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한씨 문정공파 묘역 신도비
청주한씨 문정공파 묘역 신도비 Monuments of the Munjeonggong Branch of the Cheongju Han Cla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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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청주한씨 문정공파 묘역 신도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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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명칭 | Monuments of the Munjeonggong Branch of the Cheongju Han Clan |
한자 | 淸州韓氏 文靖公派 墓域 神道碑 |
주소 |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율동 산2-1번지 |
지정(등록) 종목 |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84호 |
지정(등록)일 | 1994년 4월 20일 |
분류 | 유적건조물/무덤/무덤/기타 |
수량/면적 | . |
웹사이트 | 청주 한씨 문정공파 묘역 신도비,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해설문
국문
청주 한씨 문정공파 묘역 신도비는 문정공 한계희(韓繼禧)와 그의 아들 한사문(韓斯文)의 신도비*, 한사개(韓士介)]의 묘갈**을 모두 말한다. 신도비가 있는 곳은 성종이 하사한 사패지***로 조선 전기부터 청주 한씨의 묘역으로 자리 잡았다.
한계희의 신도비는 성종 14년(1483)에 세운 것으로 비문은 서거정이 지었고 안침이 글씨를 썼다. 머릿돌은 연잎이 뒤집어져 있는 모양이고 꼭대기에는 연꽃 봉오리 모양의 돌이 솟아 있다. 받침돌은 사각형으로 연꽃무늬를 둘러 새겨 장식하였다.
한사문의 신도비는 중종 3년(1508)에 세운 것으로 비문은 신용개가 지었다. 형태는 한계희의 신도비와 거의 유사하지만 받침돌에 둥근 창모양인 안상무늬와 덩굴무늬로 장식을 하였다.
한사개의 묘갈은 명종 19년(1564)에 세운 것으로 비문은 김안로가 지었다. 이 묘갈은 제액****에 ‘영흥부사한공묘갈명(永興府使韓公墓碣銘)’으로 되어 있어 신도비가 아닌 묘갈임을 알 수 있다. 특징적인 것은 머릿돌 앞면에는 둥근 해와 구름무늬를 장식하였고, 뒷면에는 초승달과 구름무늬를 함께 조각하였다.
청주 한씨 문정공파 묘역 신도비는 조선시대 전기의 전형적인 양식이 잘 나타나 있고 제작 연대가 명확한 특징이 있다. 분당신도시 개발로 지금은 율동공원으로 변하였지만, 청주 한씨 집성촌에 이웃하여 있던 성남 지역 음택***** 문화를 잘 보여주고 있다. 또한 한곳에서 석물의 변천사를 한 번에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문화재로서의 가치가 높다,
- 신도비: 임금이나 고위관료 등의 업적을 기록하여 세운 묘비
- 묘갈: 윗부분을 둥글게 다듬어 세운 묘비
- 사패지: 임금이 내려준 토지
- 제액: 비석의 몸체 상단부나 이수에 비의 명칭을 새긴 부분
- 음택: 무덤을 사람 사는 집에 상대하여 이르는 말
영문
Monuments of the Munjeonggong Branch of the Cheongju Han Clan
These stone monuments located at the cemetery of the Munjeonggong Branch of the Cheongju Han Clan consist of the steles of Han Gye-hui (1423-1482, posthumous title: Munjeong) and his first son Han Sa-mun (1446-1507), as well as the tombstone of his fourth son Han Sa-gae (1453-1521).
Han Gye-hui was the founder of the Munjeonggong Branch of the Cheongju Han Clan. He passed the state examination in 1447 and served several government posts. He was bestowed with the title of meritorious subject after successfully suppressing an uprising in 1469. The king also granted today’s Yul-dong area to his family. Eventually, a clan village and cemetery were formed in the area. Due to city development plans in the early 1990s, the houses of the village were demolished, and the area around the cemetery was turned into Yuldong Park.
The stele of Han Gye-hui was erected in 1483. The text of the inscription was composed by the civil official and writer Seo Geo-jeong (1420-1488) and calligraphed by the civil official and calligrapher An Chim (1445-1515). The stele consists of a rectangular pedestal, a body stone, a capstone, and a decorative top. The capstone is shaped like a lotus leaf turned upside down, and the decorative top is shaped like a lotus bud. The pedestal is also decorated with lotus designs.
The stele of Han Sa-mun was erected in 1508. The text of the inscription was composed by the civil official Sin Yong-gae (1463-1519). With the exception of its pedestal, which is carved with floral, scroll, and flame designs, the stele looks almost identical to the stele of Han Gye-hui.
The tombstone of Han Sa-gae was erected in 1564. The text of the inscription was composed by the civil official Kim An-ro (1481-1537). Its capstone is decorated with a carving of the sun with clouds in the front and a carving of a crescent moon with clouds at the back.
These monuments are characteristic of the early period of the Joseon dynasty (1392-1910), while also demonstrating the gradual changes of stone masonry during this period, making them a particularly valuable collection.
영문 해설 내용
조선시대의 문신 한계희(1423-1482, 시호: 문정)와 장남 한사문(1446-1507)의 생애와 업적을 기록한 신도비와 넷째 아들 한사개(1453-1521)의 묘갈이다.
한계희는 청주한씨 문정공파의 파조이다. 1447년 과거에 급제한 후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으며, 1469년에 일어난 반란을 진압한 공으로 공신이 되었다. 그의 가문은 한계희의 묘소가 위치한 지금의 율동 일대 토지를 왕으로부터 하사받았다. 이후 율동 지역에는 청주한씨 후손들이 대대로 살게 되었고, 문중의 묘역도 자리 잡았다. 1990년대 초 분당 신도시가 개발되면서 청주한씨 집성촌의 가옥들은 철거되었고, 묘역 일원은 율동공원으로 조성되었다.
한계희의 신도비는 1483년에 세운 것으로, 비문은 문신이자 문장가였던 서거정(1420-1488)이 지었고 문신이자 서예가인 안침(1445-1515)이 글씨를 썼다. 신도비는 사각형의 받침돌, 몸돌, 머릿돌, 머리장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머릿돌은 연잎이 뒤집힌 모양이고 머리장식은 연꽃 봉오리 모양이다. 받침돌은 연꽃무늬로 장식하였다.
한사문의 신도비는 1508년에 세운 것으로 비문은 문신 신용개(1463-1519)가 지었다. 형태는 한계희의 신도비와 거의 유사하지만 받침돌에는 안상무늬와 덩굴무늬로 장식하였다.
한사개의 묘갈은 1564년에 세운 것으로 비문은 문신 김안로(1481-1537)가 지었다. 머릿돌 앞면에는 둥근 해와 구름무늬를 장식하였고, 뒷면에는 초승달과 구름무늬를 함께 조각하였다.
이 신도비와 묘갈은 조선 전기 석물의 전형적인 양식이 잘 나타나 있고 석물의 변천사를 한 번에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문화재로서의 가치가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