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김중행 선생 묘
2020 국문
초고
조선 초의 문신 김중행(1397~1453)의 묘이다. 김중행의 본관은 언양이며, 고려 고종 때 침략한 거란을 격퇴하는 데에 큰 공로를 세운 김취려(1172~1234) 장군의 후손이다. 1453년(단종 1) 단종 복위운동에 가담하여 생육신들과 행동을 같이 하였다. 그 당시 군자감 주부에 이르렀지만, 이후 모든 관직을 버리고 은둔생활을 하다가 생을 마쳤다. 숙종 때 영의정에 증직되었다. 조선 태종의 아들 효령대군의 넷째 아들인 낙안군 이녕(李寧)과 시와 글씨, 그림에 모두 뛰어나 ‘삼절(三絶)’로 불렸던 강희안(姜希顔)은 김중행의 사위이다.
묘는 부인 순흥 안씨와 합장묘이다. 묘 주위에는 1455년(세조 1)에 건립한 묘비 외에, 상석 2기, 향로석, 장명등, 무인석 등이 있다. 무덤을 사각형으로 둘러싼 호석은 장식성이 뛰어나며, 묘역에 배치된 석물은 대부분 웅장하고 솜씨가 뛰어난 조각들이다. 특히 무인석은 크고 입체감 있는 표현이 돋보이는데, 왕릉의 무인석과 유사하며, 조선 전기의 형식을 잘 나타낸다. 장명등도 사대부 묘역에서는 보기 드문 형태로 후대에 조성된 것이다.
수정
조선 초의 문신 김중행(金仲行, 1397~1452)과 부인 순흥 안씨의 합장묘다.
김중행은 고려 고종(1213~1259 재위) 때 거란 격퇴에 큰 공을 세운 김취려(金就礪, 1172~1234) 장군의 후손이다. 단종 초에 관직이 군자감 주부에 이르렀으며, 숙종 때 영의정에 증직되었다. 효령대군의 넷째 아들 낙안군 이녕(李寧, 1418~1474)과 강희안(姜希顔, 1418~1465)은 김중행의 사위이다.
묘소 주위에는 1455년(세조 1)에 건립한 묘비 외에, 상석 2기, 향로석, 장명등, 무인석 등이 있다. 봉분을 사각형으로 둘러싼 호석은 장식성이 뛰어나며, 석물은 대부분 웅장하고 솜씨가 뛰어난 조각들이다. 특히 무인석은 크고 입체감 있는 표현이 돋보여 왕릉의 무인석과 유사하며, 조선 전기의 형식을 잘 나타낸다. 장명등도 사대부 묘역에서는 보기 드문 형태로 후대에 조성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