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 모순 정려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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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모순 정려비
Stele of Mo Sun, Jinju
진주 모순 정려비, 진주 관광, 진주시청.
대표명칭 진주 모순 정려비
영문명칭 Stele of Mo Sun, Jinju
한자 晋州 牟珣 旌閭碑
주소 경상남도 진주시 지사로 234 (사봉면)
지정(등록) 종목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595호
지정(등록)일 2015년 10월 8일
분류 유적건조물/종교신앙/민간신앙/기타
수량/면적 1기(53㎡)
웹사이트 진주 모순 정려비,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모순 정려비는 조선 세종 시절에 좌사간을 지낸 모순의 효행에 대하여 내린 정려* 기록을 새긴 빗돌이다.

모순의 효행에 대한 기록은 『행실록』에 「모순연종(牟恂吮腫)」이라는 제목으로 실려 전한다. 1531년(중종26)에 정려가 내려지고 1632년(인조10)에 이웃의 반성(班城)에 정려비*를 세웠다가 이곳으로 옮겼다. 오랜 세월에 빗돌이 마모되어 1836년(현종3)에 다시 세운 것이 지금의 정려비다.

효행의 내용을 살펴보면 어머니가 종기가 생기자 입으로 빨아내고, 다시 병이 있자 병세를 살피기 위해 대변을 맛보았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상여가 개울에 다다랐으나 개울물이 넘쳐 건널 수 없게 되었다. 그때 모순이 하늘을 우러러 통곡하니 물길이 열렸다고 한다.

이런 까닭으로 효자 모순을 물길을 열었다는 뜻으로 ‘절강(截江)선생’이라 한다.


  • 정려 : 동네에 붉은 색 칠을 한 문을 세워 충신, 효자, 열녀를 표창하던 일
  • 정려비 : 충신, 효자, 열녀를 표창하기 위해 그 업적을 새겨 세운 비

영문

Stele of Mo Sun, Jinju

This commemorative stele was erected to honor the filial piety of Mo Sun (1373-1460), a civil official of the Joseon period (1392-1910). Commemorations were bestowed by the government to honor a person’s patriotic loyalty, filial devotion, or matrimonial devotion. They were memorialized in the form of steles or plaques which were kept in pavilions or hung on red gates in front of the home or village of the honored person’s family.

It is said that when Mo Sun’s mother was suffering from a diseased abscess, he sucked the pus out of it with his mouth, and when she was ill, he regularly tasted her stool to monitor her symptoms. During his mother’s funeral procession, the river rose so that the bier with the body could not pass to the other side, so Mo Sun looked up to the sky and wailed, which caused the water in the river to stop rising. Because of this story, Mo was given the pen name Jeolgang, meaning “(He Who) Stops the River.”

The commemoration to Mo Sun was issued in 1531, and the commemorative stele was erected in 1632. Over time, the text on the stele became illegible due to erosion, so in 1836, a new stele was made. It consists of a pedestal, body stone, and a round capstone.

영문 해설 내용

조선시대의 문신 모순(1373-1460)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정려비이다. 조선시대에는 나라에서 충신, 효자, 열녀에게 정려를 내렸으며, 정려를 받은 사람의 집 앞에 붉은 문을 세우거나 정려각을 세워 정려비 또는 정려를 모셨다.

모순은 어머니에게 종기가 생기자 고름을 입으로 빨아내었고, 어머니가 병이 들었을 때에는 병세를 살피기 위해 대변을 맛보았다고 한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장례를 치르던 때에 강물이 불어나 어머니의 상여가 건널 수 없게 되었다. 이때 모순이 하늘을 보고 통곡하니 흐르는 물이 멈추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 일화 때문에 그의 호가 ‘강을 끊는다’는 뜻의 ‘절강’이 되었다.

모순은 효행을 인정받아 1531년 정려를 받았고, 1632년에 정려비가 세워졌다. 오랜 세월에 원래의 정려비가 마모되어, 지금의 정려비를 1836년에 다시 세웠다. 사각형 받침돌, 몸돌, 둥근 머릿돌을 올린 형태이다.

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