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군산 신흥동 일본식 가옥
2020 안내문안 초안 작성 지원 사업
기존 국문
이 건물은 일제강점기에 군산에서 소규모 농장을 운영하며 부협의회 회원을 지낸 일본인이 건립한 일본식 2층 목조 가옥이다. ‘ㄱ’ 자 모양으로 붙은 건물이 두 채 있고, 두 건물 사이에 꾸며놓은 일본식 정원에는 큼직한 석등이 있다. 1층에는 온돌방, 부엌, 식당, 화장실 등이 있고 2층에는 일식 다다미방과 도코노마 등이 있어 일제강점기 일본인 지주의 생활양식을 엿볼 수 있으며 아울러 이들의 농촌 수탈 역사를 알 수 있다. 영화 장군의 아들과 타짜를 촬영하기도 하였다.
수정 국문
초고
일제강점기 미곡상이자 대지주였던 히로쓰 기치사브로(廣津吉三朗, 1878~1949)가 1935년 건축한 저택이다. 해방 후 적산가옥으로 분류되어 구 호남제분의 사장 이용구에게 불하되었다가 2005년 등록문화재로 등록된 후 일반에 개방되었다.
건물은 모두 일본 삼나무로 지었으며, 2층 본채와 부속채가 비스듬히 결합되어 있다. 본채 뒤뜰에는 별채를 두었다. 본채 1층에는 온돌방, 부엌, 식당, 화장실 등이 있고 2층에는 다다미(疊)방과 일본 전통의 장식대인 도코노마(床間), 붙박이장 오시이레(押入) 등이 있다.
일제강점기 일본인 상류층의 주거양식을 살필 수 있는 가옥으로 일본인이 건축한 집이었지만 한국식 온돌이 설치된 점이 이색적이다. 근대 일제강점기의 주택으로 규모가 크고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어 ‘장군의 아들’ ‘타짜’ 등 유명 영화의 촬영지로도 활용되었다.
1차 수정
일제강점기 미곡상이자 대지주였던 히로쓰 기치사브로(廣津吉三朗, 1878~1949)가 1935년 건축한 저택이다. 해방 후 적산가옥으로 분류되어 구 호남제분의 사장 이용구에게 불하되었다가 2005년 등록문화재로 등록된 후 일반에 개방되었다.
건물은 모두 일본 삼나무로 지었으며, 2층 본채와 부속채가 비스듬히 결합되어 있다. 본채 뒤뜰에는 별채를 두었다. 본채 1층에는 온돌방, 부엌, 식당, 화장실 등이 있고 2층에는 다다미방과 일본 전통의 장식대인 도코노마(床間), 붙박이장 오시이레(押入) 등이 있다.
일제강점기 일본인 상류층의 주거 양식을 살필 수 있는 가옥으로 일본인이 건축한 집이었지만 한국식 온돌이 설치된 점이 이색적이다. 근대 일제강점기의 주택으로 규모가 크고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어 ‘장군의 아들’, ‘타짜’ 등 유명 영화의 촬영지로도 활용되었다.
자문의견
- 분야별 자문위원1
- 군산 신흥동 일본식 가옥은 2층 규모의 목조 주택으로 일제강점기 부유층 거주지였던 군산 원도심 외곽에 위치하고 있다.
- 중복도를 중심으로 응접실과 방, 부엌을 연결하고, 내부 계단을 통해 2층 방으로 이어지는 일식 주택의 공간구성이 나타나며, 붙박이장과 장식벽감, 서까래 등에서 일식 주택의 의장적 특성을 볼 수 있다. 정원에 면한 복도를 통해 부속채와 비스듬하게 연결되며, 본채와 부속채 사이에 2층 규모의 창고가 결합되어 실내에서 연결되는 것도 특징적이다. 군산에서 미곡상을 운영하던 지주였던 히로쓰 기치사부로가 소유했던 이 집은 광복후 구 호남제분 이용구(李龍九, 1914∼1993) 사장 가족이 거주하면서 뒤뜰에 작은 수영장을 조성하기도 하였다.
- 한국의 겨울에 적응하기 위해 만들어진 온돌방과 서양식 응접실을 함께 갖춘 주택으로 다양한 주거 문화가 접목된 근대 주택의 한 단면을 잘 보여주고 있다.
- 분야별 자문위원2
- 없음.
- 읽기쉬운문안 자문위원
- 일제강점기 미곡상이자 대지주였던 히로쓰 기치사브로(廣津吉三朗, 1878~1949)의 가옥으로, 1935년 완공되었다. 해방 후 적산가옥으로 분류되어 구 호남제분의 사장 이용구에게 불하되었다가 2005년 등록문화재로 등록된 후 일반에 개방되었다.
- 건물은 모두 일본 삼나무로 지었으며, 2층 본채와 부속채가 비스듬히 결합되어 있다. 본채 뒤뜰에는 별채를 두었다. 본채 1층에는 온돌방, 부엌, 식당, 화장실 등이 있고 2층에는 다다미방과 일본 전통의 장식대인 도코노마(床間), 붙박이장 오시이레(押入) 등이 있다.
- 일제강점기 일본인 상류층의 주거 양식을 엿볼 수 있으며, 또한 일본식 가옥에 한국식 온돌이 설치된 것이 특징이다. 근대 일제강점기의 주택으로 규모가 크고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어 ‘장군의 아들’, ‘타짜’ 등 유명 영화의 촬영지로도 활용되었다.
2차 수정
일제강점기 미곡상이자 대지주였던 히로쓰 기치사브로(廣津吉三朗, 1878~1949)의 가옥으로, 1935년 완공되었다. 해방 후에는 구 호남제분의 이용구(李龍九, 1914~1993) 사장 가족이 거주하기도 하였다. 2005년 국가등록문화재로 등록된 후 일반에 개방되었다.
건물은 모두 일본 삼나무로 지었으며, 본채와 부속채가 서로 비스듬히 연결되어 있다. 본채 뒤뜰에는 별채를 두었다. 중복도를 중심으로 응접실과 방, 부엌을 연결하고, 내부 계단을 통해 2층 방으로 이어지는 일식 주택의 공간구성이 나타나며, 붙박이장과 장식벽감, 서까래 등에서 일식 주택의 의장적 특성을 볼 수 있다.
일제강점기 일본인 상류층의 주거 양식을 엿볼 수 있으며, 또한 일본식 가옥에 한국식 온돌이 설치된 것이 특징이다. 근대 일제강점기의 주택으로 규모가 크고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어 ‘장군의 아들’, ‘타짜’ 등 유명 영화의 촬영지로도 활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