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흥 신북 구석기유적
장흥신북구석기유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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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장흥신북구석기유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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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長興 新北 舊石器遺蹟 |
주소 | 전라남도 장흥군 장동면 북교리 신북마을 일원(9-19번지 외) |
지정(등록) 종목 | 전라남도 기념물 제238호 |
지정(등록)일 | 2008년 4월 11일 |
분류 | 유적건조물/유물산포지유적산포지/육상유물산포지/선사유물 |
시대 | 석기시대 |
수량/면적 | 일원70,586㎡(34필지) |
웹사이트 | 장흥 신북 구석기유적,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목차
해설문
기존 국문
신북유적은 2만2천년전 무렵 보성강유역에서 살았던 후기구석기인들의 살림터이다. 2003~2004년애 조선대학교 박물관의 조사 결과 유적의 규모가 최소 4만여 평으로 한국에서 조사된 후기구석기 유적 중 가장 크며, 발굴된 6천여 평에서 3만천여 점의 유물이 나왔고, 4개의 화덕자리가 드러나서 큰 무리의 구석기인들이 살았던 보금자리로 밝혀졌다.
유물은 서로 붙은 몸돌과 격지를 비롯하여 좀돌날몸돌, 슴베찌르개, 창끝찌르개, 새기개, 밀개, 긁개, 칼 등 좀돌날석기 단계의 뗀(타제)석기들이 주류를 이루는데, 새기개와 밀개가 다양하다. 이와 함께 간돌자귀, 숫돌, 갈돌, 갈린 판석과 자갈, 둥근 홈석기 등이 나왔다. 이를 통해 구석기인들이 돌, 나무, 뿔과 뼈 등으로 연장을 만들고, 사냥한 짐승과 모아온 식량을 가공하고, 불을 이용하여 살았음을 떠올릴 수 있다.
특히 여기서 백두산과 큐수산 흑요석으로 만든 석기가 발견되어 신북유적은 한일 양 지역의 중요한 교류 중심지로 추정된다. 또한 후기구석기인들이 간(마제)석기를 만들어 쓴 사실을 뚜렷하게 알려주어 동북아시아의 후기구석기문화를 새롭게 바라보는 계기가 된 귀중한 문화유산이다.
수정 국문
초고
이곳은 2002년 5월에 발견된 장흥군 북교리 신북마을의 구석기 유적지이다. 신북 구석기유적의 규모는 13만여㎡로 우리나라 후기구석기 유적 중에 가장 큰 규모이다. 해발 165~190m의 검은둥이 언덕 북쪽에 있으며, 방사성탄소연대 측정결과 유적의 연대는 약 2만 년 전으로 후기구석기의 후반에 해당한다.
유적에서 화덕자리와 좀돌날몸돌, 새기개, 밀개, 슴베찌르개, 창끝찌르개와 같은 뗀석기(타제석기), 간돌자귀와 국부마제석부 등의 간석기(마제석기)가 출토되었다. 이는 ‘타제석기는 구석기 유물’, ‘마제석기는 신석기 유물’이라는 도식과 다른 결과이다. 또한 이곳에서 출토된 흑요석의 성분을 분석한 결과, 백두산과 일본 큐슈가 원산지로 추정되어 후기구석기인들의 원거리교류에 중요한 근거가 되었다.
1차 수정
장흥신북구석기유적은 약 2만 2천 년 전에 이곳에 살았던 후기 구석기인들의 살림터이다.
이 유적은 2002년 5월 도로공사 도중에 처음 발견되었으며, 이후 2003년부터 2004년까지 7개월 간의 발굴조사를 통해 약 18,000여 ㎡ 면적의 유적에서 3만여 점의 유물이 발견되었다. 전체 유적의 규모는 30,000여 ㎡로 우리나라 후기 구석기유적 중 가장 큰 규모이다.
