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 세성산성과 동학농민혁명 세성산 전투
천안 세성산성과 동학농민혁명 세성산 전투 Seseongsanseong Fortress and the Battle of Seseongsan Mountain During the Donghak Peasant Revoluti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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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안내판: 천안 세성산성 |
해설문
국문
천안 세성산성은 산꼭대기에서 중턱에 걸쳐 돌로 쌓은 성이다. 천안시 동남구 성남면 화성리에 있는 세성산은 해발 219m의 나지막한 구릉이지만 주변 지역을 한눈에 볼 수 있어 군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곳이다. 산성에 대한 발굴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지만, 출토된 유물과 성벽을 쌓은 기법으로 보아 대체로 백제 때 처음 쌓은 것으로 추정된다.
세성산성은 일반적인 다른 산성과 달리 내성과 외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내성의 둘레는 280m, 외성의 둘레는 680m에 이른다. 산성은 조선 초부터 사용하지 않았지만 동학농민운동 당시 천안 세성산 전투가 일어난 역사적인 현장이다.
천안은 1880년대 초 동학이 전해진 곳으로 1883년 김은경 접주*의 집에서 『동경대전(목천판)』을 펴내는 등 동학농민혁명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는 곳이다. 특히 세성산은 서울로 가는 길목으로 김복용과 이희인 등 많은 동학농민군이 진을 치고 관군과 일본군을 상대했던 곳이다. 1885년의 ‘세성산 전투’는 동학농민군 주력 부대가 북쪽을 향하여 올라가면서 벌인 전투로 관군과 대규모 전투를 치렀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 접주: 동학의 교구 또는 집회소를 뜻하는 접(接)의 우두머리.
영문
Seseongsanseong Fortress and the Battle of Seseongsan Mountain During the Donghak Peasant Revolution
Seseongsanseong Fortress was built of stone around the peak and slope of Seseongsan Mountain (219 m above sea level). It was a very strategic point of defense as it overlooks the surrounding area. As no excavations of the fortress have been conducted, the exact period of its construction is unknown. However, based on the artifacts discovered in the vicinity and the construction technique of the walls, the fortress is presumed to have been first built by the Baekje kingdom (18 BCE-660 CE).
Seseongsanseong Fortress consists of an inner section (280 m in circumference) and an outer section (680 m in circumference). The fortress is presumed to have not been used since the early period of the Joseon dynasty (1392-1910). During the Donghak Peasant Revolution of 1894, however, it became the historic venue of a large battle.
The Donghak Movement spread to the Cheonan area in the early 1880s. In 1883, the scriptures of the Donghak Movement, entitled the Great Treatise on the Eastern Doctrine (Donggyeong daejeon), was printed in the house of the local Donghak assembly leader Kim Eun-gyeong. At the time of the Donghak Peasant Revolution, the main unit of the peasant army fought against the government troops on Seseongsan Mountain, which was located along the path to Seoul. However, the peasant army was unsuccessful, and its strength subsequently declined.
영문 해설 내용
세성산성은 세성산(해발 219m) 꼭대기에서 중턱에 걸쳐 돌로 쌓은 성이다. 세성산은 주변 지역을 한눈에 볼 수 있어 군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곳이다. 산성에 대한 발굴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정확한 축성 시기는 알 수 없지만, 출토된 유물과 성벽을 쌓은 기법으로 보아 대체로 백제 때 처음 쌓은 것으로 추정된다.
세성산성은 내성과 외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내성의 둘레는 280m, 외성의 둘레는 680m 이다. 산성은 조선 초부터 사용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1894년 동학농민운동 당시 대규모 전투가 일어난 역사적인 현장이기도 하다.
천안에는 1880년대 초 동학이 전해졌고, 1883년에는 접주 김은경의 집에서 동학 경전인 『동경대전』이 간행되기도 하였다. 동학농민혁명이 일어나자, 당시 서울로 향하는 길목이었던 세성산에서 농민군 주력 부대가 관군을 상대로 전투를 치렀다. 그러나 농민군은 크게 패하였고, 이후 농민군의 전력이 약화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