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사진 의병장 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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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사진 의병장 유적
Historic Site Related to Jang Sa-jin
장사진 의병장 유적,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장사진 의병장 유적
영문명칭 Historic Site Related to Jang Sa-jin
한자 張士珍 義兵將 遺蹟
주소 경상북도 군위군 효령면 병수리 (故里碑), 오천리(忠烈祠)
지정(등록) 종목 경상북도 기념물 제122호
지정(등록)일 1997년 3월 17일
분류 유적건조물/인물사건/역사사건/역사사건
수량/면적 839㎡
웹사이트 장사진 의병장 유적,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임진왜란 당시 경상도의 대표적 의병장이었던 장사진의 충성스런 절개를 기리기 위해 세운 사당인 오천리의 충렬사와 병수리에 기념비로 세운 고리비를 함께 묶어 문화재로 지정하였다.

장사진은 임진왜란을 맞아 100여 명의 의병을 거느리고 군위, 인동 지역의 왜적을 공격하여 큰 성과를 거두었다. 1592년 9월에 왜적과 싸우다가 적병이 휘두르는 칼에 한쪽 팔이 잘렸으나 굴하지 않고 외팔로 싸우다가 전사하였다. 난이 끝난 후 장사진의 공을 인정하여 ‘절충장군 수군절도사’*의 벼슬을 내렸다. 제사를 지내는 사당인 충렬사는 언제 세웠는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고종 5년(1868) 서원 철폐령으로 철거되었다. 1889년 충렬사 뒤편에 제단을 만들고 초가삼간을 지었다. 1937년에 군위군의 유림들이 옛 제단 터에 고쳐 지었으며 매년 한식일에 제사를 지냈다.

고리비는 영조 29년(1753)에 군위 현감 남태보가 장사진의 충절을 기념하기 위해 세웠다. 높이 110㎝, 폭 88㎝의 화강암으로 된 고리비 앞면에는 ‘국순 증 수사 장사진 고리(國殉 贈 水使 張士珍 故里)’, 뒷면에는 그의 행적이 새겨 있다.


  • 수군절도사(水軍節度使): 조선 시대에, 각 도의 수군을 통솔하는 일을 맡아보던 정삼품 외직 무관 벼슬. 세조 12년(1466)에 수군도안무처치사를 고친 것으로, 모두 당상관이었다.

영문

Historic Site Related to Jang Sa-jin

This historic site commemorates Jang Sa-jin (?-1592), a civilian army commander during the Japanese invasion of 1592-1593. It includes Chungnyeolsa Shrine in Ocheon-ri Village and a commemorative stele in Byeongsu-ri Village.

Jang is said to have had a strong sense of justice and self-sacrifice since a young age and could not stand aside when others were mistreated. When Japan invaded Korea in spring 1592, Jang, who was a student at the local Confucian school at the time, gathered a civilian army of over 100 men and successfully fought the Japanese army in the Gunwi and Indong area. During a battle in autumn that year, even though one of his arms had been cut off by a sword, he continued fighting to his death. After the war, the royal court acknowledged Jang’s merits and bestowed him with the posthumous post of navy commander.

It is unknown when Chungnyeolsa Shrine was first established. In 1868, it was demolished when most shrines and Confucian academies were shut down by a nationwide decree. In 1889, an altar and a thatched roof house were built at the back of the shrine site. It is said that in 1937, a local Confucian community reconstructed the shrine. A commemorative ritual is performed here annually on April 5th or 6th.

The commemorative stele was erected in 1753 by Nam Tae-bo, who was the magistrate of Gunwi at the time. It is made of granite and measures 110 cm in height and 88 cm in width. The front of the stele bears an inscription that says, “The Village Where the Posthumously Awarded Navy Commander Jang Sa-jin Lived.” The inscription on the back describes his life and achievements.

영문 해설 내용

임진왜란 당시 경상도의 의병장이었던 장사진(?-1592)을 기리는 유적으로, 오천리에 세운 사당인 충렬사와 병수리에 세운 기념비로 이루어져 있다.

장사진은 어려서부터 의협심이 강하고 불의를 보면 참지 못했다고 한다. 군위향교의 학생으로 공부하던 중 1592년 5월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100여 명의 의병을 거느리고 군위와 인동 지역의 왜군들을 공격하여 큰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그해 가을 적병이 휘두르는 칼에 한쪽 팔이 잘렸으나 굴하지 않고 외팔로 싸우다가 전사하였다. 전쟁이 끝난 후 조정에서는 장사진의 공을 인정하여 수군절도사의 벼슬을 내렸다.

충렬사는 언제 처음 세워졌는지는 알 수 없다. 1868년 서원철폐령으로 철거되었는데, 1889년 원래의 건물 뒤편에 제단을 만들고 초가 건물을 세웠다. 지금의 건물은 1937년에 지역 유림들이 다시 세웠다고 하며, 매년 한식 때 제사를 지낸다.

기념비는 1753년에 당시 군위 현감이었던 남태보가 장사진의 충절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것이다. 높이 110㎝, 폭 88㎝의 화강암으로, 앞면에는 "사후 수군절도사로 추증된 장사진이 살던 마을"이라고 새겨져 있고, 뒷면에는 그의 행적이 새겨져 있다.

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