유적에서는 화덕자리 6개 이상 발견되었고, 출토된 유물은 좀돌날몸돌, 새기개, 밀개, 슴베찌르개, 창끝찌르개와 같은 뗀석기가 주류를 이룬다. 뿐만 아니라 소량이기는 하지만 간돌자귀, 간돌도끼 등의 간석기가 출토되어, ‘뗀석기는 구석기 유물’이고 ‘간석기는 신석기 유물’이라는 기존의 고정관념과는 다른 양상을 보인다.
또한 이곳에서 출토된 흑요석의 성분을 분석한 결과 백두산과 일본 큐슈가 원산지로 추정되어, 이 지역 후기구석기인들이 일본 열도와 교류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자문의견
- 분야별 자문위원 1
- 또한 이곳에서 출토된 흑요석의 성분을 분석한 결과 백두산과 일본 큐슈가 원산지로 추정되어, 이 지역 후기구석기인들이 일본 열도와 교류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 또한 이곳에서 출토된 흑요석의 성분을 분석한 결과 백두산과 일본 큐슈가 원산지로 추정되어, 이 지역 후기구석기인들이 빙하기로 해수면이 낮아져 한반도와 이어진 일본 열도와 교류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 분야별 자문위원 2
- 장흥 신북 구석기 유적은 약 2만 2천 년 전 이곳에 살았던 후기 구석기인들의 살림터이다. 이 유적은 2002년 5월 도로공사 도중에 발견되었다. 2003년부터 2004년까지 7개월간의 발굴 조사를 통해 유적의 규모가 30,000㎥로 확인되어 우리나라 후기 구석기유적 중 가장 큰 규모 이다. 약 18,000여 ㎡ 면적에서 화덕자리 6개소, 석기 제작 터와 함께 3만여 점의 유물이 출토 되었다.
- 출토된 유물은 좀돌날몸돌, 새기개, 밀개, 슴베찌르개, 창끝찌르개와 같은 뗀석기가 주류를 이룬다. 뿐만 아니라 소량이기는 하지만 간돌자귀, 간돌도끼 등이 출토되어, 구석기시대 후기부터 간석기가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다.
2차 수정
장흥신북구석기유적은 약 2만 2천 년 전에 이곳에 살았던 후기 구석기인들의 살림터로, 우리나라 후기 구석기유적 중 가장 큰 규모(약 30,000여 ㎡)이다.
2002년 5월 도로공사 도중에 처음 발견되었으며, 이후 2003년부터 2004년까지 7개월 동안 약 18,000여 ㎡ 면적의 발굴조사를 통해 6개 이상의 화덕자리와 3만여 점의 유물이 발견되었다.
출토된 유물은 좀돌날몸돌, 새기개, 밀개, 슴베찌르개, 창끝찌르개와 같은 뗀석기가 주류를 이룬다. 소량이기는 하지만 간돌자귀, 간돌도끼 등의 간석기도 출토되어, ‘뗀석기는 구석기 유물’이고 ‘간석기는 신석기 유물’이라는 기존의 고정관념과는 다른 양상을 보인다.
또한 이곳에서 출토된 흑요석의 성분을 분석한 결과 백두산과 일본 큐슈가 원산지로 추정되어, 이 지역 후기구석기인들이 일본 열도와 교류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문맥요소
Nodes
Links
참고자료
- 이기길, 「장흥 신북 후기구석기유적 발굴조사 개보」, 2003, 43쪽. -> 2002년 5월 발견
- 이기길, 「장흥 신북유적의 흑요석기에 대하여」, 2003, 51쪽. -> 유적지 규모, 흑요석
- 이기길, 「장흥 신북 후기구석기유적 발굴조사 개보」, 2003, 43쪽. -> 해발 165~190m ‘검은둥이’ 언덕 / 2만 년 전, 후기구석기 후반, 출토유물.
- 박성탄, 「장흥 신북구석기유적」, 2015. -> 화덕자리
- 장흥신북구석기유적,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ccbaCpno=233360238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