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녕 이장곤 묘도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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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녕 이장곤 묘도비
Stele of Yi Jang-gon, Changnyeong
창녕 이장곤 묘도비,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창녕 이장곤 묘도비
영문명칭 Stele of Yi Jang-gon, Changnyeong
한자 昌寧 李長坤 墓道碑
주소 경상남도 창녕군 대합면 대동리 산6
지정(등록) 종목 문화재자료 제389호
지정(등록)일 2006년 1월 12일
분류 기록유산/서각류/금석각류/비
시대 조선시대
수량/면적 석비 1기
웹사이트 창녕 이장곤 묘도비,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창녕 이장곤 묘도비는 조선 중기의 문인이었던 이장곤의 묘 앞에 세워진 신도비* 형태의 비석이다. 이장곤은 연산군 원년(1495)에 생원시(生員試)에 장원급제하고 연산군 8년(1502)에 문과에 급제하여 홍문관 교리로 있던 중 갑자사화에 연루되어 거제도로 유배당하였다. 거기서 함흥으로 가서 지내다가 중종반정으로 조정에 돌아오게 되었다. 중종 14년(1519)에 일어난 기묘사화 때 병조판서로서 영의정 정광필 등과 함께 추국**에 참여하면서 조광조 등의 처벌을 반대하여 파직되었다. 이후 고향인 창녕으로 돌아와 남은 일생을 마쳤다.

비문은 대산 이상정이 지었고, 비문의 글씨는 당시 성주목사였던 조윤형이 썼다. 비의 전액***에는 ‘금헌이선생묘도비(琴軒李先生墓道碑)’라 적혀 있고, 본문 제목은 ‘유명조선국우찬성금헌이공묘비명(有明朝鮮國右贊成琴軒李公墓碑銘)’으로 되어 있다.


  • 죽은 사람의 평생 사적을 기록하여 무덤 앞에 세운 비
  • 왕명으로 의금부에서 수행한 중죄인의 심문 또는 그 절차
  • 전자체로 비석의 윗부분이나 머릿돌에 비의 명칭을 새긴 부분

영문

Stele of Yi Jang-gon, Changnyeong

This stele was erected to honor Yi Jang-gon (1474-?), a civil official of the early Joseon period.

Yi Jang-gon, born in Changnyeong, passed the state examination in 1502 and became a government official, but soon became involved in political strife and was sent to exile on Geojedo Island in 1504. He returned to the government in 1506 when King Jungjong (r. 1506-1544) ascended the throne. He served various high official posts, but in 1519, was involved in political strife again which resulted in his dismissal. He returned to his hometown, Changnyeong, and spent the rest of his life there. In 1695, Yeonamseowon Confucian Academy was built in Changnyeong to honor Yi’s virtuous life and scholastic achievements.

This stele was erected in 1783 and records the life and achievements of Yi Jang-gon. The inscription was composed in 1781 by Yi Sang-jeong (1711-1781), a Confucian scholar, and was calligraphed by Jo Yun-hyeong (1725-1799), a civil official and calligrapher of the late Joseon period. There is also a tortoise-shaped pedestal and a capstone with a carving of two dragons. The tortoise and dragons appear to have wish-fulfilling jewels in their mouths.

영문 해설 내용

이 비는 조선 전기의 문신인 이장곤(1474~?)의 생애와 업적을 기리는 비이다.

창녕 출신인 이장곤은 1502년 과거에 급제하여 관직에 나아갔으나, 1504년 정쟁에 연루되어 거제도로 유배당하였다. 1506년 반정으로 중종(재위 1506-1544)이 왕위에 오른 후 조정에 돌아왔으며, 왕의 신임을 얻어 여러 고위 관직을 역임하였다. 그러나 1519년에 다시 정쟁에 휘말려 관직을 잃었고, 이후 고향인 창녕으로 돌아와 남은 일생을 마쳤다. 그의 덕행과 학문을 추모하기 위해 1695년 창녕에 연암서원이 건립되었다.

이 비는 1783년에 세워졌으며, 비문은 조선 후기의 학자인 이상정(1711-1781)이 1781년에 지었고 글씨는 문신이자 서예가인 조윤형(1725-1799)이 썼다. 비는 거북 모양의 받침돌과 두 마리의 용무늬로 장식된 머릿돌을 갖추고 있다. 거북과 용은 입에 여의주를 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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