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의병대장 습재 이소응선생 공적비
춘천의병대장 습재 이소응선생 공적비 Stele of Yi So-eu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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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춘천의병대장 습재 이소응선생 공적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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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명칭 | Stele of Yi So-eung |
지정(등록) 종목 | 국가보훈부 지정 현충시설 |
관리자 | 광복회 강원특별자치도지부 춘천연합지회 |
해설문
국문
1895년 을미사변이 발발하고 단발령이 내려지자 일제의 만행과 내정간섭을 규탄하여 전국의 유생들이 의병운동을 전개하였고, 1896년 1월 20일 유중락‧이만응을 중심으로 한 의병 천 여명이 춘천부에 운집하여 습재 이소응 선생을 의병대장으로 추대하고 의병을 일으켰다. 선생은 격문을 전국에 보내 함께 의거하여 무도한 적들을 토벌할 것을 호소하여 많은 호응을 얻었다.
이후 관군의 공세가 날로 예리해지자 선생은 제천의 유인석 의진으로 들어가 의병활동을 전개하였으며 이후 유인석 의진이 패퇴하여 서간도로 망명할 때 동행하였다. 이후 40여 년간 구국항쟁을 하다가 민족의 독립을 보지 못하고 1930년 3월 25일 이역만리 타국에서 세상을 떠났다. 정부에서는 선생의 공훈을 기리어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이소응 선생의 애국정신을 기리며 널리 선양하고 계승하고자 강원도애국선열추모사업회에서 2002년 1월 이 비를 건립하였으며, 국가보훈부는 2002년 12월 현충시설로 지정하였다.
영문
Stele of Yi So-eung
This stele was erected in January 2002 to honor the patriotic spirit of Yi So-eung (1852-1930), a native of Chuncheon who actively led the anti-Japanese movement before and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1910-1945). In December 2002, the stele was designated as a Memorial Facility of the Ministry of Patriots and Veterans Affairs.
On January 20, 1896, Yi So-eung was chosen to lead an anti-Japanese civilian army of about one thousand people in Chuncheon. The army had gathered in condemnation of the brutality of the Imperial Japan and its interference in Korea’s domestic affairs, as evidenced by the assassination of the Korean queen consort by Japanese forces and the implementation of an ordinance prohibiting topknots by the Japanese-influenced pro-modernization faction the previous year. In his role as a leader, he composed and circulated a manifesto calling for people across the country to join him in the fight against the cruel enemy, which was well received.
Afterwards, as the offensive of the government forces became more intense by the day, Yi So-eung entered the local civilian army camp in Jecheon led by Yu In-seok and began carrying out army activities. Later, when Yu’s troops were defeated, Yi fled with them to the Western Jiandao region of China. There, he continued the fight for national liberation. However, he passed away on March 25, 1930, in Outer Mongolia, without being able to witness Korea regain its independence. In 1962, he was posthumously bestowed the Order of Merit for National Foundation in recognition of his outstanding meritorious service to the country.
영문 해설 내용
이 비석은 춘천 출신의 의병장인 이소응(1852-1930)의 애국정신을 기리기 위해 2002년 1월에 건립되었다. 같은 해 12월 국가보훈부 현충시설로 지정되었다.
1896년 1월 20일, 이소응은 춘천에서 약 천 명의 의병을 이끄는 의병대장으로 추대되었다. 이 의병은 1895년 일본에 의해 조선의 왕비가 시해되고, 일본의 영향을 받은 개화파가 단발령을 실시하는 등 일제의 만행과 내정 간섭을 규탄하기 위해 모였다. 대장으로서 이소응은 격문을 전국에 보내 무도한 적에 맞서 싸울 것을 호소하였고, 이는 많은 호응을 얻었다.
관군의 공세가 날로 거세지자, 이소응은 제천의 유인석이 이끄는 의병 진영으로 들어가 의병활동을 이어갔다. 이후 유인석 의병이 패퇴하여 서간도로 망명할 때 동행하였다. 그는 민족 해방을 위한 투쟁을 이어갔으나, 민족의 독립을 보지 못하고 1930년 3월 25일 외몽골 지역에서 세상을 떠났다. 정부에서는 이소응의 공훈을 기리어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