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송 후송당 고택
청송 후송당 고택 Husongdang House, Cheongso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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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청송 후송당 고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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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명칭 | Husongdang House, Cheongsong |
한자 | 靑松 後松堂 古宅 |
주소 | 경상북도 청송군 현동면 청송로 2587-13(창양리 348-1) |
지정(등록) 종목 | 국가민속문화재 제173호 |
지정(등록)일 | 1984년 1월 14일 |
분류 | 유적건조물/주거생활/주거건축/가옥 |
시대 | 일제강점기 |
수량/면적 | 1필지/4,196㎡ |
웹사이트 | 청송 후송당 고택,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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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국문
후송당 고택은 1920년 무렵 후송(後松) 조용정(趙鏞正)이 건립하였다고 전한다. 고택은 ‘ㅡ’ 자형 안채와 ‘ㄴ’자형의 중문간채와 ‘ㄴ’자형의 사랑채가 안마당을 감싸고 있어 전체적으로 보면 ‘튼 입구(匚)’자 모양이다.
안채는 오른쪽에 있는 부엌을 제외한 전면에 툇마루를 만들었으며, 네모기둥을 세운 5량가(樑架)*의 네 귀에 모두 추녀를 달았다. 종도리** 밑면에 ‘단기 사천이백팔십년 상량, 檀紀四千二百八十年 上樑’이란 기록이 있다는 문화재지정 조사보고서로 본다면 고택은 화재로 불타서 없어진 것을 해방 후 1947년에 다시 건립한 것으로 추정한다.
사랑채는 안채와 같이 일제강점기에 세워진 건물로 앞면 툇기둥만은 둥근 기둥을 썼는데, 후송헌(後松軒)이라 쓴 현판이 여기에 걸려 있다.
안채의 앞에 위치한 중문간채는 대청과 좌측의 사랑방이 ‘ㄴ’ 자형을 이루어 사랑채와 함께 튼 입구자(匚)로 내정을 에워싸고 있다. 내정으로 출입하는 중문을 비롯하여 마구간, 방앗간, 하인들이 거처하던 방, 부엌 등이 있다.
고택은 지은 지 오래되지 않으나 50칸이 넘는 큰 규모의 주택으로, 일제강점기 동안 전통한옥이 변천해 온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으며, 각 건물의 배치 관계가 좋고 비교적 간소한 외관을 보여 주고 있다.
- 종도리: 용마루 밑에 서까래가 걸리게 된 도리
- 5량가(樑架): 한식 건물에서 도리가 다섯 개가 있는 지붕
영문
Husongdang House, Cheongsong
This house was built in the early-20th century by Jo Yong-jeong (pen name: Husong) in Sinchang Village in Changyang-ri, a clan village of the Haman Jo Clan.
Jo Yong-jeong was born into a family that produced generations of medical doctors. He was known for his virtuous character and provided medical care to the poor and sick people in the area. He also participated in the local civilian army raised against the Japanese imperialists in 1907. In 1945, he founded a school in an effort to educate local youth.
The house consists of a gate quarters, men’s quarters, women’s quarters, inner gate quarters, and auxiliary buildings. The men’s quarters, named Husongheon, and the women’s quarters were built in 1935 and 1947, respectively. The inner gate quarters was used as a servants’ quarters. It includes a gate leading to the courtyard in front of the women’s quarters, a stable, a mill house, and rooms and a kitchen for the servants.
영문 해설 내용
이 가옥은 조용정(호: 후송)이 20세기 초에 지은 것으로 함안조씨의 세거지인 신창마을에 위치하고 있다.
조용정은 대를 이어 의사를 하던 가문에서 태어났다. 그는 덕행으로 이름이 높았으며, 가난하고 병든 이들에게 의술을 베풀었다. 또한 1907년에는 일제에 항거하는 의병 활동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1945년에는 지역의 인재를 기르기 위해 학교를 세웠다.
이 집은 대문채, 사랑채, 안채, 중문채, 부속 건물들로 이루어져 있다. 후송헌이라고 불리는 사랑채와 안채는 각각 1935년과 1947년에 지었다. 중문채는 행랑채의 역할을 하였으며, 안채 앞마당으로 이어지는 문과 마굿간, 방앗간, 하인들의 방과 부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