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수당(문헌서원)
진수당 進修堂 Jinsudang Lecture Hal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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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안내판: 문헌서원 |
해설문
국문
진수당은 문헌서원의 원생이 학업에 정진하며 자신을 수양하던 강당이다. 서원은 선현에게 제사를 지내면서 후학을 교육하는 곳으로, 건물의 가장 안쪽에는 제향* 공간인 사우를 두고 그 앞에는 원생을 교육하는 강당을 두었다.
이색의 묘 앞에 영정을 모신 효정사(孝靖祠)가 1597년 정유재란 때 소실되자, 이색(李穡)의 후손 이산보(李山甫)의 사위 충청도 관찰사 정엽(鄭曄)과 아들 이경탁(李慶倬)이 1610년(광해 2) 고향인 서천군 한산면 고촌리로 건물을 옮겨 다시 지었고, 진수당은 문헌서원이 사액**서원이 되던 1612년에 세웠다.
강당의 현판인 ‘진수당’은 『주역』에 나오는 ‘진덕수업(進德修業)’에서 따온 말이다. 즉, 덕을 쌓고 학업을 닦는다는 뜻이다. ‘진수당’ 현판의 글씨는 동춘당 송준길(宋浚吉)이 썼고, 다시 고쳤다고 한다.
문헌서원은 1871년(고종 8)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문을 닫았으나 1969년에 현재의 묘역 근처로 옮겨 복원하였고, 2007년~2013년까지 서원을 정비하는 과정에서 진수당도 새롭게 건축하였다.
- 제향:‘제사’의 높임말.
- 사액: 임금이 서원 등에 이름을 지어 새긴 편액을 내리던 일.
영문
Jinsudang Lecture Hall
Jinsudang Lecture Hall is the main building of the educational area of Munheonseowon Confucian Academy, which consists of an educational area in the front and a veneration area in the back.
Munheonseowon Confucian Academy was established in 1594 in front of the tomb of the scholar Yi Saek (1328-1396), but it was destroyed shortly thereafter during the Japanese invasions of 1597-1598. In 1610, the academy was rebuilt in Gochon-ri Village by Yi Gyeong-tak (1572-?), an 8th-generation descendant of Yi Saek, and his brother-in-law Jeong Yeop (1563-1625), who was the governor of Chungcheong-do Province. In 1611, the academy was bestowed its name by the royal court, and in 1612, a new lecture hall was built. However, the academy was demolished in 1871 when most shrines and Confucian academies were shut down by a nationwide decree. In 1969, the Confucian academy was rebuilt at the current location. It was renovated between 2007 and 2013, at which time Jinsudang Lecture Hall was newly built.
The name Jinsudang, meaning “Hall of Advancement and Cultivation,” and comes from a passage in the Book of Changes that states “The superior man advances in virtue and cultivates all the sphere of his duty.” The building’s wooden name plaque is said to have been calligraphed by the scholar and civil official Song Jun-gil (1606-1672).
영문 해설 내용
진수당은 문헌서원 강학공간의 중심 건물이다. 문헌서원은 앞쪽의 강학공간과 뒤쪽의 제향공간으로 이루어져 있다.
문헌서원은 1594년 이색(1328-1396)의 묘 앞에 창건되었으나 1597년 정유재란 때 소실되었다. 이후 이색의 8대손인 이경탁(1572-?)과 그의 매부이자 충청도 관찰사인 정엽(1563-1625)이 1610년 고촌리로 옮겨 서원을 다시 지었다. 1611년 사액을 받고, 1612년에 강당을 세웠다. 1871년 서원철폐령으로 철거되었다가, 1969년 현재 위치로 옮겨 서원을 다시 지었다. 2007년부터 2013년까지 서원을 정비하였고, 진수당 건물도 이때 새로 지었다.
진수당이라는 이름은 『주역』에서 따온 말로, “덕을 쌓고 학업을 닦는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정면에 걸린 ‘진수당’ 현판의 글씨는 조선시대의 학자이자 문신인 송준길(1606-1672)이 썼다고 한다.
참고자료
- 『주역』 중 ‘진수당’ 이름 유래와 관련 있는 부분 → https://ctext.org/dictionary.pl?if=en&id=818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