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 김시민장군 유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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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 김시민장군 유허지
Historic Site Related to Kim Si-min
천안 김시민장군 유허지,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천안 김시민장군 유허지
영문명칭 Historic Site Related to Kim Si-min
한자 天安 金時敏將軍 遺墟址
주소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병천면 가전리 460-1번지
지정(등록) 종목 충청남도 기념물 제166호
지정(등록)일 2004년 4월 10일
분류 유적건조물/인물사건/인물기념/순절지
웹사이트 천안 김시민장군 유허지,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천안 김시민 장군 유허지는 임진왜란1592~1598 3대첩 중 하나인 ‘진주성전투’를 승리로 이끈 김시민1554~1592 장군이 태어나서 자란 옛터이다. 이곳에는 장군이 9세 때 마을 앞 냇가의 이무기를 잡기 위해 활을 쏘았다는 전설이 깃든 사사처射蛇處 등이 있다.

김시민 장군은 목천현 백전리*에서 태어나, 25세가 된 1578년 무과에 급제하였고, 1591년 진주판관에 이어 1592년 진주목사가 되었다.

진주목사로 있었던 1592년 10월에 3,800명의 군사로 3만 명의 왜군과 싸워 2만여 명을 사살하는 큰 전공을 세웠으나 적의 총탄에 맞아 39세에 순국하였다. 1604년선조 37 선무공신 2등에 책봉되었고, 1711년숙종 37 ‘충무공’의 시호를 받았다.


  • 현 천안시 동남구 병천면 김시민로 23

영문

Historic Site Related to Kim Si-min

This site is known to be the birthplace of Kim Si-min (1554-1592), a military official of the Joseon period (1392-1910).

Kim Si-min passed the state examination in 1578 and served various official posts. Right after the outbreak of the Japanese invasions in 1592, he was appointed as the magistrate of Jinju and defended Jinjuseong Fortress. During the battle at the fortress, 3,800 Korean troops defended the area against 30,000 Japanese troops. The Korean troops managed to kill nearly 20,000 enemies, however, Kim was shot by enemy fire and died in the battle. In 1604, Kim was posthumously honored as a meritorious subject and promoted to chief state councilor.

On this site, there are a rock called Tutle Rock on the far left and two stone monuments. The rock has an inscription saying “the place where the Kim Family lived.” The stone monument standing next to the rock was erected in 1988. The inscription carved on its front side means “the place where a serpent was shot by an arrow,” which is a reference to a legend that when Kim was only nine years old, he killed a serpent by shooting an arrow. The monument on the right was erected in 2004 to honor Kim Si-min’s distinguished service.

영문 해설 내용

이곳은 조선시대의 무신인 김시민(1554-1592)의 생가터로 알려져 있다.

김시민은 1578년 과거에 급제한 후 여러 관직을 지냈다. 임진왜란이 발발한 직후 진주목사로 임명되어 진주성을 지키게 되었다. 3,800명의 군사로 3만 명의 왜군과 맞서 싸우며 2만 명의 적군을 사살하였으나, 김시민은 적의 총탄의 맞아 전사하였다. 1604년 공신으로 기록되었고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이곳에는 거북바위라 불리는 바위와 2기의 유허비가 있다. 바위에는 ‘김씨 일가가 사는 곳’이라고 새겨져 있다. 바위 바로 옆에 서 있는 유허비는 1988년에 세워진 것으로, 전면에 새겨진 글씨는 ‘이무기가 화살에 맞은 곳’이라는 뜻이다. 전설에 따르면 김시민은 9살 때 화살을 쏘아 이무기를 잡았다고 한다. 오른쪽의 유허비는 김시민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2004년에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