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 척화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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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 척화비
Anti-appeasement Stele, Janggi-myeon
장기 척화비,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장기 척화비
영문명칭 Anti-appeasement Stele, Janggi-myeon
한자 長鬐 斥和碑
주소 경상북도 포항시 남구 장기면 읍내리 107번지
지정(등록) 종목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24호
지정(등록)일 1990년 8월 7일
분류 기록유산/서각류/금석각류/비
시대 조선시대
수량/면적 1기
웹사이트 장기 척화비,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척화비는 1866년 프랑스군이 강화도를 침략한 병인양요와 1871년 미국이 침략한 신미양요가 발생한 후 흥선대원군이 주도하여 전국 곳곳에 세운 비석이다. 척화비에는 서양 세력을 배척하고 그 침입에 대비하여 끝까지 싸우겠다는 문구를 새겨 외세 침략을 경계하고자 했다.

포항시에는 현재까지 두 기의 척화비가 확인되며, 각각 남구 장기면과 북구 흥해읍에 소재한다.

이 가운데 장기면 행정복지센터 내에 있는 장기척화비는 일제의 수모를 겪은 아픔이 서려 있다. 당시 장기면사무소 직원 분들의 증언에 의하면, 원래 위치는 장기읍성 내부였으나,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일본경찰주재소 댓돌 밑에 파묻혀 수십 년 간 방치되어 있었다고 한다. 이후 1951년 4월 초 장기파출소 신축 공사 도중 발견되어 장기면사무소로 옮겨지면서 현재까지 관리하고 있다.

양이침범 洋夷侵犯 서양 오랑캐가 침범하매
비전즉화 非戰則和 싸우지 않음은 곧 화친을 주장하는 것이요
주화매국 主和賣國 화친을 주장함은 곧 나라를 파는 것이다.

계아만년자손 戒我萬年子孫 우리 자손 만대에 훈계하노라
병인작 丙寅作 병인년(1866)에 만들고
신미립 辛未立 신미년(1871)에 세우다.

영문

Anti-appeasement Stele, Janggi-myeon

This is one of many anti-appeasement steles erected nationwide in 1871.

Following devastating armed conflicts on Korean soil with France in 1866 and the United States in 1871, Heungseon Daewongun (1820-1898), the prince regent during the early period of King Gojong’s reign (r. 1863-1907), ordered these steles be erected to warn people against opening Korea to Western powers. After King Gojong took control of state affairs, Korea opened itself to foreign exchange, and most of the steles were taken down. Over 20 of them have survived to this day and were designated as cultural heritages.

Two anti-appeasement steles remain in the Pohang area, namely this stele in Janggi-myeon, Nam-gu, and another stele in Heunghae-eup, Buk-gu. It is said that this stele was originally located inside Janggieupseong Walled Town but was removed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1910-1945). In 1951, after several decades of neglect, it was discovered during the construction of the new Janggi Police Station and moved to its current location inside the Administration and Welfare Center of Janggi-myeon Township.

The inscription on the stele reads:

The Western barbarians have invaded. To not fight is to advocate peace. To advocate peace is to sell out the country.

Let this be a warning to our offspring for the next ten-thousand years.

Produced in the byeongin year (1866). Installed in the sinmi year (1871).

영문 해설 내용

이 비석은 조선시대인 1871년 전국에 세워졌던 여러 척화비 중 하나이다.

1866년 병인양요와 1871년 신미양요 등을 치른 뒤, 조선 고종(재위 1863-1907)의 친부이자 당시 실권자였던 흥선대원군(1820-1898)은 서양 제국주의 세력의 침략을 경계하고자 전국에 척화비를 세울 것을 명하였다. 이러한 척화비는 고종이 친정을 하게 된 후, 조선이 문호를 열게 되면서 대부분 철거되었다. 현재 전국에 남아 있는 20여 기의 척화비가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포항에는 현재 2기의 척화비가 남아있으며, 각각 남구 장기면과 북구 흥해읍에 있다. 이 척화비는 원래 장기읍성 내부에 있었으나,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원래의 위치에서 옮겨졌다고 한다. 이후 수십년간 방치되어 있다가 1951년 장기파출소 신축 공사 도중 발견되어 현재 위치인 장기면 행정복지센터 경내로 옮겨졌다.

비석에 새겨진 문구는 아래와 같다.

양이침범 洋夷侵犯 서양 오랑캐가 침범하매
비전즉화 非戰則和 싸우지 않음은 곧 화친을 주장하는 것이요
주화매국 主和賣國 화친을 주장함은 곧 나라를 파는 것이다.

계아만년자손 戒我萬年子孫 우리 자손 만대에 훈계하노라
병인작 丙寅作 병인년(1866)에 만들고
신미립 辛未立 신미년(1871)에 세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