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부 전주원씨 정려각
절부전주원씨정려각 Commemorative Pavilion of Lady Won for Her Matrimonial Devoti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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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절부전주원씨정려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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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명칭 | Commemorative Pavilion of Lady Won for Her Matrimonial Devotion |
한자 | 節婦全州元氏旌閭閣 |
주소 | 전라북도 장수군 산서면 월평길 7 |
지정(등록) 종목 | 장수군 향토문화재 유형 제16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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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국문
전주원씨는 조선 중기 유학자인 박이항의 처로 1598년(선조 31)에 명정(命旌, 나라에서 착한 행실을 세상에 드러내 널리 알리라고 명하는 것)을 받았다. 중수기에는 1710년(숙종 36)에 정문을 중수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현재의 건물은 1993년에 다시 지은 것으로 건축적 가치는 떨어진다. 그러나 명정연대가 비교적 빠른 편이고, 중수 기록도 잘 남아 있어 역사적 가치가 높다.
영문
Commemorative Pavilion of Lady Won for Her Matrimonial Devotion
This commemorative pavilion was built to honor Lady Won (?-1597), the wife of a Confucian scholar, Bak I-hang (1555-1608).
During the Japanese invasion of 1597, as Lady Won and her child were hiding from the Japanese soldiers, the child’s crying revealed their location and Lady Won was killed trying to protect her child. In 1598, a commemorative plaque was made to honor her matrimonial devotion. It is unknown when the pavilion was first constructed, but the current pavilion was rebuilt in 1993. Inside the pavilion, there is a stele bearing an epitaph for Lady Won’s child.
영문 해설 내용
이 정려각은 조선 중기의 유학자인 박이항(1555-1608)의 아내 원씨(?-1597)를 기리기 위해 세워졌다.
원씨는 정유재란 때 피난하던 중 왜적을 피해 숨어있다가 아기의 울음소리 때문에 들켜 죽임을 당했다. 그녀의 절개를 기려 1598년 정려가 내려졌다. 정려각이 언제 처음 지어졌는지는 알려지지 않았고, 현재의 정려각은 1993년에 지은 것이다. 정려각 안에는 아기를 애도하는 추모비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