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원(원불교 익산성지)
정신원 淨信院 Jeongsinwon Hal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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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안내판: 원불교 익산성지 |
해설문
국문
정신원은 ‘한국 고아의 어머니’로 불리는 황온순(黃溫順)이 1941년에 지은 개인 살림집이었다. 그런데 한국전쟁의 발발과 함께 전쟁고아들을 수용하면서 보육 및 탁아시설로 활용되었다. 1946년 원광대학교의 전신인 유일학림에서 사무실로 사용하다가 1948년 원불교 익산지부가 설립되면서 임시교당으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정신원은 ‘ㄱ’자형 본채와 부속 건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일본식 주택의 영향을 받은 개량 한옥이다. 주로 일본식 목조 구조이며 부분적으로 전통적 기법을 수용하였다. 외관에는 유리 미서기와 창호, 시멘트기와, 처마 끝 함석 차양 등을 설치하여 근대 주택의 모습을 보인다.
- 익산문화대전과 기존 문안에는 1941년 건축으로 되어 있으나 원불교 소개 페이지에는 1943년으로 되어 있어 확인 필요함.
영문
Jeongsinwon Hall (Iksan Sanctuary of Won-Buddhism)
Jeongsinwon Hall, built in 1941, was the house of Hwang On-sun, a believer in Won-Buddhism. Hwang On-sun operated an orphanage for around 60 years, attended to more than 900 orphans, and became known as the “Mother of Korean Orphans.”
Hwang On-sun donated this house to the order, and from 1946, it was used as the office of Yuil Academy (today’s Wonkwang University). From 1948, it was used as a temporary worship hall of the Iksan Branch of Won-Buddhism. During the Korean War (1950-1953), it was used as a daycare and nursery facility for war orphans.
The complex consists of a main quarters and several auxiliary buildings. It features modern architectural features such as horizontal sliding gates, windows and doors made of glass, cement roof tiles, and tin awnings on the corners, which were commonly used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1910-1945).
영문 해설 내용
정신원은 원래 원불교의 교역자 황온순(1903-2004)이 살던 집으로 1941년에 지어졌다. 황온순은 60여 년간 보육원을 운영하면서 900명 이상의 고아를 돌봐, ‘한국 고아의 어머니’로 불린다.
황온순이 이 집을 교단에 기증한 이후, 1946년에는 원광대학교의 전신인 유일학림의 사무실로 이용되었고, 1948년에는 원불교 익산지부의 임시 교당으로 사용되었다. 한국전쟁 때에는 전쟁 고아들을 수용하는 보육 및 탁아시설로 활용되기도 하였다.
정신원은 본채와 부속 건물로 이루어져 있으며, 유리로 된 미서기 문과 창호, 시멘트 기와, 처마 끝의 함석 차양 등 일제강점기 근대 주택의 요소를 반영하고 있다.
참고자료
- 원불교 익산성지, 디지털익산문화대전 http://iksan.grandculture.net/iksan/toc/GC07500482 -> 정신원은 본래 팔타원 황정신행의 집으로 1941년 지어졌으며, 희사받아 1948년 익산교당 창립 시 교당으로 사용되었다.
- 교보 제03호 익산성지 정신원, 원불교 소개 https://guide.won.or.kr/pages/sungji/iksan/14 -> 정신원은 원기 26년 팔타원 황정신행이 중앙총부 구내에 있던 추산 서중안 대호법의 집터에 지은 사가입니다. 원기 28년(1943) 조갑종이 다른 곳으로 이사를 하자 팔타원 황정신행 종사가 아들 강필국의 수양을 위해 초가를 헐고 목조와즙 「ᄀ」자 곡두형 집을 건축하여 한때 사용하다가 총부에 희사 했습니다. 외관은 유리 미서기문과 창호, 시멘트기와, 처마 끝의 함 석차양을 한 근대주택입니다. 원기 31년 중앙총부에서 유일학림이 개원되자 학림장과 학감의 사무실로 사용되었으며, 원기 33년 익산교당이 중앙총부에서 독립해 나가기 전 임시 교당으 로 사용되었습니다. 원기 45년 4월부터는 교서편수기관인 「정화사(正化社)」사무실로 사용되었으며, 원기 81년에는 정산 종사 탄생 백주년 기념사업회 사무실로도 사용되었습니다. 건물명의 팔타원 황정신행의 이름 가운데 ‘정신(淨信)’에서 유래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