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웅치 전적

HeritageWiki
이동: 둘러보기, 검색
임진왜란 웅치 전적
Ungchi Battlefield (Japanese Invasion of 1592)
대표명칭 임진왜란 웅치 전적
영문명칭 Ungchi Battlefield (Japanese Invasion of 1592)
한자 壬辰倭亂 熊峙 戰蹟
주소 전라북도 완주군 소양면 신촌리 산 51 , 진안군 부귀면 세동리 산289 일원
지정(등록) 종목 사적
지정(등록)일 2022년 12월 30일
분류 유적건조물 / 정치국방 / 전적지 / 임란전적지
시대 조선시대
수량/면적 11필지, 232,329㎡
웹사이트 임진왜란 웅치 전적, 국가유산포털, 국가유산청.



해설문

국문

2024(완주)

임진왜란 웅치 전적은 임진왜란 초기(1592년 음력 7월) 조선을 침략한 왜군에 맞서 관군과 의병이 힘을 모아 호남을 지켜낸 웅치전투가 일어난 장소이다. 초기 열세에도 불구하고 결국 승리하게 되는 국난 극복의 역사 현장으로 인정받아 2022년 12월 국가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웅치는 완주와 진안 경계 일원의 지명으로 전주와 호남 동부를 연결하는 주요 교통로였다. 웅치전투는 전주성을 점령하기 위해 공격해 오는 왜군을 막아서며 치열하게 전개되었다. 왜군은 고개를 넘어 전주 부근(現 전주시 산정동 일원)까지 진출하였으나 전투 과정에서 입은 막대한 피해와 조선군의 반격으로 결국 후퇴하게 된다. 이는 전주를 점령하여 호남을 장악하고자 했던 왜군의 전략을 무력화했다는 점에서 국난 극복의 전투로서 의미를 지닌다.

특히 웅치전투에 참여했던 관군과 의병은 이후 경기도와 경상도로 진출하여 여러 전투에서 활약하였으며, 호남지역은 전쟁에 필요한 각종 물자를 조달하는 등 임진왜란 극복에 중추적인 역할을 하였다.

문화유산 지정 구역은 문헌 기록* 및 지명유래 등을 통해 주요 전투가 벌어졌던 ‘웅치길-웅치고개-건지봉’으로 설정되었다.


  • 난중잡록, 징비록, 진안지, 사천김씨세보, 최학부 묘비문 등

2024(진안)

임진왜란 웅치 전적은 당시 조선군이 왜군과 전투를 벌였던 진안군 부귀면 세동리 일원과 완주군 소양면 신촌리 일원을 말한다. 음력 1592년 4월 13일 조선에 침략한 왜군은 6월 말경 전라도를 제외한 조선의 거의 모든 지역을 점령하였다. 하지만 선조가 왜군을 피해 북쪽으로 거처를 옮기고, 이순신의 활약으로 바닷길이 막혀 전쟁이 길어질 조짐이 보이자 왜군은 전라도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1592년 7월 8일 새벽, 왜장 코바야카와 타카카게가 이끄는 왜군이 전주로 진출하기 위해 웅치를 공격해 왔다. 김제군수 정담, 나주판관 이복남, 의병장 황박이 이끄는 조선군은 진안 세동리부터 완주 신촌리까지 방어선을 구축하고 왜군과 혈전을 벌였다. 결사적으로 맞섰지만, 왜군의 지속적인 공격에 조선군의 1차·2차 방어선이 무너지고 최후 방어선인 웅치 정상부에서 정담을 비롯한 많은 군사가 장렬히 전사하였다.

『선조수정실록』, 『징비록』 등 여러 사료에 따르면, 당시 전투가 끝나고 왜군들은 조선군의 충성심과 용맹함에 감탄하여 조선군의 시신을 묻고 추모하는 뜻을 담아 ‘조조선국충간의담(弔朝鮮國忠肝義膽)’이라고 쓴 푯말을 세웠다고 한다. 이후 7월 9일 웅치를 넘은 왜군은 안덕원 근처까지 진출했지만, 웅치 전투에서의 심각한 전력 손실로 인해 안덕원 전투에서 황진에게 패배하였다. 또 전주부성 이정란 장군의 필사적인 방어 태세 등에 전의를 잃고 7월 10일 진안으로 철수함으로써 전주부성 점령에 실패하였다.

이후 웅치 전적지 일원에서 활약한 조선군이 이치 전투에도 참전하여 승리하면서 왜군의 전라도 점령 의욕은 완전히 꺾였다. 결국 웅치·이치 전투가 있었기에 왜군의 호남 진출을 막을 수 있었고, 이는 임진왜란에서 조선군이 승기를 잡는 요인이 되었다.

영문

Ungchi Battlefield (Japanese Invasion of 1592)

2024(완주)

This site is the venue of the Battle of Ungchi Pass, in which outnumbered government troops and civilian armies fought together to successfully protect the Jeolla-do region against Japanese invaders in the 7th lunar month of 1592. It was designated as a Historic Site in 2022 in recognition of its historic value.

