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 성거산 천주교 교우촌터
천안 성거산 천주교 교우촌터 Catholic Village Site in Seonggeosan Mountain, Cheona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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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천안 성거산 천주교 교우촌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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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명칭 | Catholic Village Site in Seonggeosan Mountain, Cheonan |
한자 | 天安 聖居山 天主敎 교우촌터 |
주소 |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북면 납안리 산46-1 |
지정(등록) 종목 | 충청남도 기념물 제175호 |
지정(등록)일 | 2008년 12월 22일 |
분류 | 유적건조물/종교신앙/천주교 |
시대 | 대한제국시대 |
수량/면적 | 4114㎡ |
웹사이트 | 천안 성거산 천주교 교우촌터,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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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국문
천안 성거산 천주교 교우촌 터는 1800년경 박해를 피해 천주교 신자들이 모여 신앙 활동을 했던 흔적이 남아 있는 곳이다.
프랑스인 선교사 칼래 신부는 소학골을 경상도와 충청도, 경기도 일부 지역의 선교 거점으로 삼았는데, 성거산의 교우촌이 신앙 중심지로 떠오르면서 1866년 병인년의 박해로 큰 희생을 치렀다. 확인된 순교자만 23명에 이른다. 이 가운데 소학골 출신의 배문호(베드로)․고요셉․최천여(베드로)․최종여(라자로) 등은 교황청에서 성인의 전 단계인 ‘복자’로 선포하기 위한 절차를 밟고 있는 중이다. 이들의 유해는 무명 순교자 등과 함께 제1줄 무덤․제2줄 무덤에 안장되어 있다.
성거산 천주교 유적은 교우촌의 지형과 생활 유적이 기록은 물론이고 증언과 함께 보존되고 있어, 초기 한국 천주교의 전형을 여실히 보여 준다.
영문
Catholic Village Site in Seonggeosan Mountain, Cheonan
This is the site of a Catholic village which was formed in the early 19th century.
Following a large-scale persecution of Catholics in 1801, Korean Catholic followers and foreign missionaries took refuge in mountainous areas to form a village and continue their religious activities. This kind of village was called Gyouchon, meaning “a village of friends with the same religion.”
The Catholic village in Seonggeosan Mountain grew into one of the most influential among the Catholic villages in the Cheonan area. A French missionary, Priest Calais (1833-1884), came to this village in 1864 and used it for his ministerial activities. However, another persecution occurred in 1866, and the village suffered a great number of casualties and gradually became abandonded.
Nearby this village site, there are two groups of tombs in which more than 70 martyrs are buried. The village site and these tombs were collectively designated as a Catholic sacred site by the Catholic Diocese of Daejeon in 1998 and were designated as Chungcheongnam-do Monument No. 175 in 2008.
영문 해설 내용
이곳은 19세기 초반에 형성된 천주교 교우촌이 있던 곳이다.
1801년 천주교 박해 이후, 한국의 천주교 신자들과 외국인 선교사들은 산간 지방에 모여 들어 마을을 형성하고 신앙생활을 이어갔다. 이러한 마을을 교우촌이라 부르며, ‘같은 종교를 믿는 친구들의 마을’이라는 뜻이다.
성거산 교우촌은 천안 지역에 있던 교우촌 중 가장 대표적인 곳이 되었고, 프랑스인 신부 칼레는 1864년 이곳으로 와서 자신의 사목활동의 중심지로 삼기도 했다. 이러한 와중에 1866년 또 다른 박해가 일어나, 이 마을은 큰 희생을 치르고 점차 와해되었다.
교우촌터 인근에는 70명 이상의 순교자들이 묻혀 있는 2개의 줄무덤이 있다. 1998년 천주교 대전 교구에서 마을터와 두 줄무덤을 함께 천주교 성지로 지정하였고, 2008년에는 충청남도 기념물 제175호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