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 수졸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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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수졸재
Sujoljae Hall, Jinju
진주 수졸재, 진주 관광, 진주시청.
대표명칭 진주 수졸재
영문명칭 Sujoljae Hall, Jinju
한자 晉州 守拙齋
주소 경상남도 진주시 수곡면 사곡리 563
지정번호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567호
지정일 2013년 1월 31일
분류 유적건조물/주거생활/주거지/주거지
수량/면적 1동/82.66㎡
웹사이트 진주 수졸재,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수졸재는 1916년 하세진(河世鎭)이 세운 것이다. 묵와 하계현(河啓賢)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재실의 부속 건물로 처음에는 내효당(來孝堂)이라 하였으나 하세진이 자신의 호를 따서 수졸재라 하였다.

건물은 누마루 모습인데 가운데 온돌방을 두고 앞쪽과 양쪽에 마루를 둘러 문을 열면 전체를 마루처럼 쓸 수가 있어 숙박과 모임 등 활용 범위가 넓다.

기단*, 기둥 받침돌, 난간, 네 모서리의 활주**를 받치고 있는 긴 받침돌 등은 크기는 작지만 섬세하고 건물과 잘 어울리게 다듬어서 건물 전체가 전통 한옥의 아름다움을 잘 나타내고 있다.


  • 기단 : 건축물 짓기 전에 터를 반듯하게 다듬은 다음에 터보다 한 층 높게 쌓은 단
  • 활주 : 무엇을 받치거나 버티는 데에 쓰는 굽은 기둥
  • 아래 송정종중회 홈페이지의 정보에 따르면, 하세진의 졸년이 1906년이기 때문에 1916년에 건립했다는 정보는 맞지 않음.

영문

Sujoljae Hall, Jinju

This hall was constructed in 1903 by Ha Se-jin (1870-1906) to honor his great-grandfather Ha Gye-hyeon (1804-1867), a scholar of the Joseon period (1392-1910). It was part of Isanjae Ritual House, which was used for the preparation of ancestral rituals to Ha Gye-hyeon. It served as a pavilion where visitors could rest while enjoying a nice view. When a fire devastated the ritual house in 1959, this pavilion building was all that survived.

The building features a tall stone foundation and consists of an underfloor-heated room in the center surrounded at the front and sides by a wooden-floored hall with balustrades. The doors of the room can be lifted to further open up the space for gatherings. The entrance stairs are located at the rear.

영문 해설 내용

조선시대의 학자 하계현(1804-1867)을 추모하기 위해 증손인 하세진(1870-1906)이 1903년에 세운 건물이다. 본래 하계현을 모시는 제사를 준비하기 위한 재실인 이산재의 부속건물이었다. 주변 경관을 즐기고 휴식을 취하도록 지은 정자였으나, 1959년 화재가 발생해 재실 본채는 소실되고 수졸재만 남게 되었다.

높은 석축을 쌓고 그 위에 건물을 지었으며, 중앙에 온돌방을 두고 세 면에 난간을 덧댄 마루를 둘렀다. 온돌방의 문을 열면 건물 전체를 넓은 대청처럼 쓸 수 있어, 모임 장소로 활용되었다. 뒤편에 건물에 오를 수 있는 계단을 두었다.

참고자료

  • 하세진, 송정종중회, http://www.송정종중회.com/menu/sub8/sub09_1_36.htm -> 하세진 정보
  • 수졸재, 송정종중회, http://www.송정종중회.com/menu/sub2/sub05_14.htm -> 재실 정보 ; 하성운(河聖運)이 그의 아버지 묵와공 계현(啓賢)을 위해 재실을 지어 세사를 받들고 또 자손들이 모여 학업을 닦게 하여 가문의 미풍을 계승코자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이에 그 아들 장작감 재곤(載崑)에게 유언하니 재곤(載崑)이 다시 그 아들 태학생(太學生) 세진(世鎭)에게 명하기를 이는 우리 선친의 뜻 이라 하고 네 어찌 힘쓰지 않으랴 하였다. 세진(世鎭)이 부모의 명을 받들어 계묘년(1903)에 3대에 걸친 재사를 창건을 완료하여 이산재伊山齋 라고 재실 현판을 걸고 뒷산에서 흘러내려오는 옥류수를 재실 서편 담장을 따라 안으로 끌어 들여 맑은 물과 새소리를 완상하며 풍류와 휴식을 취할 수 있게 날렵하게 지은 정각이 수졸재 이다. 수졸재는 세진이 자신의 호를 따라 붙인 이름이다. 이산재의 본채는 1959년 화재로 소실되어 현재는 아름들이 주춧돌만 남아 있다. 후손들이 조상의 유업을 기려 세운 육중한 유허비가 옛 도도했던 이산재 본채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 진주관광 http://www.jinju.go.kr/02793/02258/02286.web?amode=view&idx=646 -> 이미지 출처
  • 진주 수졸재_광명각, :), 네이버 블로그 https://blog.naver.com/doggy3dogg/221472960566 -> 수졸재 상세 사진 확인 가능
  • 진주 수졸재, 디지털진주문화대전 http://jinju.grandculture.net/jinju/toc/GC00430023 -> 기본 정보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