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식 묘(산청 조식 유적)
남명 조식 묘 南冥 曺植 墓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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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안내판: 산청 조식 유적 |
해설문
국문
묘소
남명선생 묘소는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유학자 남명 조식(1501-1572)의 묘소로, 조식이 생전에 직접 자리 잡은 곳이라 한다. 묘 앞에 세워져 있는 비석에는 조식의 가장 절친한 벗이었던 대곡 성운의 글이 새겨져 있다.
조식의 묘 아래에는 숙부인 은진 송씨의 묘가 있으며, 정경부인의 묘소는 부인의 고향인 김해 산해정 앞산에 있다.
묘소 아래에는 과거에 세웠던 비석들을 모아 놓았다. 묘소의 왼쪽 공간은 제사 때 제물을 준비하는 장소이고, 오른쪽은 산신제를 지내는 곳이다. 매년 음력 10월 10일 조식의 후손들이 이곳에 모여 묘사를 지낸다.
영문
Historic Site Related to Jo Sik, Sancheong - Tomb of Jo Sik
This historic site is related to Jo Sik (1501-1572), an eminent Confucian scholar of the mid-Joseon period. The complex includes his tomb, tombstone, lecture hall called Sancheonjae, shrine, and a stele which records his life and achievements.
Jo Sik dedicated himself to scholastic activities instead of pursuing official positions. In 1561, he moved to today’s Sancheong area and established Sancheonjae to educate younger scholars.
Before his death, he chose in advance the location of his tomb. The epitaph of his tombstone was composed by Seong Un (1497-1579), a Confucian scholar of the mid-Joseon period and one of Jo Sik’s close friends. Other old, previously-used tombstones are located near the tomb. These tombstones have worn-out inscriptions and bullet marks left during the Korean War (1950-1953).
A ritual is still held in front of the tomb by Jo’s descendants on the tenth day of the tenth lunar month, and a ritual house for preparing the ritual is located to the left of the tomb.
영문 해설 내용
조선 중기의 저명한 유학자 조식(1501-1572)의 유적으로 그의 묘소, 묘비, 산천재, 별묘, 신도비 등이 있다.
조식은 평생 관직에 나가지 않고 학문 연구에 전념하였다. 1561년 지금의 산청 지역으로 거처를 옮기고 산천재를 지어 후학을 양성하였다.
그의 묘소는 생전에 직접 자리를 잡은 곳이라고 한다. 묘비의 비문은 조선 중기의 학자이자 조식의 절친한 벗이었던 성운(1497-1579)이 지었다. 묘소 아래에는 과거에 세웠던 비석들을 모아 놓았으며, 세월이 흘러 글씨가 마모되고 한국전쟁 때 생긴 총알 자국이 남아 있다.
매년 음력 10월 10일 조식의 후손들이 이곳에서 제사를 지낸다. 묘소 왼쪽에는 제사를 준비하는 재실이 있다.
참고
- 해찬솔, “죽어서도 살아있는 분, 남명 조식 선생 묘소를 가다”, 칼 품은 선비, 남명 조식 선생의 자취를 따라서, 네이버 포스트, 2018.1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