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성루 및 휴계재사
칠성루 및 휴계재사 Chilseongnu Pavilion and Hyugyejaesa Ritual Hous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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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칠성루 및 휴계재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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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명칭 | Chilseongnu Pavilion and Hyugyejaesa Ritual House |
한자 | 七星樓 및休溪齋舍 |
주소 | 경상북도 영주시 이산면 용상리 449번지 |
지정(등록) 종목 |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74호 |
지정(등록)일 | 1983년 9월 29일 |
분류 | 유적건조물/주거생활/조경건축/누정 |
수량/면적 | 2동 |
웹사이트 | 칠성루 및 휴계재사,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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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국문
누정(樓亭)은 누각(樓閣)과 정자(亭子)를 아울러 이르는 말로 사방을 바라볼 수 있도록 다락처럼 바닥을 땅에서 한층 높게 지은 건물이다. 자연을 배경으로 한 남성 위주의 유람이나 휴식 공간으로 살림집 외에 특별히 지은 건물이다. 원래 누정에는 방이 없었는데, 누정의 기능이 다양화하면서 방을 만들게 되었다. 재사는 제사를 지내려고 무덤 또는 신주*나 영정*을 모시는 사묘 옆에 지은 건물로 재실이라고도 한다. 제사에 참석하는 사람들의 숙식, 제사 음식 장만, 제사를 마치고 음식을 나누어 먹는 음복, 타향에서 조상의 무덤이 있는 곳을 향해 지내는 제사인 망제, 문중 회의 등이 열리는 장소이다.
칠성루와 휴계재사는 조선 시대 문신인 휴계공 전희철(全希哲)을 추모하려고 후손들이 세운 건물이다. 칠성루는 조선 인조 9년(1631), 휴계재사는 선조 9년(1576)에 지었다고 알려졌으나, 건물에서 발견된 상량문(上樑文)*의 내용으로 볼 때 재사는 숙종 22년(1696)과 23년(1697) 사이에 건립된 것으로 보인다. 경사진 넓은 땅에 터를 잡고 왼쪽에 칠성루, 오른쪽에 재사가 나란히 남쪽을 향하고 있다. 칠성루와 재사의 서북쪽 언덕 위에는 휴계공 전희철을 비롯한 조상들의 무덤이 있다.
칠성루는 앞면에 좁은 마루인 툇마루와 난간을 두었고 가운데에 큰 마루인 대청이 있는데, 대청 양쪽에는 온돌방을 만들었다. 휴계재사는 앞면 5칸, 옆면 5칸 규모로 口자 모양의 집이다. 앞면 가운데 있는 안마당으로 들어가는 문인 중문과 대청을 잇는 축을 기준으로 좌우에 방 2칸, 부엌 2칸, 살림살이를 넣어 두는 고방 1칸이 대칭을 이루면서 배치되어 있다. 이렇게 대칭을 이루는 평면 구성은 재사 건물에서 드문 사례이다.
칠성루와 휴계재사는 조선 시대 후기의 누각과 재사의 모습을 알려주는 귀중한 자료이다.
- 신주 : 죽은 사람의 이름과 죽은 날짜를 적은 나무패
- 영정 : 제사나 장례를 지낼 때 위패 대신 쓰는, 사람의 얼굴을 그린 족자
- 상량문:기둥에 보를 얹고 그 위에 처마 도리와 중도리를 걸고 마지막으로 마룻대를 올리는 상량식을 축하하는 글
영문
Chilseongnu Pavilion and Hyugyejaesa Ritual House
This pavilion and ritual house were established in the 17th century for the preparation of ancestral rituals and the maintenance of the tomb of Jeon Hui-cheol (1425-1521, pen name: Hyugye), a military official of the Joseon period (1392-1910). The pavilion on the left was built first in 1631, and the ritual house on the right was added circa 1696-1697. Directly behind the two buildings is Bangsanseowon Confucian Academy, which honors Jeon Hui-cheol, Jeon Ik-hui (1598-1659), and Jeon Myeong-ryong (1606-1667). On the hill to the northwest is a cemetery of the Okcheon Jeon Clan, including Jeon Hui-cheol.
Jeon Hui-cheol was born in Okcheon, Chungcheong-do Province. After he married, he moved to his wife’s hometown in today’s Hyucheon-dong in Yeongju, making him the first person from the Okcheon Jeon Clan to settle in the Yeongju area. He pursued a political career but retired to Yeongju in 1453, after King Sejo (r. 1455-1468) usurped the throne from his nephew King Danjong (r. 1452-1455).
