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주 연안이씨 쌍효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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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 연안이씨 쌍효각
Commemorative Pavilion of the Yeonan Yi Clan, Chungju
충주 연안이씨 쌍효각,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충주 연안이씨 쌍효각
영문명칭 Commemorative Pavilion of the Yeonan Yi Clan, Chungju
한자 忠州 延安李氏 雙孝閣
주소 충청북도 충주시 동량면 대전리1길 25 (대전리)
지정(등록) 종목 충청북도 문화재자료 제46호
지정(등록)일 2005년 3월 11일
분류 유적건조물/종교신앙/제사유적/산신당
시대 조선시대
웹사이트 충주 연안이씨 쌍효각,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연안 이씨 쌍효각은 조선 후기의 효자인 이시희(李時熙), 이시걸(李時杰) 형제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지은 건물이다. 여기에는 1722년에 내려진 효자 정려문 현판과 1878년에 세워진 쌍효비가 안치되어 있다.

이시희, 이시걸 형제는 병환이 깊은 부모를 위해 겨울에 잉어와 딸기를 구해 드렸으며, 스스로 손가락을 베어 피를 마시게 하는 등 부모를 극진히 봉양했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에는 정성을 다해 시묘(侍墓)*를 살았다. 이 소식을 들은 나라에서는 1722년 두 형제를 기리는 정려**를 내리고 효자문을 세웠다. 이후 1756년에 이시희에게 통정대부(通政大夫), 이시걸에게는 장사랑(將仕郎)의 벼슬을 내렸다.

쌍효각은 원래 1878년 살미면 신당리에 있었으나, 이 지역이 충주댐 건설로 수몰되면서 1983년 현재의 자리로 이전했다. 이곳은 조선 시대 충주 지역의 효자를 알리는 정려로서 의미가 크다.


  • 시묘(侍墓): 부모의 상을 당하여 무덤 옆에 오두막을 짓고 상주(喪主)가 3년 동안 머무는 상례 의식.
  • 정려(旌閭): 충신, 효자, 열녀 등을 그 동네에 정문(旌門)을 세워 표창하던 일.

영문

Commemorative Pavilion of the Yeonan Yi Clan, Chungju

This pavilion was built in 1878 to house a plaque and stele commemorating the filial devotion of the brothers Yi Si-hui and Yi Si-geol, who lived in the 17th century. The pavilion is named Ssanghyogak, meaning “Pavilion of a Filial Pair.” Originally located in Sindang-ri Village of Salmi-myeon Township, the pavilion was moved to its current location in 1983 due to the construction of Chungju Dam.

It is said that when their parents became very ill, the two brothers looked for carp and strawberries in the depths of winter and even drew blood from their fingers to treat their parents’ illness. After their parents died, the brothers lived in a hut by their tomb for the required multi-year mourning period. After word spread of their filial devotion, the royal court issued them a commemorative plaque in 1722 and posthumously bestowed them with official posts in 1756. The stele was erected along with the pavilion in 1878.

영문 해설 내용

쌍효각은 조선시대인 17세기의 인물인 이시희, 이시걸 형제의 효행을 기리는 정려와 비석을 모시기 위해 1878년에 지어졌다. 쌍효각은 “두 효자의 정려각”이라는 뜻이다. 원래 살미면 신당리에 있었으나, 충주댐 건설로 1983년 현재의 자리로 옮겼다.

두 형제는 병환이 깊은 부모를 위해 겨울에 잉어와 딸기를 구해 드렸으며, 부모의 병을 낫게 하기 위해 자신의 손가락을 베어 피를 마시게 하는 등 부모를 극진히 봉양했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에는 부모님의 무덤 옆에 오두막을 짓고 정성을 다해 시묘를 지냈다. 형제의 효행이 알려져 1722년 정려가 내려졌고, 1756년에는 관직이 추증되었으며, 1878년에는 비석과 비각이 세워졌다.

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