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하원(원불교 익산성지)
청하원 淸河院 Cheonghawon Hal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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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안내판: 원불교 익산성지 |
해설문
국문
청하원은 원불교의 창립과 발전에 기여한 청하 이공주(淸河 李共珠)의 살림집이었으나, 교단에 기부하면서 소모임 장소로 사용되었다. 1932년에 짓기 시작하여 1934년에 완성하였는데 안채와 문간채로 구성되었다. 1935년에 조선총독부는 원불교의 전신인 불법연구회를 감시하기 위해 이리경찰서 북일주재소를 청하원 응접실에 설치하고 문간채를 숙소로 사용하였다. 1963년에는 이곳에 수도원이 설립되었다. 이 집의 본채인 안채는 정면 6칸, 옆면 3칸 규모의 겹집*이다. 평면 모양과 구성은 남부지방 민가와 비슷하나 구조는 완전한 일본식 주택 형식을 따르고 있어 근대기 주택의 변화상을 볼 수 있다.
- 겹집: 옆면이 2칸 이상인 집
영문
Cheonghawon Hall
Cheonghawon Hall was the house of Yi Gong-ju (1896-1991, pen name: Cheongha), a missionary of the order of Won-Buddhism. The building was constructed from 1932 to 1934. Initially, the house had a main quarters and a gate quarters, but only the main quarters remain.
Yi Gong-ju met the founder of the order of Won-Buddhism, Bak Jung-bin (1891-1943), in 1924 and joined the religion. She became a monk in 1930, after which she contributed significantly to the development of the religion’s economic foundation. After Yi Gong-ju donated this house to the order, it was used as a venue for small gatherings.
In 1935,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1910-1945), the Japanese Government-General of Korea used one of the rooms of Cheonghawon Hall as a substation of Iri Police Station to monitor the Won-Buddhism practitioners. From 1963, Cheonghawon Hall was used as a monastery. It is now used as the office of the inspector-general.
영문 해설 내용
청하원은 원불교의 교역자 이공주(1896-1991, 호 청하)의 집으로, 1932년에 짓기 시작하여 1934년에 완공되었다. 원래는 안채와 문간채로 이루어져 있었으나, 지금은 안채만 남아 있다.
이공주는 1924년 원불교 창시자 박중빈(1891-1943)을 만나 입교하였으며, 1930년에 출가한 이후 원불교의 경제적 토대 마련에 크게 기여하였다. 이공주가 이 집을 교단에 기부하면서 이곳은 교단의 소모임 장소로 이용되었다.
일제강점기인 1935년에는 조선총독부가 원불교를 감시하기 위해 청하원 응접실을 이리경찰서 주재소로 이용하기도 하였다. 청하원은 1963년부터 수도원으로 운영되었고, 지금은 감찰원장실로 사용되고 있다.
- 이공주가 언제 기부했는지 확인 안 됨.
참고자료
- 원불교 익산성지, 디지털익산문화대전 http://iksan.grandculture.net/iksan/toc/GC07500482 -> 청하원은 본래 종사 이공주의 집으로 1932년 지어졌다. 이후 희사받아 초기 교단의 소집회 장소로 사용되었다. 한편 1936년 원불교를 감시하기 위한 이리경찰서 북일주재소가 설치되기도 하였다.
- 이공주, 디지털익산문화대전 http://iksan.grandculture.net/iksan/toc/GC07500817 -> 이공주(李共珠)[1896~1991]의 본명은 이경자(李慶子)이며, 법호는 구타원(九陀圓)이다. 원불교 초기의 대표적인 여성 교역자로, 원불교의 경제적 토대를 마련하는 데 공헌하였다. / 1924년 서울에서 소태산(少太山) 박중빈(朴重彬)[1891~1943]을 만나 제자가 된 후 원불교에 입교하였다. 이공주는 1930년 출가하여 서울교당 교무로 발령받았으며, 1932년에는 사재로 부지를 매입하여 서울교당을 신축하였다.
- 교보 제02호 익산성지 청하원, 원불교 소개 https://guide.won.or.kr/pages/sungji/iksan/13 -> 중앙총부 정문을 들어서면 오른쪽 언덕으로 보이는 첫 건물입니다. 경성지부 교도였던 구타원 이공주 종사와 그의 아들 묵산 박창기 대봉도가 전무출신을 서원하고 익산 중앙총부로 내려와 총부 구내에 사가로 지은 집입니다. 안채 6칸 겹집과 문간채 3칸을 건축하고 원기 19년(1934) 8월 20일 낙성하였으나 현재 문간채는 남아있지 않습니다. 시멘트 와가 우진각 지붕으로 외관은 유리 미서기문과 창호, 처마 끝의 함석 차양 등을 한 근대 주택입니다. 불법연구회의 동태를 감시하기 위해 원기 21년(1936) 10월 이리경찰서 북일주재소가 설치되어 순사 2명이 상주하기도 했으며, 원기 48년 수도원이 발족을 하면서 수도원으로 활용이 되다가 현재는 감찰원장실로 사용되고 있다. 개교반백년기념사업 때 정문 확장 공사를 하면서 담장과 문간채가 철거되고 현재와 같은 모습으로 정비되었습니다.
- “원불교 여성10대 제자 9. 구타원 이공주 선진, 소태산 법낭이자 기록문화의 효시”, 원불교신문, 2017.11.24. https://www.wo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192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