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고흥 운대리 도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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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안내문안 초안 작성 지원 사업

기존 국문

고려초기 청자와 조선초기 분청자를 만들던 가마터 30여기가 분포하고 있는데, 특히 분청자는 대규모로 오랫동안 만들어져 분청자의 특징과 변천과정을 밝히는데 귀중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분포 상황은 운대리 점골에 청자가마터 2기와 분청자 가마터 3기, 상대마을 뒷골에 청자가마터 1기와 분청자가마터 2기, 상대마을 장자수냉골에 분청자 가마터 1기, 운곡마을 참사골에서 상대마을 입구까지 청자가마터 1기와 분청자가마터 10기, 중사들 주변 산에 분청자가마터 8기, 중대마을 북쪽에 청자가마터 1기, 대절에 분청자가마터 1기등이 있다.

청자 가마터에는 청자와 흑자, 녹청자 등의 자기류와 갑발과 갑발받침, 도지미 등의 가마 도구가 출토되었다, 그릇의 종류는 청자는 대접과 접시, 완, 종지 등 작은 그릇인데 비해 흑자는 항아리와 병, 주전자, 발 등 큰 그릇이 많아 그 쓰임새에 따라 그릇을 만들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바탕 흙은 대부분 치밀하지 않고 기포(氣泡)가 많으며, 유약은 얇게 발라져 녹색이 감도는 회청색 투명유가 많다. 흑자는 바탕 흙은 짙은 회색과 흑회색을 띠며 기포가 많고, 유약은 암갈색과 흑갈색유를 그릇 전체에 시유하였다. 녹청자는 녹갈색을 띠며 용융(熔融) 상태가 좋지 않아 녹색 반점이 있다. 내화토 빚음을 굽바닥과 그릇 안바닥에 받쳐포개 구웠다.

분청자는 상감과 인화(印花), 조화(彫花), 박지(剝地), 귀얄, 덤벙무늬 등 모든 기법이 확인되고 있으며, 철화(鐵畵)무늬는 소량 출토되고 있다. 그중 조화와 박지기법이 많이 출토되며, 특히 덤벙무늬는 그릇 전체에 분장하여 백자와 구별이 쉽지 않다. 대접과 접시는 대부분 그릇 안쪽 면에 다양한 무늬를 그리고 있다. 바탕 흙은 회색과 회청색, 회흑색 등을 띠며 기포가 많다. 바탕 흙 빚음이나 모래 빚음을 굽바닥과 그릇 안바닥에 받쳐 포개 구웠다.

수정 국문

초고

1차 수정

운대리 도요지는 통일신라시대 말부터 조선시대까지 청자와 분청사기를 만들던 가마터가 집중적으로 분포하고 있는 유적지이다. 운대저수지를 중심으로 운곡마을 양옆 구릉의 두원천 주변에 청자 가마터 5곳과 분청사기 가마터 25곳 등 모두 30곳의 가마터가 있다.

청자 가마터에서는 청자, 흑자 등의 자기류와 갑발, 갑발 받침 등의 제작도구가 출토되었다. 갑발은 도자기를 구울 때 가마 안의 이물질이나 재가 떨어지는 것을 막고 일정한 온도를 유지하기 위해 사용하는 큰 그릇으로, 이곳에서 최상품의 청자를 제작했다는 것을 시사한다. 그릇의 종류는 청자의 경우 대접, 접시, 완, 종지 등 소형 그릇이 많은 데 비해 흑자는 병, 항아리, 주자 등 대형이 많아 용도에 따라 다양한 자기를 만들었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초기 청자 형식인 해무리굽 청자는 굽 안쪽이 둥글게 깎인 것부터 평평한 것까지 여러 종류가 다량 발견되어 초기 청자의 변화 과정을 보여준다.

분청사기 가마터에서 출토된 분청사기는 인화, 상감, 조화, 박지, 귀얄, 덤벙, 철화 등 분청사기 제작에 필요한 모든 기법들이 이용되었다. 특히 귀얄분청과 덤벙분청이 집중적으로 제작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발견된 그릇의 종류는 대접, 접시, 잔, 병, 항아리, 단지, 장군, 벼루 등이며, 대접과 접시 같은 일상생활 용기가 주를 이룬다. 갑발은 발견되지 않았으며, 모래받침과 같은 도구를 사용해 포개구운 것으로 보인다.

30곳의 가마 중 발굴조사가 완료된 1호와 2호 가마는 2011년 ‘고흥 운대리 분청사기 요지’라는 명칭의 사적 제519호로 지정되었다. 이곳은 산기슭의 자연 경사면을 이용한 단실 오름가마로 15세기에 분청사기를 제작하는 데 사용되었다, 우리나라 최남단의 위치한 분청사기 요지이며, 분청사기의 특성과 변천 과정을 밝히는 데 중요한 자료를 제공한다.

