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천 청풍 한벽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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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천 청풍 한벽루
Hanbyeongnu Pavilion in Cheongpung, Jecheon
제천 청풍 한벽루,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제천 청풍 한벽루
영문명칭 Hanbyeongnu Pavilion in Cheongpung, Jecheon
한자 堤川 淸風 寒碧樓
주소 충청북도 제천시 청풍면 청풍호로 2048 (읍리)
지정(등록) 종목 보물 제528호
지정(등록)일 1971년 1월 8일
분류 유적건조물/주거생활/조경건축/누정
시대 조선시대
수량/면적 1동
웹사이트 제천 청풍 한벽루,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한벽루는 청풍 관아에 딸린 건물로, 고려 충숙왕 4년(1317)에 청풍현 출신 승려 청공이 왕의 스승인 왕사가 되면서 청풍현이 군으로 올라가자 이를 기념하려고 세운 건물이다. 1972년 8월 대홍수로 건물이 무너지고 현판들도 다 떠내려가서 1975년 원래의 모습으로 다시 지었다. 충주댐을 만들면서 한벽루를 이곳으로 옮겼고, 송시열이 쓴 현판은 사진을 보고 다시 만들었다. 밀양 영남루(보물 제147호), 남원 광한루(보물 제281호)와 함께 본채 옆으로 작은 부속채가 딸려 있는 조선시대 누각 건물의 대표적인 예이다.

조선시대에 문인, 화가들은 남한강변을 따라 유람하며 많은 문학·예술 작품들을 남겼는데, 한벽루의 빼어난 경치를 표현한 「청풍 한벽루」라는 제목의 한시와 그림들이 여러 편 있다.

영문

Hanbyeongnu Pavilion in Cheongpung, Jecheon

This pavilion was first built to commemorate the elevation in status of Cheongpung from a township to a county during the Goryeo period (918-1392). The area's administrative status was raised because a monk from this area, Cheonggong, was appointed to the position of royal preceptor in 1317.

The pavilion collapsed due to a great flood in 1972 and was reconstructed in 1975. In 1985, due to the construction of Chungju Dam, it was relocated to the Cheongpung Cultural Heritage Complex. The pavilion features an extended wing with terraced wooden floors.

The plaque hanging at the front of the building was newly made after the old one was lost in the flood of 1972. The original plaque bore an inscription calligraphed by Song Si-yeol (1607-1689), an eminent Confucian scholar and civil official of the Joseon dynasty (1392-1910).

During the Joseon period, scholar-officials and painters took excursions to the Namhangang River area and produced many literary works and paintings, including poems and paintings that depict the scenic beauty of Hanbyeongnu Pavilion and its surroundings.

영문 해설 내용

이 누각은 1317년 청풍 출신 승려 청공이 왕사가 되면서 그의 고향 청풍현이 군으로 승격된 것을 기념하려고 세운 건물이다. 1972년 대홍수로 건물이 무너진 후, 1975년에 다시 지었다. 1985년 충주댐을 만들면서 현재 위치인 청풍문화재단지로 옮겨졌다.

본채 옆으로 작은 부속채가 딸려 있다. 현판은 원래 조선 중기 문신이자 학자인 송시열(1607~1689)이 썼는데, 홍수 때 유실되어 다시 만들었다.

조선시대에 문인, 화가들은 남한강변을 따라 유람하며 많은 문학·예술 작품들을 남겼는데, 한벽루의 빼어난 경치를 표현한 한시와 그림들이 여러 편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