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 연화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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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연화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
Wooden Seated Amitabha Buddha of Yeonhwasa Temple, Jinju
진주 연화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진주 연화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
영문명칭 Wooden Seated Amitabha Buddha of Yeonhwasa Temple, Jinju
한자 晋州 蓮華寺 木造 阿彌陀如來 坐像
주소 경상남도 진주시 옥봉동 449-1
지정(등록) 종목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462호
지정(등록)일 2008년 1월 10일
분류 유물/불교조각/목조/불상
시대 조선시대
수량/면적 1구
웹사이트 진주 연화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연화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은 연화사의 아미타전에 모셔져 있다. 연화사는 처음에 고성 옥천사(玉泉寺)의 포교당(布敎堂)으로 지어졌다. 미타전에 모셔진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은 고성 옥천사에서 모셔져 있던 것을 이곳으로 옮겨왔다고 전한다.

아미타여래좌상의 복장 유물*에서는 불상을 만든 시기나 만든 사람에 대한 기록이 없어서 만든 시기를 정확히 알 수가 없다.

다만, 신체에 비해 머리를 크게 만든 것이나 옷을 입은 모양과 주름의 처리 등에서 조선 후기 불상을 만드는 형식이 나타나고 있어 1800년쯤에 만들어진 불상으로 보인다.

연화사목조여래좌상의 손 모양은 아미타부처의 9가지 손 모양[아미타구품인]*중 하나인 하품중생인(下品中生印)을 하고 있다.


  • 복장 유물 : 불상 등을 조성할 때 조각상의 몸속에 넣었던 유물로 주로 조성기(造成記), 후령통, 경전 등이다.
  • 아미타구품인(阿彌陀九品印) : 아미타불이 대중의 높낮이에 맞춰 설법을 하기 위한 손의 모양으로 상・중・하의 세 단계에 각 단계별로 상생・중생・하생 의 세 가지를 더해 9가지 손모양이다.

  • 원래 고성 운흥사에 있던 것을 옮겨왔음.
  • 아미타전에 모셔진 것이 맞는지? 국가문화유산포털에 따르면 대웅전에 있음.

영문

Wooden Seated Amitabha Buddha of Yeonhwasa Temple, Jinju

This statue depicts Amitabha, the Buddha of Western Paradise, and is presumed to date to the turn of the 19th century during the Joseon dynasty (1392-1910). It is believed that all beings who call the name of Amitabha while reflecting on his meritorious virtues can be reborn in the Buddhist paradise of the West.

This statue was originally enshrined in Unheungsa Temple, Goseong, and was moved in 1959 to its current location. The only relics found inside the statue were around 10 books of the Dharani Sutra, without any other documents that may aid in identifying by whom and when the statue was made. However, the statue’s disproportionately large head and the folds and style of the robes suggest it was made around the year 1800.

영문 해설 내용

이 불상은 아미타불을 나타낸 것으로, 조선시대인 1800년 무렵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아미타불은 극락정토의 부처로, 아미타불의 공덕을 기리고 그의 이름을 염(念)하는 모든 중생들은 극락세계에 왕생할 수 있다고 여겨진다.

본래 고성 운흥사에 봉안되어 있었던 것을 1959년에 이곳으로 옮겼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불상 안에는 불상을 만든 시기나 만든 사람에 대해 기록한 문서를 넣어두는데, 이 불상의 경우 그러한 문서들이 모두 없어지고 10여 종의 다라니경만 발견되었다. 따라서 만든 시기를 정확히 알 수 없으며, 신체에 비해 머리를 크게 만든 것이나 옷을 입은 모양과 주름의 표현 방식 등으로 볼 때 1800년 무렵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참고자료

  • 연화사 순례, 태평양을 향하여, 다음 블로그 http://blog.daum.net/loh4624/6210468 -> 대웅전 봉안 불상 사진 확인.
  • 국가문화유산포털 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ccbaCpno=2113804620000&pageNo=1_1_1_1 -> 진주 연화사 대웅전에 봉안되어 있는 삼존불 중 중앙의 본존불은 조선시대에 조성된 木造阿彌陀佛坐像이며, 그 좌우의 협시보살상은 근래에 조성된 것이다. 사찰 측에서 전하는 바에 의하면 이 본존불은 固城 운흥사에 있던 것을 이곳으로 옮겨온 것이라 하며, 다른 복장물은 모두 사라지고 10여종의 다라니경만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75357 -> 연화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은 원래 경상남도 고성군 운흥사(雲興寺)에 있었던 아미타삼존불좌상중 본존상으로, 이곳으로 옮겨와 봉안되었다. 불상의 몸 속에서 10여 종의 다라니가 발견되었지만 상을 만든 조성자, 발원자 등을 적은 불상조성기는 발견되지 않아 정확한 연대는 확인할 수 없다. 원래의 협시상 중 대세지보살상(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475호)은 고성 보광사로 1959년에 옮겨 갔고, 다른 또 하나의 협시상인 관음보살상은 운흥사에 그대로 남아 있다.
  • 디지털진주문화대전 http://jinju.grandculture.net/Contents?local=jinju&dataType=98&callFunc=goSearch()%3B&keyword=%EB%B0%95%EC%84%B8%ED%95%AD -> 목조 아미타여래 좌상은 원래 경상남도 고성군 하이면 와룡리의 운흥사(雲興寺)에서 1959년 현재 위치로 옮겨졌다. / 불상의 얼굴에서 풍기는 인상이나 대의 처리 등을 보면 18세기 전반에 활동한 조각승 진열(進悅)이나 그 계보에 속하는 작가에 의해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조각승 진열이 1713년(숙종 39) 제작한 경기도 고양의 상운사 목조 아미타여래 좌상과 거의 유사하여 1710년대에 제작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 진주 관광 http://www.jinju.go.kr/02793/02258/02282.web?amode=view&idx=451 -> 특히 이 불상의 착의법에 있어 오른쪽 어깨 위의 물방울 모양으로 대의자락을 처리한다든지 발목에서 내려오는 군의의 가장 안쪽 자락을 넓게 펼쳐 두는 표현법은 경기도 고양 상운사 불상(1713년)과 유사한 특징을 보여주고 있어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