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녕 양훤 묘비
창녕 양훤 묘비 Tombstone of Yang Hwon, Changnyeo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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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창녕 양훤 묘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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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명칭 | Tombstone of Yang Hwon, Changnyeong |
한자 | 昌寧 楊喧 墓碑 |
주소 | 경상남도 창녕군 장마면 동정리 산21-1 |
지정(등록) 종목 | 문화재자료 제71호 |
지정(등록)일 | 1983년 7월 20일 |
분류 | 기록유산/서각류/금석각류/비 |
수량/면적 | 1기 |
웹사이트 | 창녕 양훤 묘비,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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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국문
창녕 양훤 묘비는 어촌 양훤의 묘 앞에 있는 비석이다. 양훤은 어려서부터 학문에 힘써 21세에 진사가 되었고 광해군의 혼탁한 정치를 보고 고향으로 내려갔다. 광해군이 몰락한 후 성균관에 들어가 공부하였으며,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조직하여 출정하였으나 남한산성이 함락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군사를 거두었다.
양훤 묘비는 네모난 받침돌 위에 몸돌을 세웠고, 머릿돌인 이수 부분이 구름 모양으로 되어 있어 독특하다. 비석의 글씨는 미수 허목(許穆)이 썼으나 심하게 닳아서 윗부분을 제외하고는 거의 알아볼 수 없다. 비문의 내용은 『청주세고』와 허목의 『기언』을 통해 확인할 수 있으며, 비문 내용을 볼 때 17세기 후기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영문
Tombstone of Yang Hwon, Changnyeong
This is a tombstone of Yang Hwon (1597-1650), a scholar of the Joseon dynasty (1392-1910).
Yang Hwon mobilized a civilian army during the Manchu invasion of 1636-1637. After King Injo (r. 1623-1649) surrendered to the Manchus, he refused to serve any official posts, and instead taught younger generations of scholars in Changnyeong. A Confucian academy was built to honor his virtuous life and achievements in 1795, but it was closed down in 1868 when most shrines and Confucian academies were shut down by a nationwide decree. On this site, Gwangsanseodang Village Study Hall (Gyeongsangnam-do Province Cultural Heritage Material No. 69) was built in 1899 and still remains today.
The epitaph of the tombstone was composed and calligraphed by Heo Mok (1595-1682), a scholar and calligrapher of the late Joseon period. The body stone was erected on a square pedestal, and the capstone was carved in the shape of clouds.
영문 해설 내용
조선시대의 학자인 양훤(1597-1650)의 묘비이다.
양훤은 병자호란 때 의병을 일으켰으나, 인조(재위 1623-1649)가 청에게 항복한 후에는 벼슬길에 나가지 않고 창녕에서 후학을 가르쳤다. 그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는 광산서원이 1795년에 세워졌다가 1868년 서원철폐령으로 철거되었고, 옛 서원터에는 1899년에 세워진 광산서당(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69호)이 있다.
이 비에 새겨진 비문은 조선 후기 학자이자 서화가인 허목(1595-1682)이 짓고 쓴 것이다. 네모난 받침돌 위에 몸돌을 세웠고, 머릿돌이 구름 모양으로 장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