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녕 조민수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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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녕 조민수 묘
Tomb of Jo Min-su, Changnyeong
창녕 조민수 묘,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창녕 조민수 묘
영문명칭 Tomb of Jo Min-su, Changnyeong
한자 昌寧 曺敏修 墓
주소 경상남도 창녕군 대합면 신당리 산 73-1
지정(등록) 종목 경상남도 기념물 제282호
지정(등록)일 2013년 7월 11일
분류 유적건조물/무덤/무덤/봉토묘
수량/면적 1기 (묘표1기)석상 2기(539㎡)
웹사이트 창녕 조민수 묘,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조민수는 고려 말기 홍건적과 왜구의 침입을 물리치는데 큰 공을 세운 무신(武臣)이다. 창녕 조민수의 묘는 둘레돌을 돌려 쌓은 무덤과 화관석(花冠石) 묘표*, 문인석** 1쌍으로 구성되어 있다. 비석의 뒷면에 새겨진 글에 따르면 화관석 묘표는 조민수의 증손인 조연(曺衍)이 세운 것이다. 사헌 감찰의 신분으로 계사년 11월에 세운 것이며, 창녕 조씨의 족보에 따르면 계사는 성종 4년(1473)으로 판단된다. 화관석 묘표는 조선 초기에 등장하여 16세기 전반까지 유행하다 사라진 양식이다. 조민수묘의 화관석 묘표는 예스럽고 소박한 형식으로 15세기 후반에 만들어졌음을 보여준다. 문인석은 관을 쓰고 관복을 입고 있다. 소매가 매우 넓고 두 손이 소매에 가려져 있어 15세기 중·후반 양식을 보여준다.


  • 묘표 : 죽은 사람의 이름과 업적 등을 글로 새기어 무덤 앞에 세우는 표석
  • 문인석 : 문신(文臣)의 모양으로 깎아 만든 돌

영문

Tomb of Jo Min-su, Changnyeong

This is the tomb of Jo Min-su (?-1390), a military official of the Goryeo period (918-1392).

Jo Min-su helped to defeat invasions by the Red Turbans and the Japanese. In 1388, amidst a sudden political upheaval, he reclaimed power in the royal court together with Yi Seong-gye (who later founded the Joseon dynasty in 1392). However, the following year he was exiled to Changnyeong after being pushed out by opposition forces. In 1390, he died in exile.

This tomb was discovered in 1962. In front of the tomb mound are a tombstone with lotus-shaped capstone and two stone statues of civil officials. The record on the back of the tombstone says that it was erected in 1473 by Jo Yeon, the great-grandson of Jo Min-su. The civil official statues wear Joseon-period official robes and caps, and both their hands are covered with very wide sleeves. The shapes of the stele's capstone and the civil official statues' hands are characteristic of stone sculptures from the late 15th century.

영문 해설 내용

고려 말의 무신 조민수(?-1390)의 무덤이다.

조민수는 홍건적과 왜구의 침입을 물리치는 데 공을 세웠다. 1388년 이성계(이후 조선을 건국하고 태조가 됨, 1335-1408)와 함께 정변을 일으키고 잠시 권력을 잡았으나, 이성계와 대립하다 세력에 밀려 이듬해 창녕으로 유배되었다. 1390년 유배지에서 생을 마감하였다.

무덤은 1962년에 발견되었으며, 봉분 앞에 묘비 1기와 문인석 1쌍이 세워져 있다. 묘비는 연꽃 모양의 머릿돌을 올렸는데, 뒷면에 조민수의 증손자인 조연이 1473년에 세웠다는 기록이 있다. 문인석은 관복을 입고 관을 썼으며, 두 손이 매우 넓은 옷소매에 가려져 있다. 비석의 머릿돌 모양이나 문인석의 손 모양은 모두 15세기 후반에 조성된 석물들의 특징을 보여준다.


참고 자료

  • 비석 머릿돌 : 화관석(연꽃을 형상화하여 조각하거나 윗부분을 연꽃잎처럼 말아 올린 비석) -> 조선 초기의 전형적인 양식이라고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