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김용학 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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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국문

이곳은 살림집과 정자의 조화로운 배치가 돋보이는 1900년대 초의 민간 원림이다. 건물의 배치는 동북쪽이 낮고 서남쪽이 높은 지형을 살려 낮은 곳에 사랑채와 안채를, 높은 곳에 하은정과 연파정을 배치하였다. 청풍헌이란 현판이 걸리 사랑채는 1개의 높은 기둥을 가진 5량집이며 외관은 홑처마 팔짝기와지붕이다. 상량의 기록이 “丁巳 閏二月”인 것으로 미루어 1917년에 지은 것임을 알 수 있다.

수정 국문

초고

개화기 때의 관료 김희수(金喜洙 1861~1934? *확인 예정)와 그의 부친 김용학의 가옥으로 1917년에 지은 집이다. 김희수는 광산김씨로 호는 하은(荷隱)이며, 1879년(고종 16) 문과에 급제하여 이조참의, 대사간, 궁내부 특진관 등을 지냈다.

김용학 가옥은 사랑채와 안채, 연파정(蓮坡亭)과 하은정(荷隱亭), 연못과 정원으로 구성되었다. 집은 동향이며 지대가 높은 서쪽 언덕에 연파정과 하은정이 있고, 동쪽 평지에 사랑채와 안채가 자리 잡았다. 집의 가장 동쪽에는 네모난 연못과 둥근 섬이 있다.

사랑채 청풍헌(淸風軒)은 정면 7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 기와집이다. 4칸의 대청을 중심으로 좌우에 방을 배치했으며, 상량문의 기록(丁巳 閏二月)을 통해 1917년에 건축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하은정은 정면 5칸 측면 3으로 1933년에 지었으며, 연파정은 1918년 김희수가 조부 김영덕을 위해 지은 정자로 정면 3칸 측면 3칸이다. 하은정 건축 당시의 실화로 불이 나 1934년에 중건하였다. 김용학가옥은 전체적으로 주거공간과 정원공간이 서고동저(西高東低)의 지형 및 주변 환경과 자연스러운 조화를 이루고 있다.

1차 수정

김용학의 아버지인 김희수(金喜洙 1861~1934?)가 1917년에 지은 집이다. 김희수는 조선 말기의 문신으로 당시 광주 지역의 유지였다.

언덕진 대지 위에 살림집과 정자를 조화롭게 배치하였다. 지대가 높은 서쪽 언덕에는 정자인 연파정과 하은정이 있고, 동쪽 낮은 평지에 사랑채와 안채가 자리 잡았다. 집의 가장 동쪽에는 네모난 연못과 둥근 섬이 있다.

사랑채 청풍헌(淸風軒)은 1917년에 지었다. 대청을 중심으로 양옆에 온돌방이 있으며, 건물 뒤쪽으로 마루와 부엌을 증축하였다. 연파정과 하은정은 모두 1933년에 지었다. 연파정은 원래 김희수가 아버지 김영덕을 위해 1918년에 지었던 것인데, 하은정 건축 당시 인부들의 실수로 연파정에 불이 나서 같은 해에 다시 지었다. 연파정은 정자의 네 면에 오동나무로 만든 덧문을 달아 비바람을 막을 수 있게 하였다. 두 정자는 100년 이상 된 벚나무에 둘러싸여 있어 봄이 되면 환상적인 절경을 자아낸다.

자문의견

  1. 분야별 자문위원 1
    • 문화재 명칭이 맞고, 사실관계가 객관적임
    • 한자어에 대한 한자표기가 추가될 필요가 있음. 예 : 연파정→연파정(蓮波亭)
    • 전통건축양식의 특징에 대한 표현 등 건축적 이해를 도울 수 있는 내용이 추가될 필요가 있음. 예 : 규모(칸)와 구조 양식(지붕의 형태 등)에 특징 등
  2. 분야별 자문위원 2
    • 근대기 초기, 호남지역에 세워진 민속가옥이 가지고 있는 전근대의 가옥과 차이나는 점 등에 대하여 보다 많은 참고자료들을 토대로 재작성할 필요가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천득염 교수님의 자료에 가옥의 배치와 원림조성의 관점에서 기술하신 내용이 상세히 나옵니다.
  3. 읽기쉬운문안 자문위원
    • 김용학 가옥이라고 돼있는데 그 아버지 이야기만 나오고 정작 김용학에 대한 정보는 없어서 아쉽습니다. 김용학이 누구인지 간단하게라도 소개가 필요해 보입니다.

2차 수정

김용학의 아버지인 하은 김희수(荷隱 金喜洙, 1861~1934?)가 1917년에 지은 집이다. 김희수는 개화기 때의 관료로 당시 광주 지역의 유지였다.

김용학 가옥은 언덕진 대지 위에 살림집과 정자를 조화롭게 배치하였다. 지대가 높은 서쪽 언덕에는 정자인 연파정과 하은정이 있고, 동쪽 낮은 평지에 사랑채와 안채가 자리 잡았다. 집의 가장 동쪽에는 네모난 연못과 둥근 섬이 있다.

사랑채 청풍헌은 1917년에 지었다. 대청을 중심으로 양옆에 온돌방이 있으며, 건물 뒤쪽으로 마루와 부엌을 증축하였다. 연파정과 하은정은 모두 1933년에 지었다. 연파정은 원래 김희수가 아버지 김영덕을 위해 1918년에 지었던 것인데, 하은정 건축 당시 인부들의 실수로 연파정에 불이 나서 1934년에 다시 지었다. 연파정은 정자의 네 면에 오동나무로 만든 덧문을 달아 비바람을 막을 수 있게 하였다. 두 정자는 100년 이상 된 벚나무에 둘러싸여 있어 봄이 되면 환상적인 절경을 자아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