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녕 신당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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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녕 신당산성
Sindangsanseong Fortress, Changnyeong
창녕 신당산성,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창녕 신당산성
영문명칭 Sindangsanseong Fortress, Changnyeong
한자 昌寧 新堂山城
주소 경상남도 창녕군 계성면 신당리 산 5
지정번호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84호
지정일 1983년 8월 6일
분류 유적건조물/정치국방/성/성곽
수량/면적 46,192㎡
웹사이트 창녕 신당산성,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창녕 신당산성은 구현산해발 579m의 남서쪽 구릉 말단부에 형성된 야산의 7~8부 능선을 감싸고 있는 테뫼식 산성*이다. 일제강점기에는 죽전등성(竹田嶝城)으로 기록하고 있으며 말을 키웠다고 하여 목마성(牧馬城)이라는 별칭도 전해져 온다. 신당산성과 관련된 조선시대 이전의 문헌기록은 전하지 않지만 이 산성에 마을 서낭을 모신 신당(神堂)이 있어 신당산성으로 불렀다고 하며, 마을 사람들은 ‘곽망우당성’으로도 부른다고도 한다.

신당산성의 둘레는 625m이다. 북문지와 남문지가 잔존할 것으로 추정되지만 붕괴가 심하여 정확한 구조를 파악하기 어렵다. 서벽과 북벽 일부에서 신라의 일반적인 성벽 쌓기 기술인 바른층 쌓기**한 방식이 확인되는 것으로 보아 신라가 처음 축조한 후, 조선시대까지 지속적으로 운용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고대 계성지역은 영산-창녕, 밀양-창녕을 이어주는 교통로가 만나는 교차점으로서 정치ㆍ군사ㆍ교통상 중요한 지역이다. 이에 계성지역을 다스렸던 강력한 세력이 창녕 계성 고분군을 조성하였고 이 세력이 계성지역을 관할하면서 신당산성을 치소로 두고 군사적 방어 기능을 수행하였을 것으로 판단된다.


  • 테뫼식 산성 : 산꼭대기를 중심으로 능선을 따라 쌓은 산성
  • 바른층 쌓기 : 돌의 면 높이를 일정하게 하여 가로줄눈이 일직선이 되도록 쌓는 방법

영문

Sindangsanseong Fortress, Changnyeong

This fortress encircles a mountain (154.4 m above the sea level) that stretches to the southwest of Guhyeonsan Mountain.

During the excavation conducted in 2007, two wall sections from different periods were discovered within the fortress. The wall built around the summit dates back to the late 6th-7th century, while the wall located along the steep southern slope is presumed to have been built during the Joseon period (1392-1910). This suggests that since the fortress was first built by the Silla kingdom (57BCE-935), it remained in use until the Joseon period.

The fortress measures 625 m in the perimeter. The wall section around the summit is oval in shape. The southern wall stretches all the way to the nearby village, but it is so severely collapsed that its original layout could not be confirmed.

This fortress is also known as Mongmaseong, meaning “horse raising fortress," as it is said horses were raised here during the Silla period. Another nickname for the fortress is Gwak Mangudang’s Fortress, as Gwak Jae-u (1552-1617, pen name: Mangudang) once set up a camp in this fortress when his civilian army was protecting the village during the Japanese invasion of 1592.

Various earthenware, jars, and roof tile shards were found in the premises that dating from the various periods when the fortress was in use.

영문 해설 내용

신당산성은 구현산의 남서쪽에 있는 야산(해발 154.4m)을 둘러 쌓은 석성이다.

2007년 발굴조사 결과 축조 시기가 다른 2개의 성벽이 발견되었다. 정상부를 둘러싼 성벽은 6세기 말에서 7세기에 축조되었고, 경사가 급한 남쪽 방향에 잔존하는 성벽은 조선시대에 쌓은 것으로 추정된다. 이로 보아 신라가 처음 축조한 후 조선시대까지 지속적으로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산성의 둘레는 625m이다. 정상부의 성은 타원형으로 쌓았고 남쪽을 둘러싼 성벽이 마을 쪽으로 이어지는 형태이나 붕괴가 심해 정확한 구조를 파악하기 어렵다.

'말을 기르는 성'이라는 뜻의 목마성(牧馬城)이라고도 부르는데, 신라시대 때 이곳에 말을 길렀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또한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 곽재우(1552-1617, 호: 망우당)가 이곳에 진을 치고 마을을 지켰다고 하여 ‘곽망우당성’이라고도 부른다.

이곳에서는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는 다양한 시대의 토기, 항아리, 기와 조각 등이 출토되었다.

참고자료


  • 신당마을 -> 신라시대에 계성현청이 있었던 마을로, 서낭당(신당, 神堂)이 있었다고 하여 ‘신당마을’이라고 불렸다고 함. 산성의 이름도 마을 이름을 따서 붙인 것으로 보임.
  • 계성현청에서 말을 방목해 길렀다고 전해지기도 한다. 산성Ⅱ의 형태가 길게 마을 쪽으로 이어지고 높이가 낮은 것으로 보아 목마장의 기능을 했을 가능성도 있다.
  • 신당산성에서 채집된 유물은 삼국시대 기대 대각편을 비롯하여 통일신라시대의 인화문토기, 기와편, 중근세의 항아리편, 분청사기, 백자, 기와편 등이 있다. 채집된 유물로 보아 신당산성은 늦어도 통일신라시대 이전에 축조되었으며 조선시대 이후에도 사용되었음 알 수 있다.
  • 산성 1(외성)은 둘레가 598m로, 타원형으로 쌓았다. 산성 2는 산성Ⅰ 내부에 축조된 것으로 산성Ⅰ이 폐기된 후 조선시대 어느 시점에 급조된 산성으로 추정된다. 성벽은 정상부를 벗어나 경사가 급한 남쪽사면을 둘러싸고 있어 일반적인 산성과 차별성을 보인다. 산성Ⅱ와 연결된 성벽이 신당마을 쪽으로 약 93m 정도로 길게 꼬리를 형성하고, 대밭밑마을 쪽으로도 45m 정도 꼬리를 형성하는 독특한 모양을 가지고 있는데 그 성격은 불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