자문의견

  1. 분야별 자문위원 1
    • 초등학생도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 삽입 -> 운대리 도요지(도요지란? 토기나 도자기를 구워내던 가마의 유적)
    • 설명이 ( )안에 써주면 좋겠음(??) -> 인화, 상감, 조화, 박지, 귀얄, 덤벙, 철화
    • 삭제 -> ~ 를 사용해 포개 구운 것으로 보인다.
    • 용어 우리말로 풀기 -> 단실 오름가마
  2. 분야별 자문위원 2
    • 운대리 도요지는 통일신라시대 말부터 조선시대까지 청자와 분청사기를 만들던 가마터가 집중적으로 분포하고 있는 유적지이다. 운대저수지를 중심으로 운곡마을 양옆 구릉의 두원천 주변에 청자 가마터 5곳과 분청사기 가마터 25곳 등 모두 30곳의 가마터가 있다.
      청자 가마터에서는 청자와 암갈색과 흑갈색 유약을 입힌 흑자 등의 자기류와 갑발, 갑발 받침 등의 제작도구가 출토되었다. 청자의 경우 대접, 접시, 완, 종지 등 소형 그릇이 많은 데 비해 흑자는 병, 항아리, 주자 등 대형이 많아 용도에 따라 다양한 자기를 만들었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초기 청자 형식인 해무리굽 청자는 굽 안쪽이 둥글게 깎인 것부터 평평한 것까지 여러 종류가 다량 발견되어 초기 청자의 변화 과정을 보여준다. 갑발은 도자기를 구울 때 가마 안의 이물질이나 재가 떨어지는 것을 막고 일정한 온도를 유지하기 위해 사용하는 큰 그릇으로, 이곳에서 최상품의 청자를 제작했다는 것을 시사한다.
      분청사기 가마터에서는 인화(印花), 상감(象嵌), 조화(彫花), 박지(剝地), 귀얄, 덤벙, 철화(鐵畵) 등 분청사기에서 확인되는 모든 기법의 분청사기가 출토되었다. 덤벙과 귀얄기법의 분청사기조각이 다량 출토되었는데 덤벙분청사기가 집중적으로 제작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분청사기 그릇의 종류는 대접, 접시, 잔, 병, 항아리, 단지, 장군, 벼루 등이며, 대접과 접시 같은 일상생활 용기가 주를 이룬다. 갑발은 발견되지 않았으며, 모래받침과 같은 도구를 사용해 포개구운 것으로 보인다.
      30곳의 가마 중 발굴조사가 완료된 1호와 2호 가마는 2011년 ‘고흥 운대리 분청사기 요지’라는 명칭의 사적 제519호로 지정되었다. 이곳은 산기슭의 자연 경사면을 이용한 단실 오름가마로 15세기에 분청사기를 제작하는 데 사용되었다, 우리나라 최남단의 위치한 분청사기 요지이며, 분청사기의 특성과 변천 과정을 밝히는 데 중요한 자료를 제공한다.
  3. 읽기 쉬운 문안 자문위원
    • 분청사기 가마터에서 출토된 분청사기는 인화, 상감, 조화, 박지, 귀얄, 덤벙, 철화 등 분청사기 제작에 필요한 모든 기법들이 이용되었다. -> 분청사기 가마터에서 출토된 분청사기에는 인화, 상감, 조화, 박지, 귀얄, 덤벙, 철화 등 분청사기 제작에 필요한 모든 기법들이 담겨있다.

2차 수정

운대리 도요지는 통일신라시대 말부터 조선시대까지 청자와 분청사기를 만들던 가마터가 집중적으로 분포하고 있는 유적지이다. 운대저수지를 중심으로 운곡마을 양옆 구릉의 두원천 주변에 청자 가마터 5곳과 분청사기 가마터 25곳 등 모두 30곳의 가마터가 있다.

청자 가마터에서는 청자와 암갈색과 흑갈색 유약을 입힌 흑자 등의 자기류와 갑발, 갑발 받침 등의 제작도구가 출토되었다. 청자의 경우 대접, 접시, 완, 종지 등 소형 그릇이 많은 데 비해 흑자는 병, 항아리, 주자 등 대형이 많아 용도에 따라 다양한 자기를 만들었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초기 청자 형식인 해무리굽 청자는 굽 안쪽이 둥글게 깎인 것부터 평평한 것까지 여러 종류가 다량 발견되어 초기 청자의 변화 과정을 보여준다. 갑발은 도자기를 구울 때 가마 안의 이물질이나 재가 떨어지는 것을 막고 일정한 온도를 유지하기 위해 사용하는 큰 그릇으로, 이곳에서 최상품의 청자를 제작했다는 것을 시사한다.

분청사기 가마터에서는 인화, 상감, 조화, 박지, 귀얄, 덤벙, 철화 등 분청사기에서 확인되는 모든 기법의 분청사기가 출토되었다. 특히 덤벙과 귀얄 기법을 사용한 분청사기가 집중적으로 제작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발견된 그릇의 종류는 대접, 접시, 잔, 병, 항아리, 단지, 장군, 벼루 등이며, 대접과 접시 같은 일상생활 용기가 주를 이룬다. 갑발은 발견되지 않았으며, 모래받침과 같은 도구를 사용해 구운 것으로 보인다.

30곳의 가마 중 발굴조사가 완료된 1호와 2호 가마는 2011년 ‘고흥 운대리 분청사기 요지’라는 명칭의 사적 제519호로 지정되었다. 이곳은 산기슭의 자연 경사면을 이용한 단실 오름가마로 15세기에 분청사기를 제작하는 데 사용되었다, 우리나라 최남단의 위치한 분청사기 요지이며, 분청사기의 특성과 변천 과정을 밝히는 데 중요한 자료를 제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