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주 조동리 유적
| 충주 조동리 유적 Archaeological Site in Jodong-ri, Chungju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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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표명칭 | 충주 조동리 유적 |
|---|---|
| 영문명칭 | Archaeological Site in Jodong-ri, Chungju |
| 한자 | 忠州 早洞里 遺蹟 |
| 주소 | 충청북도 충주시 동량면 조동리 1368-2번지 |
| 지정(등록) 종목 | 충청북도 기념물 |
| 지정(등록)일 | 2002년 10월 25일 |
| 분류 | 유적건조물/유물산포지유적산포지/유적분포지/유적분포지 |
| 소유자 | 국가유산청 |
| 시대 | 선사시대 |
| 수량/면적 | 일원(8,811㎡) |
| 웹사이트 | 충주 조동리 유적, 국가유산포털, 국가유산청. |
해설문
국문
충주 조동리 유적은 충주댐 아래의 강변 충적 대지에 있다. 이 유적은 1990년 9월에 집중 호우로 하천가가 침식되면서 선사 시대 유물이 지표에 드러나 알려지게 되었다. 이후 충북대학교 박물관에서 1996년부터 2000년까지 세 차례에 걸쳐 발굴 조사를 하여 신석기 시대와 청동기 시대의 문화층*이 차례대로 층위를 이루고 있음이 밝혀졌다.
신석기 시대 문화층에서는 야외 화덕 자리와 빗살무늬 토기, 뗀석기** 등이 발견되었다. 빗살무늬 토기의 바탕흙은 모래가 많이 섞인 찰흙으로 민무늬 토기의 바탕흙과 비슷하며 빗금무늬, 여러 겹의 선이 그려진 집선무늬, 물고기뼈무늬 등이 새겨져 있다.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 결과, 기원전 4,000년 무렵에 사용된 것으로 밝혀졌다.
청동기 시대 문화층에서는 집터, 야외 화덕 자리, 도랑, 구덩이, 돌무지 등이 조사되었다. 집터는 네모꼴, 긴네모꼴, 둥근꼴 등 형태가 다양하며, 내부에서는 가공한 판자를 잇대어 만든 벽체가 불에 탄 흔적도 확인되었다. 집터의 바닥은 대체로 평탄하게 고른 맨바닥을 사용하였지만, 견고하게 만들기 위해 진흙 다짐, 불 다짐 처리를 한 것도 있다. 집터 내부와 주변에서 확인된 화덕 자리는 모두 납작한 강자갈을 네모난 모양으로 둘러 만든 돌두름식이다. 집터 중에 내부 시설이 가장 잘 남아 있는 것은 7호 집터이며, 현재 조동리 선사 유적 박물관 전시실에 이전하여 전시하고 있다.
출토 유물 가운데 토기는 붉은 간 토기와 민무늬 토기가 주로 확인되었다. 민무늬 토기 중에는 아가리에 구멍무늬, 골아가리, 빗금무늬 등이 새겨져 있는 것도 있다. 붉은 간 토기는 토기의 겉면에 산화철 성분의 칠을 바르고 매끈한 도구로 문질러서 구운 것으로, 붉은 광택이 나는 특징이 있다. 이 가운데 길고 가느다란 굽다리가 있는 굽잔 토기가 특징적인데, 실생활보다는 제사와 같은 의례용으로 쓰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돌을 이용한 도구로는 돌도끼, 돌 그물추, 돌 화살촉, 돌칼과 ‘ㄱ’ 자 모양 돌낫이 확인되었다. 출토된 석기 중에서 돌도끼, 돌 그물추, 돌 화살촉이 전체의 절반가량을 차지한다. 이를 통해 당시 경제 활동에서 농경보다 수렵이나 채집의 비중이 높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처럼 조동리 유적은 한강 남쪽의 하천가에 있는 대표적인 선사 유적지이며, 신석기 시대부터 청동기 시대에 이르는 역사의 변화 과정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유적이다.
- 문화층(文化層): 유물이 있어 과거의 문화를 아는 데 도움이 되는 지층(地層).
- 뗀석기(뗀石器): 구석기 시대에, 돌을 깨서 만든 돌도구.
영문
Archaeological Site in Jodong-ri, Chungju
This archaeological site, located in Jodong-ri on an alluvial plain near Chungju Dam, is an important prehistoric site with well-preserved cultural layers of the Neolithic and Bronze Ages. The site was discovered in September 1990 when a flood, caused by heavy rain, unearthed prehistoric structures. Subsequently, a series of three archaeological excavations were conducted on the site between 1996 and 2000.
