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남해 다정리 지석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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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국문

지석묘는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무덤 가운데 하나로, 고인돌 또는 돌멘이라고도 한다. 우리나라의 지석묘는 4개의 받침돌을 세워 돌방을 만들고 그 위에 거대하고 평평한 덮개돌을 올려놓은 탁자식과, 땅 속에 돌방을 만들고 작은 받침돌을 놓은 뒤 그 위에 덮개돌을 올린 바둑판식으로 구분된다.

이곳 다정리 지석묘들은 현재 들판의 논둑을 따라 3~4m의 간격을 두고 모두 11기가 자리하고 있다. 외형상 모두 바둑판식 지석묘로, 덮개돌의 규모는 길이 3m 너비 2m정도이다. 땅 속에 마련된 하부구조의 정확한 형태는 알 수 없지만, 이와 유사한 지석묘의 하부 구조로 볼 때 상자모양의 돌널일 가능성이 크다. 이 주변 일대에서는 청동기시대의 민무늬토기 조각들이 발견되고 있다. 이곳이 청동기시대에 남해 지역의 주요 생활 근거지 중의 하나였음을 짐작케 하고 있다. 이밖에도 남해군에는 남면리, 평현리, 심천리 등 관내 각지의 해안 평야와 창선도에 이르기까지 지석묘들이 폭 넓게 분포되어 있어 청동기시대의 남해 지역 문화상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수정 국문

초고

지석묘는 청동기 시대의 대표적인 거석 구조물이다. 지석묘는 유럽, 아프리카, 아시아 등에 분포하고 있는데, 한반도는 세계에서 가장 집중적으로 분포된 지역이다.

이곳에는 들판의 논둑을 따라 대체로 3~4m 씩 사이를 두고 11기의 지석묘들이 있다. 형태상 모두 바둑판식으로 덮개돌의 크기는 길이 3m, 너비 2m이다. 땅 속에 마련된 하부구조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상자 모양의 석관일 것으로 추정된다. 이 유적 주변에서 청동기시대의 민무늬토기 조각들이 발견되었다.

이밖에도 남해군에는 남면리, 평현리, 심천리 등 각지에 지석묘들이 폭넓게 분포되어 있는데, 이 지역 청동기시대의 문화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1차 수정

지석묘는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거석 구조물이다. 유럽, 아프리카, 아시아 등에 분포하고 있으며, 한반도는 세계에서 지석묘가 가장 집중적으로 분포된 지역이다.

이곳에는 들판의 논둑을 따라 대체로 3~4m씩 사이를 두고 11기의 지석묘들이 있다. 모두 땅속에 돌방을 만들고 작은 받침돌을 놓은 뒤 그 위에 덮개돌을 올린 바둑판식 지석묘이다. 덮개돌의 크기는 길이 3m, 너비 2m 정도이다. 땅속에 마련된 하부구조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상자 모양의 석관일 것으로 추정된다.

지석묘 주변에서 청동기시대의 민무늬토기 조각들이 발견되어, 이곳이 청동기시대에 남해 지역의 주요 생활 근거지 중의 하나였음을 보여준다. 이 밖에도 남해군에는 남면리, 평현리, 심천리 등 각지에 지석묘들이 폭넓게 분포되어 있는데, 이 지역 청동기시대의 문화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자문의견

  1. 사적, 매장 위원1
    • 지석묘는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거석 구조물이다. 유럽, 아프리카, 아시아 등에 분포하고 있으며, 한반도는 세계에서 지석묘가 가장 집중적으로 분포된 지역이다. →지석묘는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거석 구조물이다. 고인돌이라고도 하며 청동기시대 지배층의 무덤으로 만들어졌다. 유럽, 아프리카, 아시아 등에 분포하고 있으며, 한반도는 세계에서 지석묘가 가장 집중적으로 분포된 지역이다.
    • 고인돌이 2000년도에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사실 보완할 수 없을까요?
  2. 사적, 매장 위원2
  3. “지석묘들이 있다.” → “지석묘가 있다.”

2차 수정

지석묘는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거석 구조물이다. 유럽, 아프리카, 아시아 등에 분포하고 있으며, 한반도는 세계에서 지석묘가 가장 집중적으로 분포된 지역이다.

이곳에는 들판의 논둑을 따라 대체로 3~4m씩 사이를 두고 11기의 지석묘가 있다. 모두 땅속에 돌방을 만들고 작은 받침돌을 놓은 뒤 그 위에 덮개돌을 올린 바둑판식 지석묘이다. 덮개돌의 크기는 길이 3m, 너비 2m 정도이다. 땅속에 마련된 하부구조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상자 모양의 석관일 것으로 추정된다.

지석묘 주변에서 청동기시대의 민무늬토기 조각들이 발견되어, 이곳이 청동기시대에 남해 지역의 주요 생활 근거지 중의 하나였음을 보여준다. 이 밖에도 남해군에는 남면리, 평현리, 심천리 등 각지에 지석묘들이 폭넓게 분포되어 있는데, 이 지역 청동기시대의 문화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