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전 이상범 생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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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전 이상범 생가지
Birthplace of Yi Sang-beom
대표명칭 청전 이상범 생가지
영문명칭 Birthplace of Yi Sang-beom
주소 충청남도 공주시 정안면 석송리 208-11



해설문

국문

이곳은 한국근대미술사의 독보적인 위치를 지닌 화가 청전(靑田) 이상범(李象範, 1897~1972)이 나고 자란 곳이다.

이상범은 공주에 오래 살아온 전주이씨 덕천군파의 후손으로, 아버지 이승원(李承遠)과 어머니 강릉 김씨 사이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러나 곧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10살 무렵 어머니와 함께 서울 돈화문 부근으로 이주하였다.

보통학교를 우등으로 졸업하였지만 그림에 뜻을 두고 1915년 서화미술원(書畫美術院)에 입학하여 1917년 수료한 뒤 스승 안중식(安中植)으로부터 조선의 전통적 화법을 익혔다. 1927년~1937년까지 동아일보사에서 일하는 동안 1936년 손기정 선수의 가슴에 붙은 일장기를 지워서 보도한 ‘일장기 말소사건’의 주도자로 구속된 일도 있다.

1925년 조선미술전 이후 10회 연속 특선을 차지하며 활약하였으나 1940년대의 활동으로 인해 친일 혐의를 받기도 하였다. 그러나 광복 후 식민잔재를 청산하려는 노력을 통해 1962년 대한민국문화훈장을 비롯해 수많은 문화상과 공로상을 받았다. 소박하고 은은한 모습의 산과 들을 그린 그의 화풍은 이른바 '청전풍' 수묵산수화로 독자적 작품세계를 구축하였다.

1972년 76세의 나이로 타계하여 경기도 포천시 서릉(瑞陵) 공원묘지에 안치되었다.

영문

Birthplace of Yi Sang-beom (Cheongjeon)

This is the former site of the birthplace of Yi Sang-beom (1897-1972, pen name: Cheongjeon), a renowned Korean modern painter.

Yi Sang-beom was a descendant of the Deokcheongun Branch of the Jeonju Yi Clan, which lived in Gongju for many generations. He was the third son of Yi Seung-won and Lady Kim of the Gangneung Kim Clan. However, after his father died when he was about 10 years old, he and his mother moved near Donhwamun Gate in Seoul.

After he graduated elementary school with honors, he set his heart on painting. In 1915, he enrolled at a calligraphy and art academy. After graduating in 1917, he studied the painting techniques of traditional paintings of the Joseon period (1392-1910) under his teacher An Jung-sik (1861-1919). From 1925, Yi won ten consecutive special competitions in the annual Joseon Art Exhibition, and from 1927 to 1937, he worked at the Dong-a Ilbo Newspaper. In 1936, when Sohn Kee-chung (1912-2002) won the gold medal for the marathon at the Berlin Olympics as a member of the Japanese national delegation, the Dong-a Ilbo erased the Japanese flag on his chest in the published victory photo in protest of the Japanese colonial rule (1910-1945). As one of the leaders of this act, Yi Sang-beom was placed under arrest.

In the 1940s, Yi was involved in an art exhibition presided over by the Japanese government and was once accused of being a pro-Japanese collaborator. However, he made efforts to clear away the remnants of colonialism after Korea’s liberation in 1945, for which he received many cultural prizes and achievement awards, including the Order of Cultural Merit of the Republic of Korea in 1962. His monochrome ink landscape paintings, which depict quaint and gentle mountains and fields, helped establish a distinct artistic world.

After his death in 1972, he was buried at Seoreung Cemetery Park in Pocheon, Gyeonggi-do Province.

영문 해설 내용

이곳은 한국 근대 화가인 이상범(1897-1972, 호: 청전)의 생가가 있던 자리이다.

이상범은 공주에 오래 살아온 전주이씨 덕천군파의 후손이다. 아버지 이승원(李承遠)과 어머니 강릉 김씨 사이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러나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10살 무렵 어머니와 함께 서울 돈화문 부근으로 이주하였다.

보통학교를 우등으로 졸업한 후, 그림에 뜻을 두고 1915년 서화미술원에 입학하였다. 1917년 수료한 뒤에는 스승 안중식(1861-1919)으로부터 조선시대 전통 회화의 화법을 익혔고, 1925년 조선미술전 이후 10회 연속 특선을 차지하며 활약하였다. 1927년부터 1937년까지는 동아일보사에서 근무하였다. 일제강점기인 1936년 손기정이 일본 국가대표로 제11회 베를린 올림픽대회 마라톤에 참가하여 금메달을 땄을 때, 동아일보는 손기정 선수 가슴에 붙은 일장기를 지워서 보도하였는데, 이상범은 이 사건의 주동자 중 한명으로 구속되기도 하였다.

1940년대 들어 일제에서 주관하는 미술전람회에 관여하면서 친일 혐의를 받기도 하였다. 그러나 광복 후 식민잔재를 청산하려는 노력을 통해 1962년 대한민국문화훈장을 비롯해 수많은 문화상과 공로상을 받았다. 소박하고 은은한 모습의 산과 들을 그린 그의 화풍은 이른바 '청전풍' 수묵산수화로 독자적 작품세계를 구축하였다.

1972년 타계하여 경기도 포천시 서릉 공원묘지에 안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