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서 원몽린 묘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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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서 원몽린 묘역
Tomb of Won Mong-rin
대표명칭 죽서 원몽린 묘역
영문명칭 Tomb of Won Mong-rin
한자 竹西 元夢鱗 墓域
주소 경기도 여주시 대신면 상구리 산 11-110
지정(등록) 종목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129호
지정(등록)일 2004년 5월 6일
분류 유적건조물/무덤/무덤/봉토묘
수량/면적 일원
웹사이트 죽서 원몽린 묘역,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원몽린(1648~1674)은 효종의 부마*로 호는 죽서(竹西)이다. 효종 10년(1659) 효종의 다섯째 딸인 숙경공주와 혼인하여 흥평위(興平尉)에 봉해졌다. 여러 차례에 걸쳐 오위도총부도총관*을 지냈으며 시호*는 효헌(孝憲)이다.

묘는 한 기의 봉분으로 부인 숙경공주와 합장묘이다. 봉분은 원형으로 호석을 둘렀고, 주위에는 곡장(曲墻)이라 부르는 담장이 설치되어 있다. 묘 앞에는 묘비, 상석, 향로석이 있고, 좌우에는 망주석과 문인석이 있다.

곡장은 봉분의 좌우측면에만 쌓았으며, 후면은 곡장을 생략하여 석축만 쌓고 뒤쪽에 조성된 묘역으로 이동할 수 있도록 돌계단을 조성한 것이 특징이다. 뒤쪽에 조성된 묘역은 원몽린의 아버지인 원만리(1624~1672)의 묘역이다. 원만리의 묘역에는 곡장을 설치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부마인 원몽린의 묘역을 더 예우를 갖추어 조성하였음을 알 수 있다.

묘역의 아래에는 신도비*가 세워져 있다. 신도비의 비문은 진나라 왕희지의 글자를, 전액*은 당나라 이양빙의 글자를, 비신 뒷면의 추기*는 당나라 유공권의 글자를 모아 새겼다. 여러 명필가의 글자를 모아 새겼기 때문에 금석문*이나 서예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 부마(駙馬) : 임금의 사위
  • 오위도총부도총관(五衛都摠府都摠管) : 오위도총부의 군무를 총괄하던 최고 군직. 오위도총부는 조선시대의 중앙군인 오위를 지휘 감독한 최고 군령기관
  • 시호(諡號) : 왕이나 사대부들이 죽은 뒤에 그 공덕을 찬양하여 추증하는 호
  • 신도비(神道碑) : 왕이나 고관의 무덤 앞 또는 무덤으로 가는 길목에 세워 죽은 이의 사적을 기리는 비석
  • 전액(篆額) : 전서체로 쓴 제목, 머리글자
  • 추기(追記) : 본문에 추가하여 기입함
  • 금석문(金石文) : 동기(銅器)·철기(鐵器)·석비(石碑)·화폐·인장 등에 새겨진 글자

영문

Tomb of Won Mong-rin

Among the two tombs at this cemetery, the tomb located in the front belongs to the civil official Won Mong-rin (1648-1674) and his wife Princess Sukgyeong (1648-1671), the 5th daughter of King Hyojong (r. 1649-1659) of the Joseon dynasty (1392-1910). The tomb located at the back belongs to Won Mong-rin’s father Won Man-ri (1624-1672).

Won Mong-rin served for several consecutive terms as general of the Five Commands, Joseon’s central military organization. While on a trip to China in 1672, Won received the news of his father’s death and returned home. This loss, followed by the death of his grandmother in the following year, took a toll on his health which led to his own death.

The base of the burial mound is surrounded by support stones. The stone sculptures in front of the tomb include a tombstone, a table, and an incense table. To the left and right of the mound are pillars and statues of civil officials. To indicate the important status of the people buried here, namely, a princess and a son-in-law of a king, an enclosure wall was constructed on either side of the burial mound. Behind the tomb are stone stairs by which Won Man-ri’s tomb can be accessed.

At the entrance to the cemetery, there is a stele commemorating Won Mong-rin’s life and achievements. The text engraved on the stele was calligraphed based on the handwriting of several famous Chinese calligraphers and is a valuable resource in the research of epigraphy and calligraphy. The stele’s inscriptions consist of the text on the front, the title text at the top, and the text on the back, which were inscribed, respectively, based on the handwriting of Wang Xizhi (303-361) of the Jin dynasty (266–420) and Li Yangbing (713-741) and Liu Gongquan (778-865) of the Tang dynasty (618-907).

영문 해설 내용

이곳에 있는 2기의 묘 중 앞의 것은 조선시대의 문신인 원몽린(1648-1674)과 부인인 숙경공주(1648-1671)의 합장묘이다. 숙경공주는 조선의 제17대 왕 효종(재위 1649-1659)의 다섯째 딸이다. 뒤의 것은 원몽린의 아버지인 원만리(1624-1672)의 묘이다.

원몽린은 중앙군을 지휘 감독하는 관직을 지냈다. 1672년 사신으로 중국에 가던 길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돌아왔고, 이듬해 할머니까지 돌아가시자 크게 슬퍼하다가 병을 얻어 세상을 떠났다.

원몽린의 묘는 봉분 아래쪽에 보호석을 둘렀다. 앞에는 묘비, 상석, 향로석이 있고, 좌우에는 망주석과 문인석이 있다. 원몽린의 묘 양옆에는 담장을 쌓았는데, 이는 부마와 공주의 묘역에 더 예우를 갖추어 조성한 것이다. 뒤에는 돌계단을 두어 원만리의 묘역으로 이동할 수 있게 하였다.

묘역 입구에는 원몽린의 생애와 업적을 기리는 신도비가 세워져 있다. 이 신도비의 비문은 여러 명필가의 글자를 모아 새겼기 때문에 금석문과 서예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앞면의 비문은 진나라 왕희지(303-361)의 글자를, 상단 중앙의 전액은 당나라 이양빙(713-741)의 글자를, 뒷면의 비문은 당나라 유공권(778-865)의 글자를 모아 새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