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주 이수일 묘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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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 이수일 묘소
Tomb of Yi Su-il, Chungju
충주 이수일 묘소,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충주 이수일 묘소
영문명칭 Tomb of Yi Su-il, Chungju
한자 忠州 李守一 墓所
주소 충청북도 충주시 금가면 오석리 202-1번지
지정번호 충청북도 기념물 제21호
지정일 1978년 2월 22일
분류 유적건조물/무덤/무덤/봉토묘
시대 조선시대
수량/면적 1원
웹사이트 충주 이수일 묘소,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이수일(李守一, 1554∼1632)은 조선 중기의 무신으로 본관은 경주(慶州)이다. 1583년(선조 16) 무과에 급제한 후 장기현감으로 재직 중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 크고 작은 전투를 통해 경상좌도 수군절도사에 승진하였다. 임진왜란이 끝나고 1600(선조 33) 북병사 겸 경성도호부사로 있으면서 여진족을 소탕하는 전과를 올렸다. 1624년(인조 2) 이괄(李适)의 난이 일어났을 때 공을 세워 진무이등공신(振武二等功臣)이 되고 계림부원군(鷄林府院君)에 봉해졌다. 1628년 형조판서가 되고, 1631년 남한수어사(南漢守禦使)에 임명되었으나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사양하였으며 이듬해 78세로 별세했다. 좌의정에 추증되었으며 시호는 충무(忠武)이다.

봉분은 유돌분(乳突墳)이며 묘비(墓碑), 혼유석(魂遊石), 상석(床石), 향로석(香爐石), 망주석(望柱石), 동자석(童子石), 무인석(武人石), 장명등(長明燈)을 갖추고 있다. 묘비는 1666년(현종 7년) 세웠는데 이수(螭首)에 두 마리의 용을 새겼으며 비좌는 4각형의 간단한 형식이다.

이수일 묘소는 묘비와 석물이 잘 남아 있고 묘역 입구에 신도비(1667년 건립, 충북 유형문화재 제205호)와 사당이 있어 조선후기 장군묘소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영문

Tomb of Yi Su-il, Chungju

This is the tomb of Yi Su-il (1554-1632), a military official of the Joseon period (1392-1910), and his wife Lady Yi of the Jeonju Yi clan.

Yi Su-il passed the state military examination in 1583. He was serving as the magistrate of Janggi (today’s Pohang region) when the Japanese invaded Korea in 1592. Yi mobilized a civilian army to fight against the enemy and later became a navy commander of East Gyeongsang-do Province. In 1624, when Yi Gwal (1587-1624), the army commander of Pyeongan-do Province, rebelled, King Injo (r. 1623-1649) fled to Gongju and the rebel army seized the capital in Hanyang. Yi Su-il suppressed Yi Gwal’s rebel forces in a battle on the grounds of today’s Ansan Mountain in Seodaemun-gu, Seoul, for which he was bestowed the title of meritorious subject. The portrait of Yi Su-il drawn on that occasion and the royal certificate issued to him were designated as Chungcheongbuk-do Tangible Cultural Heritage No. 178 in 1995.

The base of the burial mound is surrounded by stone slabs to prevent collapse. In front of the burial mound are various stone structures that have been well preserved, including a tombstone, a table, an incense table, two statues of child attendants, a lantern, two pillars, and two statues of civil officials. The tombstone was erected in 1666. The inscription on it was composed and calligraphed by the renowned civil officials and scholars Kim Jip (1574-1656) and Song Jun-gil (1606-1672), respectively. The capstone is engraved to depict two dragons. At the entrance to the tomb area stands a stele (Chungcheongbuk-do Tangible Cultural Heritage no. 205) erected in 1667 and a shrine called Chunghunsa.

영문 해설 내용

조선시대의 무신 이수일(1554-1632)과 부인 전주이씨의 합장묘이다.

이수일은 1583년 무과에 급제했다. 장기(지금의 포항 지역)에 현감으로 재직하던 중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모아 왜적과 싸웠으며, 이후 경상좌도 수군절도사가 되었다. 1624년 평안도 병마절도사인 이괄(1587-1624)이 반란을 일으켰을 때, 인조(재위 1623-1649)가 공주로 피신하고 반란군이 한양을 점령하였는데, 지금의 서울 서대문구 안산에서 일어난 전투에서 이괄의 반란군이 진압되었다. 이수일은 이 전투에 참여한 공을 인정 받아 공신이 되었으며, 당시 그려진 초상화와 교서가 1995년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78호로 지정되었다.

봉분은 무너지는 것을 막기 위해 아래쪽에 보호석을 둘렀다. 봉분 앞에는 묘비, 상석, 향로석, 동자석 1쌍, 장명등, 망주석 1쌍, 무인석 1쌍 등 석물이 잘 보존되어 있다. 묘비는 1666년에 세워졌으며, 문신이자 학자인 김집(1574-1656)과 송준길(1606-1672)이 비문을 짓고 글씨를 썼다. 묘비의 머릿돌에는 두 마리의 용을 새겼다. 묘역 입구에는 1667년에 세워진 신도비(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205호)와 사당인 충훈사가 있다.

참고자료

  • 이수일 묘소, 디지털충주문화대전 http://chungju.grandculture.net/Contents?local=chungju&dataType=01&contents_id=GC01900687 -> 충주 이수일 묘소는 배위(配位) 정경부인 전주이씨와의 합장묘이다. 34㎝ 높이의 둘레돌을 두른 원형분으로, 상돌과 동자석 1조, 망주석 1조, 장군석 1조, 장명등이 갖추어져 있으며 묘비가 있다. 묘비는 대리석 1매로 이수까지 장식하였다. 비는 1666년에 김집이 찬하고 송준길이 써서 묘표를 세웠음을 알 수 있다.
  • 충주 이수일 신도비, 디지털충주문화대전 http://chungju.grandculture.net/Contents?local=chungju&dataType=01&contents_id=GC01900777 -> 조선 중기 북벌론의 대표격인 이완 대장의 아버지이다. / 비문은 당시 영의정을 지낸 이경여가 지었고, 김좌명이 글씨를 썼으며, 김수항이 전자(篆字)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