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곡 감호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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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곡 감호당
Gamhodang Lecture Hall, Chilgok
대표명칭 칠곡 감호당
영문명칭 Gamhodang Lecture Hall, Chilgok
한자 漆谷 鑑湖堂
주소 경상북도 칠곡군 매원2길 6-5
지정(등록) 종목 경상북도 문화유산자료
지정(등록)일 2014년 2월 17일
분류 유적건조물/주거생활/주거지/주거지
소유자 광주이씨감호당파종중
관리자 광주이씨감호당파종중
시대 조선
수량/면적 1동
웹사이트 칠곡 감호당, 국가유산포털, 국가유산청.



해설문

국문

감호당은 1623년에 석담 이윤우가 퇴계학을 계승하고 후학을 가르치기 위해 지은 건물이다. 만년에 아들 이도장*에게 물려주었고, 이도장은 여기에 거처하며 후학양성을 이어갔다.

정면 5칸, 측면 1칸 규모의 ‘一’자형의 건물로서 좌측에는 한 칸, 우측에는 두 칸 규모의 온돌방을 두었다. 좌측방은 ‘불괴문’이라는 편액이 걸려있는데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산다”라는 뜻으로 항상 올바른 행동으로 후학에게 모범이 되고자 했던 스승이 기거했던 방이다. 우측 방은 ‘무첨실’이라는 편액이 걸려있으며 “마음가짐을 바르게하여 학문을 공부한다”라는 의미로 유학을 배우는 학동들의 공부방으로 사용되었다. 건립연대를 17세기까지 올려 볼 수 있는 널영쌍창*과, 위상을 읽게 하는 흔치 않은 제공형 보아지*가 이색적이다.

감호당은 역사적으로 이 지역에서 차지하는 석담의 사회적 위상뿐만 아니라, 매원마을의 역사문화 환경의 중요한 요소로 자리 매김하고 있다.


  • 이도장(李道章). 석담 이윤우의 셋째 아들로 호는 감호당이다.
  • 널영쌍창: 창틀 가운데 작은 기둥을 세운 판자로 만든 창
  • 보아지: 기둥머리 또는 주두에 끼워 보와 기둥의 짜임새를 보강하는 짧은 부재

영문

Gamhodang Lecture Hall, Chilgok

Gamhodang Lecture Hall was established in 1623 by Yi Yun-u (1569-1634), a civil official from Chilgok, as a venue for educating younger scholars. The building was inherited by his third son, Yi Do-jang (1607-1677), who continued his father’s mission of nurturing disciples. The name Gamhodang, meaning “Hall of a Clear Lake that Reflects the Mind,” symbolizes the spirit of upright learning and self-cultivation.

The lecture hall, which measures five bays in width by one bay in depth, comprises a wooden-floored hall at the center flanked by underfloor-heated rooms on either side. The room on the left belonged to the teacher, while the room on the right belonged to the students. The teacher’s room features a plaque that reads “A Gate Without Shame,” which reflects the teacher’s aspiration to live with integrity and lead by example, while the students’ room features a plaque that reads “A Room Without Flattery,” which conveys the ideal of pursuing learning with sincerity and upright intention.

영문 해설 내용

이 건물은 칠곡 출신의 문신 이윤우(1569-1634)가 후학을 가르치기 위해 1623년에 지었다. 이후 셋째 아들인 이도장(1607-1677)이 이 건물을 물려 받아 후학 양성을 이어갔다. 감호당이라는 이름은 ‘마음을 비추는 맑은 호수’라는 뜻으로, 바른 학문과 수양의 정신을 담고 있다.

감호당은 정면 5칸, 측면 1칸 규모이고, 마루방을 중심으로 양옆에 온돌방이 있다. 왼쪽 방은 스승이 기거했던 방이고 오른쪽 방은 학생들의 공부방이다. 스승의 방에는 “부끄럽지 않은 문”이라는 뜻의 편액이 걸려있는데, 이는 항상 올바른 행동으로 후학에게 모범이 되고자 했던 스승의 마음을 나타낸 것이다. 학생방에는 “아첨하지 않는 방”이라는 뜻의 편액이 걸려있으며, 이는 “마음가짐을 바르게하 여 학문을 공부한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참고자료

  • 감호당의 의미
    • 이윤우가 정사를 짓고 그 이름에 감호(鑑湖)로 붙인 것은 멀리는 공자에서 주희를 거쳐, 가깝게는 퇴계에서 한강으로 이어진 도학의 근원이 ‘명체(明體)’ 곧 심법(心法)임을 확고히 하기 위해서였다. 감호(鑑湖)는 주희(朱熹)가 복송의 도학자 주돈이(周敦頤)의 『통서(通書)』를 주해하면서 ‘물결 없이 고요한 밝은 거울’(明鑑止水)로 심체(心體)를 묘사한 데서 연유하여 붙인 이름이다.
      “물결 없이 고요한 호수(止水)”는 “밝은 거울(明鑑)”과 같이 만유 본래의 이치를 남김없이 비춘다는 것으로 곧 거경(居敬)하여 사심(私心)의 동요를 가라앉혀 마음이 적정(寂靜)해지면 영명(靈明)한 본성이 회복되어 격물치지(格物致知)하는 궁리(窮理)가 온전히 이루어질 수 있는 바, 그것을 근원으로 비로소 성의정심(誠意正心)과 수제치평(修齊治平)의 성학(聖學)이 가능해진다는 의미를 내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