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 금성대군 제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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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 금성대군 제단
Altar of Prince Geumseong, Cheongju
청주 금성대군 제단, 충청북도 문화재대관 I, 충청북도문화재연구원, 2016, 406쪽.
대표명칭 청주 금성대군 제단
영문명칭 Altar of Prince Geumseong, Cheongju
한자 淸原 錦城大君 祭壇
주소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미원면 대신리 산 49
지정(등록) 종목 충청북도 문화유산자료
지정(등록)일 2005년 8월 12일
분류 유적건조물/정치국방/궁궐·관아/제단
시대 조선시대
수량/면적 1기 / 3m×4m×높이 1m
웹사이트 청주 금성대군 제단, 국가유산포털, 국가유산청.



해설문

국문

청주 금성대군 제단은 세종의 여섯째 아들인 금성대군 이유(李瑜)를 모신 제단이다. 금성대군은 세조 2년(1456)에 조카인 단종을 다시 왕위에 오르게 하려다가 발각되어, 세조 3년(1457)에 사사*되었다. 중종 13년(1518)에 그의 손자들이 노비 신분에서 풀려나 『선원록(璿源錄)』**에 기재됐으며, 중종 15년(1520)에는 후손이 관직에 오르기도 하였으며, 영조 15년(1739)에 정민(貞愍)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금성대군은 처형된 후 시신을 수습하지 못하였으나, 숙종 45년(1719)에 영주 순흥에 제단을 세워 제사를 지낼 수 있게 되었다. 영조 14년(1738)에 후손이 억울함을 상소하니 영조는 금성대군의 부인인 전주 최씨의 묘소 옆에 제단을 설치하도록 하였다. 제단은 ‘ㅁ’ 자형 구조로, 가공한 돌을 서로 짜맞추어 쌓아 올린 형태이다. 제단 바로 앞에는 묘표***가 있으며, 옆으로 부인인 전주 최씨의 둥근 무덤과 묘비가 있다.

금성대군 제단은 조선 시대의 전형적인 제단 형태로서 축조 당시의 방식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 사사(賜死): 죽일 죄인을 대우하여 임금이 독약을 내려 스스로 죽게 하던 일.
  • 선원록(璿源錄): 조선 왕조의 태조~현종에 이르는 각 국왕의 자손을 기록한 족보.
  • 묘표(墓表): 무덤 앞에 세우는 푯돌. 죽은 사람의 이름, 생년월일, 행적, 묘주 따위를 새긴다.

영문

Altar of Prince Geumseong, Cheongju

This altar honors Prince Geumseong (Yi Yu, 1426-1457), the sixth son of King Sejong (r. 1418-1450) of the Joseon dynasty (1392-1910). In front of the altar stands a tombstone, and to the right is a burial mound and tombstone for his wife, Lady Choe of the Jeonju Choe clan.

In 1455, Prince Geumseong’s elder brother, Prince Suyang, ascended the throne as King Sejo (r. 1455-1468) after deposing their nephew King Danjong (r. 1452-1455). The following year, Prince Geumseong attempted to restore King Danjong to the throne but was discovered. He was executed in 1457, and his descendants were reduced to the status of slaves. Their status was restored in 1518, and in 1520 one of his descendants was permitted to hold office again.

After his execution, Prince Geumseong’s body could not be recovered, so no tomb was established. In 1719, an altar was built in Yeongju, the place of his exile, to hold veneration rituals. Later, in 1738, when his descendants submitted a petition for redress, King Yeongjo (r. 1724-1776), ordered that an altar be built beside the tomb of Lady Choe. The altar was constructed by interlocking rectangular stone blocks, exemplifying the typical altar style of the Joseon period and providing valuable insight into the construction techniques of the time.

영문 해설 내용

이곳은 조선 세종(재위 1418-1450)의 여섯째 아들 금성대군 이유(1426-1457)의 제단이다. 제단 앞에는 묘표가 세워져 있고, 오른쪽에는 부인 전주 최씨의 둥근 무덤과 묘비가 자리하고 있다.

금성대군은 1455년 형인 수양대군(세조, 재위 1455-1468)이 조카 단종(재위 1452-1455)을 폐하고 왕위에 오르자, 이듬해 단종의 복위를 도모하다가 발각되었다. 1457년 금성대군은 사사되었으며, 그 후손들은 노비로 강등되었다. 이후 1518년에 손자들이 신분을 회복하였고, 1520년에는 후손이 관직에 오르기도 하였다.

금성대군은 처형된 뒤 시신을 거두지 못해 묘를 조성하지 못하였다. 1719년 그의 유배지였던 지금의 영주 지역에 제단을 세워 제사를 지낼 수 있게 되었고, 1738년 후손이 억울함을 상소하자 영조(재위 1724-1776)는 부인 전주 최씨의 묘소 옆에 제단을 설치하도록 명하였다. 제단은 사각형으로 다듬은 돌을 맞물려 쌓은 구조로, 조선시대 제단의 전형적인 형태를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