Chilseongnu Pavilion was built by Jeon Hui-cheol’s 5th-generation descendant Jeon Ik-hui. The name Chilseongnu means “Pavilion of the Seven Stars (of the Big Dipper).” This name comes from the story that every evening, Jeon Hui-cheol would wear his official robes and make a deep bow toward the Yeongwol area where King Danjong had been exiled, so its name comes from the analogy with the stars revolving around Polaris at the center. The pavilion consists of a wooden-floored hall in the center, an underfloor-heated room on each side, and a narrow wooden veranda with balustrades along the front.
Hyugyejaesa Ritual House is said to have originally been located in today’s Sangmang-dong in Yeongju next to a shrine honoring Jeon Hui-cheol. However, after the shrine was demolished in 1868 when most shrines and Confucian academies were shut down by a nationwide decree, the activities to be performed at this ritual house, such as ancestral rituals and family gatherings, grew. So, in 1876, the ritual house was moved to its current location near the tomb of Jeon Hui-cheol and expanded. The building’s structure forms a square layout with a courtyard in the center. There is a wooden-floored hall in the center rear of the building, with an underfloor-heated room, kitchen, and a storeroom situated symmetrically to either side of the wooden-floored hall. This kind of symmetrical layout is rarely seen in ritual house buildings.
영문 해설 내용
이 정자와 재사는 조선시대의 무신 전희철(1425-1521, 호: 휴계)의 묘소를 수호하고 제사를 준비하기 위해 17세기에 지었다. 왼쪽의 칠성루는 1631년, 오른쪽의 휴계재사는 1696-1697년 경에 각각 건립되었다. 두 건물의 바로 뒤에는 전희철, 전익희(1598-1659), 전명룡(1606-1667)을 모신 방산서원이 있고, 서북쪽 언덕 위에는 전희철을 비롯한 옥천전씨 문중의 묘소가 있다.
전희철은 충청도 옥천 출신이며, 결혼 후 처가인 지금의 영주 휴천동 지역에 살게 되면서 옥천전씨의 영주 지역 입향조가 되었다. 이후 벼슬길에 나갔다가, 1453년 세조(재위 1455-1468)가 조카인 단종(재위 1452-1455)을 내쫓고 왕위를 찬탈하는 사건이 발생하자, 관직을 버리고 영주로 돌아왔다.
칠성루는 전희철의 5대손인 전익희가 지었다. ‘칠성’이라는 이름은 북극성을 의미한다. 전희철은 매일 밤 관복을 갖추어 입고 단종이 유배되어 있던 영월을 향해 절을 올렸다고 하는데, 이를 별들이 북극성을 중심으로 도는 것이 비유해서 붙인 이름이다. 중앙에 대청을 두고 양쪽에 온돌방을 두었으며, 앞면에는 툇마루를 깔고 난간을 둘렀다.
휴계재사는 원래 전희철의 사당이 있던 지금의 영주 상망동에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사당이 1868년 서원철폐령으로 철거된 후, 재사에서 제사나 문중 회의 등 거행되는 일이 많아지자 1876년에 전희철의 묘소 앞인 지금의 위치로 옮겨 증축하였다. 가운데에 안마당을 둔 ㅁ자형의 구조이고, 가운데에 있는 대청을 기준으로 좌우에 각각 온돌방, 부엌, 고방이 대칭을 이루며 배치되어 있다. 이렇게 대칭을 이루는 평면 구성은 재사 건물에서 드문 사례이다.
참고자료
- 칠성루 및 휴계재사, 디지털영주문화대전 http://yeongju.grandculture.net/yeongju/toc/GC07400995
- 단종에 대한 절의를 지킨 전희철을 추모하는 영주 칠성루, 지역N문화 역사문화유산 https://ncms.nculture.org/pavilion/story/2420 -> 칠성루란 누각의 이름은 단종 유배와 관련이 깊다. 단종의 유배지 영월(寧越)에는 백월산(百越山)이 있는데, 북극성이 머무는 장소였다. 전희철은 밤마다 의관을 갖추고 북쪽을 향해 머리를 조아렸는데, 북극성을 중심으로 돈다는 뜻이었다. 세월이 흘러 하늘의 운수가 순환하여 단종이 복위되고 여러 신하들이 제단을 만들어 제사를 받드는 상황이 되었다. 그러나 전희철의 묘소는 멀리 떨어진 영주의 궁벽한 산중에 있어 제사를 받들 순 없지만 그의 정령은 기성(箕星)과 미성(尾星)을 살펴보면서 구름과 무지개를 좇아 태백산 비등곡(飛磴谷)을 왕래할 것으로 후손들은 믿었다. 즉 살아서 칠성(七星)을 받들고 죽어서는 칠성산에 묻힌 전희철의 사적에서 칠성루란 명칭이 유래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