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금남 모인당

HeritageWiki
이동: 둘러보기, 검색

2020 안내문안 초안 작성 지원 사업

기존 국문

없음.

수정 국문

초고

최한정(崔漢禎, 1427∼1486)과 그의 아들인 최중온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최한정은 1459년 문과에 급제하였다. 성종(1469~1494 재위)이 그를 신뢰하여 대사간에 임명하였으며, 그 뒤 여러 벼슬을 지냈다.

사당은 1669년(현종 10)에 세웠고 1928년에 고쳤다. 앞면 4칸, 옆면 2칸 규모이며, 건물 가운데 대청마루를 깔았다. 좌우에 온돌방을 1칸씩을 두었으며, 지붕은 팔(八)자 모양의 팔작지붕으로 꾸몄다.

1차 수정

조선시대의 문신인 최한정(崔漢禎, 1427~1486)과 그의 아들인 최중온(1466~1533)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최한정은 1459년 문과에 급제하였다. 성종(1469~1494 재위)이 그를 신뢰하여 대사간에 임명하였으며, 그 뒤 여러 벼슬을 지냈다.

사당은 1669년에 세웠고 1928년에 고쳤다. 앞면 4칸, 옆면 2칸 규모이며, 건물 가운데 대청마루를 깔고 좌우에 온돌방을 1칸씩 두었다.

자문의견

  1. 분야별 자문위원1
    • 화순최씨 종중 재실로 조선시대 문신 최한정(崔漢禎, 1427~1486)과 아들 최중온(1466~1533)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 최한정은 1459년(세조 5) 문과 급제 후 사간원 정언·병조좌랑·사헌부 지평·예조정랑 및 예문관교리 겸 경연시독관(經筵侍讀官) 등을 두루 역임하였다. 성종(1469~1494)의 신뢰가 깊어, 주변의 반대에도 대사간에 임명되기도 하였다.
    • 사당은 1669년(현종 10)에 건립되었으며, 일부 훼손된 부분은 1928년에 보수되었다. 앞면 4칸·옆면 2칸 규모로 건물 중앙에 대청마루를 깔고 접어지는 문을 달아, 제사지낼 때 들어 올려 공간을 확보하였다. 좌우 대칭으로 온돌방을 1칸씩을 두었으며, 지붕은 옆에서 보면 여덟 팔(八)자 모양의 팔작지붕이다.
  2. 분야별 자문위원2
    • 최중온(1466~1533) → 최중홍(崔重洪; 1466~1533)
  3. 읽기쉬운문안 자문위원
    • 오류사항 없음.

2차 수정

조선시대의 문신인 최한정(崔漢禎, 1427~1486)과 그의 아들인 최중홍(崔重洪, 1466~1533)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최한정은 1459년 문과에 급제하였다. 성종(1469~1494 재위)이 그를 신뢰하여 대사간에 임명하였으며, 그 뒤 여러 벼슬을 지냈다. 최중홍은 1496년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올랐으나, 1504년 갑자사화 때 삭직되었다. 1506년 중종반정 이후 복직되었고, 충청도 관찰사, 형조참판, 강원도 관찰사, 전라도 관찰사 등을 지냈다.

사당은 1669년에 건립되었으며, 일부 훼손된 부분은 1928년에 보수되었다. 앞면 4칸, 옆면 2칸 규모로 건물 중앙에 대청마루를 좌우에 온돌방을 1칸씩 두었다. 제사를 지낼 때에는 마루와 방 사이의 문을 들어 올려 넓은 공간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