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 영남포정사 문루
진주 영남포정사 문루 Gate Pavilion of the Local Government Office, Jinju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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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진주 영남포정사 문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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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명칭 | Gate Pavilion of the Local Government Office, Jinju |
한자 | 晉州 嶺南布政司 門樓 |
주소 |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626 (본성동, 진주성) |
지정(등록) 종목 |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667호 |
지정(등록)일 | 2020년 6월 11일 |
분류 | 유적건조물 / 주거생활 / 조경건축 / 누정 |
수량/면적 | 1동 |
웹사이트 | 진주 영남포정사 문루,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해설문
국문
영남포정사 문루는 1618년(광해군10) 경상우병사 남이흥(南以興)이 세웠다. 1895년(고종 32)에는 진주관찰부, 1896년(건양*원년)에는 경상남도 관찰사 청사의 정문으로 사용되어 영남포정사 문루라 불렀다.
누의 편액은 망미루(望美樓)인데 지중추부사 서영보(徐榮輔)의 글씨다.
출입문의 기능을 위해 누의 아래 기둥이 높게 설치되고 누는 지붕을 낮게 하여 출입자를 감시하고 외부 침입을 대비한 조선 중기 관아의 문루 건축 양식을 잘 나타내고 있다.
“망미루(望美樓)”의 미(美)는 임금을 뜻하는 말로 임금을 그리워하는 누각이라는 뜻이 담겨 있다.
- 건양(建陽) : 조선 고종 때의 연호로 시기는 1896년부터 1897년까지이다.
영문
Gate Pavilion of the Local Government Office, Jinju
This building was first built in 1618 by the army commander Nam I-heung (1576-1627) as the main gate of the East Gyeongsang-do Provincial Army Headquarters. After 1895, the building came to be used as the main gate of the provincial government office. The plaque hanging at the front of the building reads “The Place Where the Political Administration of Gyeongsang-do Province is Managed.”
The building is a gate pavilion, meaning that the main pavilion floor is elevated atop tall pillars, facilitating the movement of people below the main floor and allowing those who enter to be monitored from above. Inside the pavilion is a plaque that reads “Pavilion of Longing for the King.” It was calligraphed by Seo Yeong-bo (1759-1816), a civil official and calligrapher.
In front of the pavilion is a dismounting post, which features an inscription that states that anyone below the rank of local magistrate must dismount from their horse at this point before entering the complex.
영문 해설 내용
이 건물은 1618년 경상도 병마절도사 남이흥(1576-1627)이 병영의 문루로 처음 세웠다. 1895년부터는 경상도 관아의 정문으로 사용되었다. 정면에 걸린 현판에 쓰인 '영남포정사'는 '경상도의 정치 행정을 살피는 곳'이라는 뜻이다.
기둥을 높이 만들어 누각 아래를 통과하여 출입할 수 있게 하였고, 누각에서는 출입자를 감시하였다. 누각 내부에는 '임금을 그리워하는 누각'이라는 뜻의 현판이 걸려 있다. 문신이자 서예가인 서영보(1759-1816)가 글씨를 썼다.
문루 앞 오른쪽에 있는 비석에는 '수령 이하의 사람은 말에서 내려 걸어 들어오라'는 내용이 새겨져 있다.
참고자료
- 영남포정사 문루, 디지털진주문화대전 http://jinju.grandculture.net/jinju/search/GC00401539?keyword=%EC%98%81%EB%82%A8%ED%8F%AC%EC%A0%95%EC%82%AC&page=1 -> 기본 정보 확인
- (참고)진주의 옛 건축, 고영훈 지음, 알마 출판사, 2014년 pp.59-61 -> 이러한 형태의 문은 건물의 위엄을 위해 규모를 크게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다락으로 오르내리기 위한 계단을 두지 않는다.
- (참고) 촉석루·영남포정사 문루 ‘품격’ 올리다, 경남일보, 2020.1.28. http://www.g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434351 -> 영남포정사 문루는 1895년 고종 32년에 전국 8도제를 28부제로 시행하면서 진주부가 설영(設營 :군대가 머무는 진영)이 돼 진주 관찰부(경남도청의 모태가 된 조선 말기 도정의 최고 행정기관), 선화당(도청 본관)의 관문이 됐다. 영남포정사 문루는 경남의 수부(首府)를 상징하는 관찰사영의 정문으로 조선시대에 진주가 경남도의 중심지였음을 상징적으로 나타내고 있는 건물이며 최초에 병사 남이흥이 신축한 이후 300여 년간 자리를 지켜온 역사성도 함께 인정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