(雉)’는 성(城)의 담을 재는 단위로서, 높이 10자[尺]에 길이 30자 정도를 이른다.
웅천읍성의 치성(雉城)은 총 6개로 이곳의 치성은 동문을 보호하기 위해 축조된 것이다. 체성부에 덧대어져 축조된 것으로 길이 8.4m 너비 5.5m 정도의 규모이다. 축조방식은 체성에 비해 조잡하고 특히 상단부의 약 2.3m 부분은 후대에 개축한 것으로 보인다. 치성의 축조수법은 체성부와 동일하며, 정확한 축조 연도는 확인할 수 없으나 단종 원년(1453)에 웅천읍성에 대한 증축이 이루어지는 것으로 보아 이 시기를 전후하여 축조된 것으로 판단된다. 치성의 정상부와 주변에서 당시 건물에 사용했던 암·수 기와편이 주변에 산재되어 있어 누각과 같은 건물이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1차 수정
치성은 성벽 일부를 돌출시켜 적의 접근을 살피고, 성벽에 접근한 적을 정면과 측면에서 공격 또는 방어하기 위해 만든 시설이다.
웅천읍성의 치성은 총 6개로 각 모서리에 4개, 동벽과 서벽에 각각 1개씩이 있다.
동북치성은 체성부에 덧대어 축조되었으며, 길이 8.4m, 너비 5.5m 정도의 규모이다. 축조방식이 체성부에 비해 조잡하고 특히 상단부의 약 2.3m 부분은 후대에 개축한 것으로 보인다. 치성의 정상부와 주변에서 기와조각이 발견되어, 치성 위에 누각과 같은 건물이 지어졌던 것으로 추정된다.
자문의견
- 분야별 자문위원 1
- 살피고 → 감시하고
- 분야별 자문위원 2
- 성벽에 접근한 적을 정면과 측면에서 공격 또는 방어하기 위해 만든 시설이다. → ‘성벽이나 성문에 접근한 적을 공격하기 위해 만든 시설이다’로 표현을 바꾸는 것이 적절한 듯하다.
- 읽기 쉬운 문안 자문위원
- ‘웅천읍성의 치성은 총 6개로 각 모서리에 4개, 동벽과 서벽에 각각 1개씩이 있다’라는 문장에서 ‘각’ ‘씩’의 의미가 중복되므로 문장을 재정리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총 6개로, 네 개의 모서리와 동벽, 서벽에 1개씩 있다’라는 식으로 정리하는 것이 정확할 듯 합니다.
- 5째줄 ‘특히’는 불필요한 단어로 보입니다. 여기서 ‘특히’라고 하면 더욱 조잡하다는 의미가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 6째줄에서 가능하면 피동형을 능동형으로 바꾸는 것이 좋겠습니다. ‘건물이 지어졌던’-->‘건물을 지었던’
2차 수정
치성은 성벽 일부를 돌출시켜 적의 접근을 감시하고, 성벽이나 성문에 접근한 적을 공격하기 위해 만든 시설이다.
웅천읍성의 치성은 총 6개로 4개의 모서리, 동벽, 서벽에 1개씩 있다.
동북치성은 체성부에 덧대어 축조되었으며, 길이 8.4m, 너비 5.5m 정도의 규모이다. 축조방식이 체성부에 비해 조잡하고, 상단부의 약 2.3m 부분은 후대에 개축한 것으로 보인다. 치성의 정상부와 주변에서 기와 조각이 발견되어, 치성 위에 누각과 같은 건물을 지었던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