Excavations of the Neolithic Age layer revealed outdoor hearth sites, comb-pattern pottery, and chipped stone tools. The comb-pattern pottery features layered linear and fishbone designs and is made of clay with a high sand content, similar to the clay used to produce undecorated pottery during the early Bronze Age. Radiocarbon dating of the pottery revealed that it was used circa 4,000 BCE.
Excavations of the Bronze Age layer revealed various structural remains, including dwelling sites, outdoor hearth sites, ditches, pits, and stone mounds. The dwellings, which displayed square, elongated rectangular, or circular layouts, had leveled dirt floors that were, in some cases, rammed and hardened with fire. The charred remains of dwelling walls made out of joined planks were also confirmed. The hearths, discovered both inside and outside the dwellings, all had square layouts and were finished with flat river gravel along the perimeter. Dwelling Site No. 7, featuring the best-preserved interior structure, was relocated for display at the Museum of Prehistoric Archaeological Site in Jodong-ri.
Artifacts unearthed from this site include pottery, primarily red burnished pottery and undecorated pottery, and stone tools, such as axes, fishing net sinkers, arrowheads, daggers, and L-shaped sickles. The axes, net sinkers, and arrowheads alone make up half of all the stone tools discovered here, suggesting that hunting and gathering, rather than agriculture, were the predominant economic activities at the time. Among the undecorated pottery, some vessels were found with perforated, notched, and comb-pattern designs around the rims. The red burnished pottery, which is characterized by a red glossy surface achieved by coating the vessel with slip containing iron oxide and polishing it before firing, typically comes in the form of high-footed cups with a tall and thin base, which are known to have been used in rituals rather than daily life.
영문 해설 내용
충주댐 인근의 충적 대지에 위치한 조동리 유적은 신석기시대와 청동기시대의 문화층이 잘 보존되어 있는 중요한 선사유적지이다. 이 유적은 1990년 9월 집중 호우로 하천가가 침식되면서 선사시대 유물이 지표에 드러나 알려지게 되었다. 이후 1996년부터 2000년까지 세 차례에 걸쳐 발굴 조사를 실시하였다.
신석기시대 문화층에서는 야외 화덕 자리와 빗살무늬 토기, 뗀석기 등이 발견되었다. 빗살무늬 토기의 바탕흙은 모래가 많이 섞인 찰흙으로 민무늬 토기의 바탕흙과 비슷하며 빗금무늬, 여러 겹의 선이 그려진 집선무늬, 물고기뼈무늬 등이 새겨져 있다.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 결과, 기원전 4,000년 무렵에 사용된 것으로 밝혀졌다.
청동기시대 문화층에서는 집터, 야외 화덕 자리, 도랑, 구덩이, 돌무지 등이 발견되었다. 집터는 네모꼴, 긴네모꼴, 둥근꼴 등 형태가 다양하며, 바닥을 견고하게 만들기 위해 진흙 다짐, 불 다짐 처리를 한 것도 있다. 집터 내부와 주변에서 확인된 화덕 자리는 모두 납작한 강자갈을 네모난 모양으로 둘러 만들었다. 집터 중에 내부 시설이 가장 잘 남아 있는 것은 7호 집터이며, 현재 조동리 선사 유적 박물관 전시실에 이전하여 전시하고 있다.
이 유적에서 출토된 유물은 붉은 간 토기와 민무늬 토기 등의 토기와 돌도끼, 돌 그물추, 돌 화살촉, 돌칼과 ‘ㄱ’ 자 모양 돌낫 등의 석기가 있다. 돌도끼, 돌 그물추, 돌 화살촉이 전체의 절반 가량을 차지하는 것으로 보아, 당시 경제 활동에서 농경보다 수렵이나 채집의 비중이 높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민무늬 토기 중에는 아가리에 구멍무늬, 골아가리, 빗금무늬 등이 새겨져 있는 것도 있다. 붉은 간 토기는 토기의 겉면에 산화철 성분의 칠을 바르고 매끈한 도구로 문질러서 구운 것으로, 붉은 광택이 나는 특징이 있다. 이 가운데 길고 가느다란 굽다리가 있는 굽잔 토기가 특징적인데, 실생활보다는 제사와 같은 의례용으로 쓰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