Ungchi Pass is located along a main transportation route between Wanju and Jinan that links Jeonju with the eastern part of Jeolla-do Province. When the Japanese invaded Korea in the 4th lunar month of 1592, they decided to attack Jeolla-do Province in order to secure food supplies in case the war was prolonged. The Japanese took Jeonjuseong Fortress through Ungchi Pass and advanced over the hill to the area of Sanjeong-dong in today’s Jeonju. However, a fierce battle was initiated through a counterattack by the Korean army, and the Japanese, who experienced enormous damage during the battle, eventually retreated.

Through Korea’s victory at Ungchi Pass, Japan’s strategic tactic to seize the Jeolla-do region was neutralized. The Korean government troops and civilian armies involved in the battle went on to fight in several more battles, advancing towards Gyeonggi-do and Gyeongsang-do Provinces, and the Jeolla-do region was able to continue providing the commodities needed for war, thus playing a pivotal role in overcoming the invasions.

2024(진안)

This site is the venue of the Battle of Ungchi Pass, in which government troops and civilian armies fought together to protect the Jeolla-do region against Japanese invaders on the 8th day of the 7th lunar month of 1592. The battlefield spans the areas of today’s Sedong-ri in Jinan and Sinchon-ri in Wanju.

The Japanese invasions of Korea began in the 4th lunar month of 1592. Within two months, the Japanese had taken almost all of the peninsula apart from Jeolla-do Province. However, after Admiral Yi Sun-sin’s successful blockade of the sea routes, the Japanese looked to the Jeolla-do region, considered Korea’s “bread basket,” to secure inland food supplies for a prolonged war.

During their westward advance along the main road to the provincial capital, Jeonju, the Japanese troops, led by general Kobayakawa Takakage, attacked Ungchi Pass. Despite fighting desperately to protect the summit, the Korean troops lost many lives and the Japanese were able to advance. Moved by the resolve of the Korean army, the Japanese troops are said to have gathered and buried the bodies of the fallen Korean soldiers out of respect and erected a plaque commemorating their loyalty and righteousness. However, the next day, the advancing Japanese troops were met by a fierce counterattack from the Koreans in the area of today’s Sanjeong-dong in Jeonju. Having suffered great damage during the Battle of Ungchi Pass, the Japanese were defeated.

This victory by the Koreans neutralized Japan’s strategic tactic to seize the Jeolla-do region. The government troops and civilian armies involved in the battle went on to fight in several more battles, advancing towards Gyeonggi-do and Gyeongsang-do Provinces, and the Jeolla-do region was able to continue providing the commodities needed for war, thus playing a pivotal role in overcoming the invasions.

영문 해설 내용

2024(완주)

이곳은 1592년 음력 7월 조선의 관군과 의병이 왜군에 맞서 전라도 지역을 지켜낸 웅치전투가 일어난 곳이다.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2022년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웅치는 완주와 진안 사이에 있는 고갯길로 전주와 전라도 동부 지역을 연결하는 주요 교통로였다. 1592년 음력 4월 조선을 침략한 왜군은 전쟁이 장기화할 가능성에 대비해 식량을 확보하고자 전라도를 공격하기로 하였다. 왜군은 웅치를 통해 전주성을 점령하려 하였으며, 고개를 넘어 지금의 전주시 산정동 일원까지 진출하였다. 그러나 조선군의 반격으로 치열한 전투가 전개되었고, 왜군은 전투 과정에서 막대한 피해를 입으며 결국 후퇴하였다.

웅치전투에서의 승리는 전라도 지역을 장악하고자 했던 왜군의 전략을 무력화했다. 웅치전투에 참여했던 관군과 의병은 이후 경기도와 경상도로 진출하여 여러 전투에서 활약하였으며, 전라도 지역은 전쟁에 필요한 각종 물자를 조달하는 등 임진왜란 극복에 중추적인 역할을 하였다.

2024(진안)

이곳은 1592년 음력 7월 8일, 관군과 의병이 힘을 합쳐 일본군의 침략에 맞서 전라도 지역을 지키기 위해 전투를 벌인 웅치전투의 현장이다. 전장은 현재의 진안 세동리와 완주 신촌리 일대에 걸쳐 있다.

음력 1592년 4월 조선에 침략한 왜군은 두달 만에 전라도를 제외한 조선의 거의 모든 지역을 점령하였다. 그러나 이순신 장군의 활약으로 바닷길이 막혀 전쟁이 길어질 조짐이 보이자, 왜군은 조선의 주요 곡창지인 전라도에서 식량을 확보하려 했다.

코바야카와 타카카게 장군이 이끄는 왜군은 전주로 향하는 주요 도로를 따라 서쪽으로 진격하기 위해 웅치를 공격하였다. 조선군은 정상부를 방어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싸웠으나, 많은 병사들이 전사하며 왜군이 고개를 넘는 것을 막지 못했다. 전투 후 왜군은 조선군의 결의에 경의를 표하며, 전사한 조선 병사들의 시신을 수습하여 묻어주고 그들의 충성과 의로움을 기리는 푯말을 세웠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다음 날 전주 산정동 일대에서 조선군의 치열한 반격에 부딪혀 왜군은 큰 피해를 입고 패배했다.

이 승리는 전라도 지역을 장악하려던 왜군의 전략을 무력화시켰다. 웅치전투에 참여했던 관군과 의병은 이후 경기도와 경상도로 진출하여 여러 전투에서 활약했으며, 전라도 지역은 전쟁에 필요한 물자를 계속 공급하여 임진왜란 극복에 중추적인 역할을 하였다.