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 명석 자웅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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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명석 자웅석
Male and Female Stones in Myeongseok-myeon, Jinju
진주 명석 자웅석,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진주 명석 자웅석
영문명칭 Male and Female Stones in Myeongseok-myeon, Jinju
한자 晉州 鳴石 雌雄石
주소 경상남도 진주시 명석면 신기리 산278번지
지정(등록) 종목 경상남도 민속문화재 제12호
지정(등록)일 1988년 12월 23일
분류 유물/기타종교조각/민간신앙조각/석조
수량/면적 2기
웹사이트 진주 명석 자웅석,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자웅석은 남성과 여성을 상징하는 2개의 암돌과 숫돌을 말한다. 따로 떨어져 있던 것을 1970년 이곳에 옮겨 해마다 음력 3월 3일에 충절과 풍년을 기원하는 제를 올리고 있다.

자웅석을 명석(鳴石)이라 하고 ‘운돌’이라고 하는데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한다.

고려 시대 외부의 침략에 대비하여 진주성을 쌓을 때 동원되었던 광제암(廣濟庵) 승려가 이곳을 지나다가 걸어가는 한 쌍의 돌을 만나서 “무령석물(無靈石物)이 어디 가느냐?” 하고 물으니 “진주성을 쌓는데 고생하는 백성들의 힘을 덜어 주려고 성돌이 되고자 간다”라고 하자 “이미 성을 다 쌓았다”라는 스님의 말을 듣고 눈물을 흘리며 그 자리에 멈춰 섰다고 전해져 자웅석을 ‘운돌’이라고 한다.

영문

Male and Female Stones in Myeongseok-myeon, Jinju

Each of these two natural rocks represent the male and female. The whetstone on the left resembles the male reproductive organ, while the rock on the right resembles a woman wearing a bride's wedding hat. The rocks were originally in different locations, but in 1970, they were moved to the current location. In 1973, a pavilion was built to house them. In this pavilion, an yearly ritual is performed on the third day of the third lunar month to wish for a bountiful harvest and for the safety of the country.

According to a legend, a Buddhist monk that participated in the building of Jinjuseong Fortress, was passing nearby when he met two rocks that were walking by. The monk asked them where are they heading to and they replied that they are going to Jinjuseong Fortress to be used as construction material. Then, the monk told them that the fortress was completed already. Upon hearing this news, the rocks started crying and remained standing at that spot. The rocks came to be known as Myeongseok, meaning “The Crying Rocks,” and this village came to be known as Myeongseok-myeon.

영문 해설 내용

이 2개의 돌은 각각 남성과 여성을 상징하는 자연 암석이다. 왼쪽의 숫돌은 남성의 성기와 비슷한 모양이고, 오른쪽의 암돌은 여자가 족두리를 쓴 형태이다. 원래 따로 떨어져 있었는데, 1970년에 지금의 자리로 옮겨왔고 1973년에 보호각을 지었다. 매년 음력 3월 3일에 이곳에서 나라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는 제사를 올린다.

전설에 따르면, 진주성을 쌓을 때 참여했던 한 승려가 이 근처를 지나다가 걸어가는 한 쌍의 돌을 만났다. 승려가 돌에게 어디로 가는지 물으니, 두 돌은 진주성을 쌓을 때 쓰이기 위해 가는 중이라고 답했다. 승려가 성이 이미 완성되었다고 말하자, 두 돌은 그 자리에서 눈물을 흘리며 멈춰섰다고 한다. 이 돌들은 ‘우는 돌’이라는 뜻에서 명석이라 부르게 되었고, 명석면이라는 지명도 이 전설에서 유래하게 되었다.

참고자료

  • 진주명석자웅석, 진주관광 http://www.jinju.go.kr/02793/02258/02285.web?amode=view&idx=103& -> 원래 따로 떨어져 있던 것을 1970년 음력 3월 3일에 옮겨 세우고 1973년에 명석각(鳴石閣)을 준공하여 모시고 있다. 해마다 음력 3월 3일에 유교식 제를 올리는데 제를 지내는 목적은 호국충절을 기리고 풍농을 기원하는 것이라고 한다. 제를 지낼 때에 출향인을 초대하여 각종 민속놀이를 벌인다.
  • 진주 명석 자웅석, 국가문화유산포털 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ccbaCpno=2443800120000&pageNo=1_1_1_1 -> 두 개의 돌을 ‘운돌’혹은 ‘명석(鳴石)’이라 이름 부르게 되었고, 이 마을을 구복동(九伏洞), 돌이 굴러온 골짜기를 구배곡(九拜谷) 또는 구복곡(九伏谷)이라 칭하게 되었다 한다. / 숫돌은 높이 85㎝, 바닥지름 63㎝, 둘레길이 220㎝의 크기로 위가 볼록한 모양이고, 암돌은 높이 75㎝, 바닥지름 55㎝, 둘레 160㎝로 여자가 족두리를 쓴 형태이다. / 원래 숫돌은 현재 자리에서 북동쪽 300m 지점의 논두렁에, 암돌은 북쪽 500m 지점의 하천변에 있었는데, 1973년 마을 주민들이 이곳에 명석각(鳴石閣)을 짓고 옮겨와 매년 3월 3일에 이들의 호국충성을 기리기 위한 제사를 지내고 있다고 한다.
  • 명석각 제향, 디지털진주문화대전 http://jinju.grandculture.net/Contents?local=jinju&dataType=98&callFunc=goSearch()%3B&keyword=%EC%9A%B4%EB%8F%8C ->명석면의 지명 유래가 된, 한 쌍의 자웅석(雌雄石)을 기리는 제사로 ‘운돌제사’ 또는 ‘울돌제사’ 라고도 한다. 원래는 명석면 신기리 동전마을에서 일반적인 동신제의 형식의 제를 지냈는데, 1973년 면민들이 뜻을 모아 명석면 신기리 동전마을 앞 산기슭에 명석각을 건립한 이래로 호국신앙이 가미되면서 면 단위의 제사로 확대되었다. / 명석각을 건립한 후 기자(祈子)나 다산을 기원하는 기능 대신 ‘나라를 위해 운 돌’이라는 측면을 강조하여 나라와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면 단위의 제의로 탈바꿈하여 유교적 제의를 충실히 지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