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원 금강산 전기철도교량

HeritageWiki
이동: 둘러보기, 검색
철원 금강산 전기철도교량
Geumgangsan Mountain Electric Railroad Bridge, Cheorwon
"철원 금강산 전기철도교량",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철원 금강산 전기철도교량
영문명칭 Geumgangsan Mountain Electric Railroad Bridge, Cheorwon
한자 鐵原 金剛山 電氣鐵道橋梁
주소 강원도 철원군 김화읍 도창리 산81-2
지정(등록) 종목 국가등록문화재 제112호
지정(등록)일 2004년 9월 4일
분류 등록문화재/기타/산업시설/
시대 일제강점기
수량/면적 현황측량면적 216.8㎡
웹사이트 "철원 금강산 전기철도교량",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금강산전기철도교량은 일본 회사인 철춘 철도주식회사에 의해 1921년에서 1931년 부설되었다. 철원역을 출발로 종착역인 내금강까지 116 .6km를 하루 8회 운행하였다, 철원에서 내금강까지는 4시간 반이 걸렸으며 당시 요금은 쌀 한가마 값인 7원56전으로 1936년 당시 이용객은 연간 15만4천 여 명이었다.

이 교량은 일제강점기에 창도의 풍부한 지하자원인 유화철을 흥남의 제련소를 경유하여 일본으로 반출하기 위한 지하자원 수탈 및 금강산 관광용으로 운행하다 광복 이후 한국전쟁시기 북한의 군수물자 수송에 사용되었다.

남북분단의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금강산전기철도의 흔적을 그대로 간직한 이 교량은 2004년 9월 4일 등록문화재 112호로 지정되었다.

영문

The Geumgangsan Mountain Electric Railroad Bridge was built between 1921 and 1931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1910-1945) by a Japanese railroad company. The bridge was used by trains on the 116.6 km-long rail route linking Cheorwon Station and Naegeumgang Station (in present-day North Korea).

During the colonial period, the bridge was used mainly for tourism to Geumgangsan Mountain and for the transportation of natural resources, such as iron sulfide, from the Cheorwon area to Japan. Trains ran eight times a day, and it took about 4.5 hours from Cheorwon to Naegeumgang. A ticket cost the same amount as 80 kg of rice at the time, making it unaffordable for the average person. According to records, this train route served about 154,000 passengers in 1936.

Following the end of Japanese colonial rule, the bridge came under the control of North Korea and was used for the transportation of military supplies during the Korean War (1950-1953). After the war, the area came under the control of South Korea.

Due to this bridge's connection with Korea’s turbulent modern history, it was listed as National Registered Cultural Heritage No. 112 in 2004.

영문 해설 내용

금강산 전기철도교량은 일제강점기인 1921년에서 1931년 사이에 일본 철도회사에 의해 부설되었다. 철원역과 내금강역(현재 북한 지역) 사이의 116.6km를 운행하던 전철이 사용하던 다리였다.

일제강점기에는 금강산 관광용으로 운행되기도 하였고, 철원 지역에서 생산되는 유화철을 비롯한 지하자원을 일본으로 반출하는 데 이용되기도 하였다. 매일 8회 운행하였으며, 철원에서 내금강까지는 4시간 반이 걸렸다. 요금은 당시 쌀 한 가마니를 살 수 있는 돈이었고, 일반인들이 부담하기에는 큰 금액이었다. 기록에 따르면, 1936년 연간 이용객은 15만 4천여 명이었다.

해방 이후 이 교량은 북한이 관리하게 되었고, 한국전쟁 시기 북한의 군수물자 수송에 사용되었다. 이 지역은 전쟁이 끝난 후 남한의 영역이 되었다.

한국 근대사의 격동기를 보여주는 이 교량은 2004년 국가등록문화재 제112호로 등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