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창손 묘역 석물
정창손 묘역 석물 Stone Sculptures of the Tomb of Jeong Chang-s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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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정창손 묘역 석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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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명칭 | Stone Sculptures of the Tomb of Jeong Chang-son |
한자 | 鄭昌孫 墓域 石物 |
주소 | 경기도 양평군 양서면 부용리 산37-1번지 |
지정(등록) 종목 | 문화재자료 제85호 |
지정(등록)일 | 1994년 4월 20일 |
분류 | 유적건조물/무덤/무덤/기타 |
수량/면적 | 일괄(7점) |
웹사이트 | "정창손 묘역 석물",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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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국문
묘역은 무덤의 경계를 정한 곳이고, 석물은 무덤 앞에 돌로 만들어 놓은 여러 가지 물건을 말한다. 정창손의 묘는 연산군 때 무덤이 파헤쳐지는 형벌에 처하면서 묘지와 석물이 훼손되었다. 이후 중종 때 죄가 풀려 묘를 새로 꾸몄다. 1970년 서울 방이동에 있던 묘를 옮겨 현재의 위치에 자리 잡았다. 이때 따로 묻혀 있던 부인 청주 정씨와 합장하였다. 묘와 석물은 현대에 다시 만든 것인데, 옛 석물 일부는 옮겨 왔다.
누구의 무덤인지 표시하는 무덤 앞의 묘표는 총 2기가 있다. 위가 둥근 형태의 비석은 정창손의 묘표이고, 연꽃잎을 뒤집어 놓은 형태의 머릿돌을 가진 비석은 부인의 것이다. 15~16세기에 만들어진 묘표의 전형적인 양식이다. 문인석은 2쌍이 있는데 돌 표면이 닳은 정도 등으로 볼 때, 아랫단에 있는 문인석이 더 오래된 것으로 보인다.
인물의 업적과 생애를 기록한 신도비는 묘역 아래 입구에 있다. 원래의 신도비는 성종 19년(1488)에 서거정이 글을 지어 세웠으나 연산군 때 파손되었다. 그 후 외손 이원익이 앞장서서 인조 1년(1623)에 다시 만들었다.
정창손은 조선 초기의 문신으로 세종 때 「고려사」, 「세종실록」등 주요 국가 책의 편찬에 참여하였다. 세조가 단종을 몰아내고 왕이 되었을 때 도움을 주어 공신이 되었다. 이후 여러 차례 영의정을 지냈다. 정창손이 죽은 이후, 연산군 10년(1504) 갑자사화 때 연산군의 어머니 윤씨를 왕비의 자리에서 쫓아내는 일에 참여하였다는 이유로 시체를 베는 형벌에 처해졌다. 중종 1년(1506)에 억울함을 벗고 명예를 되찾았다.
영문
Stone Sculptures of the Tomb of Jeong Chang-son
This is the tomb of Jeong Chang-son (1402-1487), a civil official of the Joseon period. His wife, Lady Jeong, is also buried in the same tomb mound.
Jeong passed the state examination in 1426 and served various official posts. He participated in the compilation of national historical records such as The History of Goryeo (Goryeosa) and The Annals of King Sejong (Sejong sillok). In 1455, he was bestowed the title of meritorious subject for assisting King Sejo (r. 1455-1468) in usurping the throne from his nephew King Danjong (r. 1452-1455). In 1504, however, he was posthumously implicated in a literati purge, and his corpse was unearthed and beheaded. In 1506, he was cleared of his charges, and his tomb was rebuilt.
Jeong's tomb was originally located in Bangi-dong, Seoul and was moved to the current location in 1970. His wife was originally buried in a different mound, but was interred with her husband in a single mound upon the relocation of his tomb. Among the various stone sculptures around the tomb, some were newly made, and some were relocated from the original tomb site, namely the two tombstones, two pairs of stone statues, a stele, and a stone sheep statue. The tombstone with a simple curved top is for Jeong, and the one with an upside-down lotus-shaped top is for his wife.
The stele stands at the entrance of the tomb site. The original stele, erected in 1488, was destroyed in the Literati Purge of 1504. The current one was erected in 1623 by Yi Won-ik (1547-1634), a grandson of Jeong Chang-son, when he was a chief state councilor.
영문 해설 내용
이 묘는 조선 시대의 문신 정창손(1402-1487)의 묘이다. 그의 부인인 정씨가 합장되어 있다.
정창손은 1426년 과거에 급제한 후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으며, 「고려사」, 「세종실록」 등 주요 국사 편찬에 참여하였다. 1455년에는 세조가 단종을 몰아내고 왕위에 오르는 데 도움을 주어 공신이 되었다. 그가 죽은 뒤인 1504년 사화에 연루되어 무덤을 파내 시체를 베는 형벌에 처해졌다. 1506년 신원되어 묘를 새로 꾸미고 석물을 다시 세웠다.
원래 묘는 서울 방이동에 있었으나 1970년에 현재의 위치로 옮기면서 따로 묻혀 있던 부인 청주 정씨와 합장하였다. 묘표 2기, 문인석 2쌍, 신도비 1기, 석양 1기는 원래의 묘역에 있던 것을 옮겨온 것이다. 위가 둥근 형태의 비석은 정창손의 묘표이고, 연꽃잎을 뒤집어 놓은 형태의 머릿돌을 가진 비석은 부인의 것이다.
신도비는 묘역 아래 입구에 있다. 1488년에 세웠던 원래의 신도비는 1504년 사화 때 파손되었고, 현재 남아있는 신도비는 외손 이원익(1547-1634)이 영의정이던 1623년에 새로 세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