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안 문양목 생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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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 문양목 생가터
Birthplace of Mun Yang-mok, Taean
태안 문양목 생가터,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태안 문양목 생가터
영문명칭 Birthplace of Mun Yang-mok, Taean
한자 泰安 文讓穆 生家터
주소 충청남도 태안군 남면 몽산리 268-2 외 2필지
지정(등록) 종목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403호
지정(등록)일 2009년 12월 21일
분류 유적건조물/인물사건/인물기념/탄생지
수량/면적 599제곱미터
웹사이트 태안 문양목 생가터,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태안 문양목 생가터는 독립운동가인 우운 문양목(文讓穆, 1869~1940)이 태어난 곳으로 집은 불타 없어지고 터만 남아 있다.

문양목은 태안군 남면 몽산리 출생으로 문익점의 18대손이다. 1894년 동학농민혁명에 참여하였으며,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하와이에 망명하여 1907년 국권회복을 목적으로 대동보국회를 결성하고 대동공보를 간행하였다. 이듬해인 1908년 친일파인 한국외무부 고문 스티븐스가 일제의 침략을 정당화하는 발언을 하자 그를 방문하여 발언 취소를 요구하였고 스티븐스를 암살한 장인환과 전명운을 지원하였다. 이후 한인소년병학교에서 군인 양성을 통해 항일무장투쟁을 하였으며 1940년 돌아가실 때까지 독립운동에 힘썼다. 1995년 문양목의 공훈을 기려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현재 생가터 인근에는 문양목의 위패를 모신 충운사(忠雲祠)가 있으며 매년 이곳에서 추모제를 지내고 있다.

영문

Birthplace of Mun Yang-mok, Taean

This the birthplace of the Mun Yang-mok (1869-1940), an independence activist of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1910-1945). The house burnt down and only its site remains.

Mun Yang-mok participated in the Donghak Peasant Revolution of 1894. Following the forced signing of the illegal Japan-Korea Treaty of 1905, which stripped the Korean Empire of its diplomatic rights by making it a protectorate of Japan, Mun fled to Hawaii. In 1907, he formed the United Korean Protection Society in San Francisco for the purpose of restoring national sovereignty. In 1908, when Durham White Stevens (1951-1908), an American diplomat serving as adviser to the Korean Empire’s Ministry of Foreign Affairs, made a comment justifying the Japanese invasion, Mun visited him and demanded him to revoke his comment. After Jeon Myeong-un (1884-1947) and Jang In-hwan (1875-1930) assassinated Stevens a few weeks later, Mun supported them in their trial. He aided the establishment of the Korean Youth Military School in Hastings, Nebraska in 1909 and supported the armed struggle against Japan. While in the United States, he remained dedicated to the anti-Japanese movement and the protection of the rights and interests of the Korean workers there. He died of a cerebral hemorrhage just a few years before his dream of Korean independence was realized. In 1995, he was bestowed with the Order of Merit for National Foundation.

A shrine named Chungunsa Shrine was built at the site of Mun Yang-mok’s birthplace. A veneration ritual for Mun Yang-mok is performed at the shrine each year.

영문 해설 내용

이곳은 독립운동가 문양목(1869-1940)이 태어난 집이 있던 자리이다. 집은 불타 없어지고 터만 남아있다.

문양목은 1894년 동학농민혁명에 참여하였으며, 1905년 일본이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강제로 박탈한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하와이로 망명하였다. 1907년 국권 회복을 목적으로 샌프란시스코에서 대동보국회를 결성하였고, 1908년에는 당시 일본 외무성 고문 스티븐스(Stevens, D.W.)가 일제의 침략을 정당화하는 발언을 하자 그를 방문하여 발언 취소를 요구하였다. 얼마 후 스티븐스를 암살한 전명운과 장인환의 재판을 후원하였고, 한인소년병학교의 설립에 힘을 보태며 항일무장투쟁을 지지하기도 하였다. 미국에서 계속 항일민족운동과 미국의 한인 노동자 권익 옹호를 위해 힘쓰다가 뇌출혈로 사망했다. 1995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받았다.

현재 생가터에는 문양목의 위패를 모신 사당인 충운사가 있으며, 매년 문양목의 추모제를 지낸다.

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