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주수리조합장 영목정일 사업 성공 기념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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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수리조합장 영목정일 사업 성공 기념비
Monument for the Successful Project of Suzuki Masaichi, Head of the Chungju Irrigation Association
대표명칭 충주수리조합장 영목정일 사업 성공 기념비
영문명칭 Monument for the Successful Project of Suzuki Masaichi, Head of the Chungju Irrigation Association
한자 忠州水利組合長 鈴木政一 事業 成功 紀念碑



해설문

국문

충주수리조합장 영목정일 사업 성공 기념비는 일제 강점기에 충주수리조합장을 지낸 일본인 스즈키 마사이치(鈴木政一)를 위해 1933년 당시 ‘충주 수리조합 조선인 일동’ 이름으로 세워졌다.

비문 내용을 보면 일본인 수리조합장이 마치 한국인을 위하여 수리조합을 만들고, 호암지를 축조하여 농업용수를 공급한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1920년대 일제의 산미증식계획에 따라 수리조합과 저수지를 만들어 한국을 영구적인 식량 공급지로 만들려는 것이었다. 이를 자세히 살펴보면 달천평야 토지 중 절반은 소수의 일본인이 소유하고 있었으며, 한국인 농민은 토지를 잃거나 소작농으로 전락하는 등 더 가난해지는 결과를 초래하였을 뿐이다.

친일 청산 관련 법규에 따라 이 안내판을 세운다.

영문

Monument for the Successful Project of Suzuki Masaichi, Head of the Chungju Irrigation Association

This monument was erected in 1933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1910-1945) to praise Suzuki Masaichi, the Japanese head of the Chungju Irrigation Association, for his completion of Hoamji Reservoir. The inscription records that the monument was erected by the Korean members of the irrigation association at the time.

In the 1920s, Japanese colonial authorities’ established local irrigation associations and reservoirs as part of the implementation of policies to make Korea the main source of Japan’s food supplies. In the Chungju area, the irrigation association was established in 1922 by Suzuki Masaichi. In 1932, Suzuki forcibly mobilized the residents of the Chungju area to construct Hoamji Reservoir, as part of a plan to improve the productivity of Dalcheon Plain. At the time, a small number of Japanese landowners owned half of the plain, while Korean farmers grew poorer as they lost their land or were demoted to tenant farmers.

영문 해설 내용

이 비석은 일제강점기인 1933년 충주수리조합장인 일본인 스즈키 마사이치가 호암지를 축조한 것을 칭송하기 위해 세워졌다. 비문에는 당시 수리조합 조선인 일동이 비석을 세운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1920년대부터 일제는 한국을 자국의 식량공급기지로 만들기 위한 정책을 펼쳤으며, 그 일환으로 지역마다 수리조합과 저수지를 만들었다. 충주 지역에서는 1922년 스즈키 마사이치가 수리조합을 창립하고, 달천평야를 곡창지대로 조성하려는 계획에 따라 지역 주민들을 강제로 동원하여 1932년 호암지를 준공하였다. 당시 달천평야 중 절반은 소수의 일본인이 소유하고 있었으며, 한국인 농민은 토지를 잃거나 소작농으로 전락하는 등 더 가난해지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 명칭의 '영목정일'은 스즈키 마사이치의 이름을 한자 음대로 읽은 것.
  • 실제 비문에 "1933년 5월1일 영목정일씨의 떠나감을 애석히 생각하는 조선인들이 그 공로를 영원히 잊지 않기 위해 비석을 세운다"고 적혀 있는데, 강제로 칭송비를 세우게 했거나 수리조합 내 친일파 조선인들이 세운 것으로 추정됨.

참고자료

公本日本山梨縣人也(공본일본산이현인야) 공은 본래 일본 야마나시현 사람이다.
明治四十年求居忠州篤愛鮮(명치사십년구거충주독애선) 명치 40(1907)년 충주에 와서 살면서 깊이 조선(사람)을 사랑하였다.
人常思爲鮮人設(인상사위선인설) 영목씨는 늘 조선인들에게 베풀 생각을 하였다.
永遠之事業奐在(영원지사업환재) 길이 빛날 영원한 사업으로
壬戌創立水利組合(임술창립수리조합) 임술(1922)년에 수리조합을 창립하였다.
申凡十一年間(신범십일년간) 무릇 11년 동안 거듭하여
公一心董勵夙夜靡懈(공일심 동여숙야마해) 공(영목씨)은 일심으로 새벽부터 밤까지 게으름에 굴복하지 않고 힘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